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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서 말할찌라2 (렘 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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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려서 말할 줄 모릅니다" 이러한 부르심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은 놀라움과 당황함 가운데 그 부르심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면서 물러서려는 것임을 6절이 일러 준다-"아! 주 야훼시여, / 오, 전 말할 줄 모릅니다. / 전 어리기 때문입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낱말 "아!"([아하흐] Hh'a)는 전혀 기대하지도 뜻하지도 않았던 어떤 사건에 부딪쳐 놀라 어쩔 줄 몰라 저절로 내지르는 외마디소리 이다. 예레미야로서는 야훼께서 자신을 예언자로 삼으신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놀라운 부르심에 이렇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오, 전 말할 줄 모릅니다. 전 어리기 때문입니다"라는 예레미야의 말은 예언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내어 준다. 곧, 예언자란 말할 줄 아는 사 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할 줄 안다 함은 말로써 듣는 사람들에게 상당 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말을 잘 해야 예언자 노릇할 수 있 다는 생각은 출애굽기 4장10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양할 때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아무튼 예레미야는 자기처럼 어린 사람은 예언자에 알맞지 않다고 본 것이 다.여기서 "어리다"로 옮긴 히브리 낱말 [나아르] r[;n를 보고서 보통은 예레 미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았을 때 소년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낱말이 노인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 [자켄]과는 반대되는 말이어서 그리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몇 살부터 몇 살 사이의 사람을 가리킨다고 확정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청년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말을 잘 하려면 나이도 어느 정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나아르]라는 낱말에는 인생 경험이 아직 그리 많지 않아 여러가지 면에서 서툰 상태에 있다는 뜻도 들어 있는 것같다.

 < 7-8절 > "어리다 말고 가서 말하라!" 어려 말할 줄 모름을 내세워 야훼의 부르심에서 물러서려는 예레미야를 야훼께서는 7-8절에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말꼬리를 잡아 설득하신다.

먼저, "'전 어립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 내 널 보내는 곳마다 가서 / 내 네게 말한 것마다 말할찌라"는 7절은 예레미야의 예언자 이해가 잘못임을 일깨운다. 곧 예언자란 말할 줄 안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 고 야훼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야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모조리 말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아무개가 야훼께서 시키 시는 곳에 가서 시키시는대로 말하느냐 하는 데 달렸지 스스로 말 잘 할 줄 아는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예언이 무엇이며 예언자가 어떠한 사람인지가 똑똑히 드러난다. 예 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대로 말하는 것이고, 예언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예언자를 앞 일을 미리 알거나 내다보고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여 한자로 예언자(豫言者)나 선지자(先知 者)나 선견자(先見者)라고만 옮기는 것은 본문을 비롯하여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의 뜻을 제대로 살린 번역이라 하기 힘들다. 그리하여, 예언자란 말씀을 맡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맡길 예(預)"자를 써서 예언자(預言者)라고 쓰기를 제안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이런 말은 본디 우리말에 없는 것이어서 그리하자면 낱낱이 풀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본문7절은 구약예언서에서 참 예언자와 엉터리 예언자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을 알려준다.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 명 령하신 바를 말하는 사람은 참 예언자요, 하나님이 보내시지도 않았는데 제 맘대로 말하는 사람은 엉터리 예언자라는 것이다. 예레미야23장21절에 서 야훼께서는 잘못된 예언자를 가리켜 "그들이 달려갔지만 난 그 예언자 들을 보내지 않았어, / 그들이 예언했지만 난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어"(사 역)이라 말씀하신다.

 아무튼 이제 예레미야는 더 이상 어려서 말할 줄 몰라 예언자 노릇하지 못 하겠노라고 핑게될 수 없게 되었다. 말할 줄 알든지 모르든지 그저 야훼께 서 보내시는대로 가서 시키시는대로 말하면 될 뿐이라 하시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야훼의 뜻에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 뿐이다. 이제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자로서 알맞는 재질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이런 식으로 그냥 순종만 요구하시지 않고, 곧바로 뒤 이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 너와 함께 있어 널 건질 것이기 때문 이라" 라는 말씀으로 예레미야가 순종하면 예레미야를 책임지실 것을 약속 하신다.

 여기서 갑자기 "그들"이 나와서 이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18절에 이르러서야 유다 임금들과 고급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지방 유지들 이 예언자를 두렵게 할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예레미야가 부르심을 받 는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가 야훼의 부르심을 따라 예언자 노릇한 다면 그를 두렵게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두려움은 야훼께서 예언자와 함께 하셔서 도우신다는 사실 앞에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점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야훼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야훼의 부르심 앞에 물러서려는데는 어려서 말할 줄 모른다는 것 말고도 다른 까닭이 있음 을 알아차리게 한다. 다름 아니라, 예언 활동하면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레미야가 알고 이를 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5절에 나온 예레미야의 말 가운데는 이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지만 야훼께 서는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어도 예레미야의 속마음까지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문법적으로 말하면 금지명령문인데 이는 구약예언 서에 나오는 구원 예언의 중요한 요소이다. 구원 예언에서 이 금지 명령 바로 다음에 이어 나오는 요소가 본문에서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보장 없이 그냥 말씀으로써만 "두려워하지 말라"하시 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 실히 말씀하신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리하여 "그 들 때문에" 두려워할 만 하지만, 야훼께서 함께 하신다 할 때는 그런 두려 움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야훼께서 함께 계셔서 "그들"이 "너"를 괴롭히더라도 "너"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어 주실 것이기에 "너"는 아 무런 걱정 말고 그저 "나" 야훼가 보내는 곳에 가서 하라는 대로 말만 하 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내 널 예언자로 삼았노라"하시는 야훼의 말씀에 예레미야가 "전 어려서 말할 줄 모릅니다" 라 하면서 뒷걸음질치자, 야훼께서는 이제 "내 널 보내 니 두려워 말고 가서 말하라"하시면서 그를 보내신다 하신 것이다.

