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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눔의 공동체 (사 58:1-12, 마 25: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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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교회의 표어는 주로 [믿음의 민중화]의 뜻을 담아 "섬기는 공동체"로 제자의 발을 씻기신 예수의 섬김의 자세로 교회 삶의 자리 를 두었다. 이번 새해에는 [희망의 역사화]의 뜻을 담아 '나눔의 공동 체'로 살아가도록 표어를 정하고 있다.

 사람이 그 인생을 가꾸어 가는데 3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권력 을 추구하는 삶이다. 바로 인생의 목표를 권력에 두고 살아가는 사 람이다. 니체는 '권력에 의지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언급하면서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말할 때 나폴레옹, 히틀러등을 이야 기 했다. 두번째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이 러한 쾌락에의 의지(Will to Pleasure)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언급 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했던 네로황 제, 진시왕, 연산군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다. 심리학자 프랑크린이 말한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는 역사상에 예수를 두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철학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이러한 삶의 가장 모 범적인 것이다. 오늘 93년의 첫 예배에 우리들이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천만이 넘는다고 자랑하는 것 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 기독교의 사회역할이 무엇이냐 하는 의미에의 추구가 한국기독교의 당면과제이어야 한다. 민중의 삶 속에 뛰어드는 것은 지 위상승, 명예, 군림, 다스림 따위의 권력이 아니고, 사치와 향락과 퇴 폐와 소비주의에 걸맞는 쾌락도 아니고, 의미를 추구하는 삶만이 삶의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직과 성실로 기독교의 삶을 가꾸어가야 한다.

 이 시대 우리의 문제는 바로 나눔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다. 교회도 기복적인 복만을 내세우고 나눔이 없다면 역사적 철학적의 미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정치도 몇몇의 그룹들이 독점을 하면서 나눔이 없을때 그 정치는 썩어갈 것이다. 경제도 재벌들만이 독점을 하고 있고 나눔이 없다면 그 경제는 심각한 침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약한자가 억울한 지배를 받고 평생의 한이되어 살아갈때 예수는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신다. 교회는 권력을 독점하려는 정치세력에 대하여 진 리가 나누어지는 민주화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는 부를 독점하려는 소수의 지배세력에 대하여 가난한 자들과 나눔의 질서를 실현시켜야 한다. 약한자가 억울하게 지배를 당하지 않도록 서로의 존 재가치와 나눔의 사랑의 공동체가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예배는 은혜의 나눔이며, 봉사는 섬김의 나눔이다. 선교는 복음의 나눔이며 화해는 사랑의 나눔이다. 교회가 이러한 나눔의 공동 체로서의 본질을 상실한다면 역사 속에서 맛을 잃은 소금처럼 심판을 받게 된다.

 사람이 한 생애를 두고 성숙해지려면 3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1 단계는 받는 단계요, 2단계는 가지는(소유)단계요, 3단계는 주는 단계 (나눔)라고 한다.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고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삶의 철학이 사람을 성숙한 삶으로 이 끄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큰회의와 허무감에 빠져들때 늘 자신에게 질문하 였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삶의 의미와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이러한 물음 끝에 톨스토이는 구원과 해답의 빛을 민중의 삶에서 찾았다. 그는 러시아 농민들의 소박한 신 앙과 성실과 근로의 생활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민화집 [세개의 의문]이라는 단편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스스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라는 것이다. 가장 필요한 사람 은 바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 한 일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나눔이라는 것이다. 인도의 간디도 톨스토이의 영항을 받았다. 톨스토이는 82세에 아무말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출하여 순례자로서 생을 마쳤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나눔이다. 들어오는 물만 있고 나가는 물이 없다는 지중해의 사해는 아무런 생명이 살고 있지 않다. 나누지 못하는 것은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사람과 배설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흔히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 다'고 말한다. 소유냐 존재냐하는 물음 속에서 나눔이 바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 은 예수께서 주신 나눔의 철학이다.

 복음은 나누어 주는 은혜이다. 만약 누가 복음을 독점하고 나눌 수 없다면 복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미 친다고 했다.(고전 9:16) 본문의 말씀대로 예수는 지극히 적은자와의 나눔 속에 계신다고 하셨고, 하나님을 거기서 만날 수 있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십자가의 정신이요 십자가의 정신은 나눔에 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졌다면 나눔의 정신이 교회의 본질이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섬김 과 나눔의 운동이다. 오늘 우리시대의 심화된 갈등의 해결은 예수 그 리스도의 나눔의 복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나눔의 복음으로만 화해 와 평화가 이루어진다. 교회가 기복만을 강조할 때 개인적으로 복을 받고 평안할 수 있으나 나눔의 공동체가 되지 못하면 교회는 그 존재 를 상실하고 역사에서 버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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