8절 끝에 나오는 "야훼의 발언"이란 표현은 예언서, 특히 예레미야서와 에 스겔서에서 인용되는 야훼 말씀의 앞이나 뒤, 심지어는 가운데 가끔씩 끼 어드는데, 아마도 이는 예언서의 각 부분들을 모으던 사람들이 그 앞뒤에 나오는 내용이 야훼에게서 비롯됨을 강조하기 위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 9-10절 > 야훼의 상징행위와 그 뜻풀이 이어서 9절에서 야훼께서는 그의 손을 뻗치셔서 예레미야의 입 위에 닿게 하시면서 예레미야에게 "자, 내 말들을 네 입 안에 두었노라"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앞에서 하신 야훼의 행동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곧,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그의 말씀들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야 훼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 예언자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분명해진다.

다만 10절에서 "내 말들"이라고 "말씀"([다바르])를 복수형으로 쓰는 점이 눈에 띤다. 이는 한 예언자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뜻이나 그 전달 과정 전체를 통틀어 단수로 "야훼의 말씀"이라 하던 4절의 경우와는 달리, 이제 이런 저런 기회에 예언자가 낱낱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의 개별성을 생각하여 복수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9절이 묘사하는 야훼의 상징행위는 이사야 6장6-7절에서 야훼 하나님의 보좌 둘레 있던 스랍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부젓가락으로 달아오른 숯을 가지고 이사야에게 가서 이사야의 입에 댄 것을 생각나게 한다. 행위 자체 는 본문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그 행위가 뜻하는 바는 다르다. 이사야의 경 우, 이 행위는 부정한 이사야의 입술을 깨끗하게 함을 뜻하지만, 본문의 경우에는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맡기심을 뜻한다.

 10절에 나오는 야훼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일할 내용을 일러 준 다."보아라, 내 널 오늘 겨레들과 왕국들 위에 세웠노라" 함은 다시 한번 예레미야의 예언 활동이 하나님 백성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미침을 확실히 한다. "아무개나 무엇 위에 세우다"([힙키드 알…]라는 표현은 아무개나 무엇에 대해 책임질 직책을 맡김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야훼께서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뿐만 아니라 다른 겨레들과 나라들에 대해서도 야훼의 뜻을 바르게 전할 책임을 맡기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그 뒤이어 나오는 여섯 개의 동사 부정사형이다-" 뽑아 내고 부서뜨리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리도록, / 짓고 심도록!". 이 여서 가운데 처음 넷은 심판을 뜻하고 마지막 둘은 회복, 곧 구 원을 뜻하는데 그 순서로 보면 심판이 있은 다음에 구원이 있음을 뜻하고, 개수로 보아 심판이 철저할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겨레들에 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노릇을 한다 함은 곧 이들에게 먼저 하 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다음으로 구원을 선포하는 일을 맡았음을 가리킨 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먼저 2-25장 앞부분에서 하나님 백성에 대한 심판의 말씀들이 나오고 30-35장에는 심판 받아 망한, 하나님 백성에 대한 구원의 말씀들이 들어 있다. 25장 뒷부분과 46-51장에는 다른 겨레들과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들이 모아져 있다. 심지어 46장26절, 48장47절, 49장39절 같은 데에는 다른 겨레들과 나라들에 대한 구원의 말씀도 나온다.

 설교자를 위한 메시지 제안 본문은 예레미야라는 젊은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생애를 하나님 말씀을 맡아 전하는데 쓰시려 하신다는 뜻을 밝히시고, 그 가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고와 약속의 말씀과 행 동으로 마침내는 그로 하여금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심 을 보여준다.

 본디 구약의 예언자란 하나님 백성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이 뽑아서 쓰 신 사람임이 틀림이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오 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말씀의 일꾼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 다시 사셔서 마흔 날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마28:18-20)이 바로 이 점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오늘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도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로 삼으셨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전제 아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씀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본문에 비추어 다음 몇 가지로 말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일찌감치 하나님의 일꾼으로 정해 놓은 사람들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요 영광스러운 일이다.

요한복음 15장16절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신 말씀도 기억해 볼만하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의 도덕적 인 품성이 남보다 더 깨끗하거나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는 정말 보잘것없고 더럽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저 하나님 것으로 쓰시겠 다 하셨음을 뜻한다. 오늘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성도", 곧 "거룩한 무리" 라 함도 바로 이런 뜻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 말은 예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이지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완 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우리를 하나님 것으로 삼 아 주셨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알맞도록 살도록 애쓰는 것이다.

이것이 곧 거룩한 삶이다.

 셋째, 말씀의 일꾼은 자기 가고 싶은대로 가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말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하나님 보내시는 곳에 가 서 하나님 명령하신 말씀만 전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어떤 능력으 로써 말씀의 일꾼 노릇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가 가졌 다고 생각하는 능력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없다.

 넷째, 말씀의 일꾼 노릇 할 때 우리가 두려워할 만한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일꾼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 셔서 온갖 어려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그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부르심에 순종하면 된다.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다섯째, 우리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에는 심판의 요소와 구원의 요소가 함 께 있다. 그저 듣기에 좋은 소리만 하는 것은 결코 바르지 않다.

마지막 여섯째로,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일꾼들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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