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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성도(2) (요 0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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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며칠전 신문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지난 해에 (1992년) 비위 및 복무 규정위반으로 적발된 공무원이 모두 3만7천9백17명이라고 했습니다.

잊우에 4천2백53명은 파면되었거나 정직 또는 징계를 받았고 나머지는 경고를 당했다고 합니다(1993년2월9일자 조선일보).

 이렇게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것을 모르고 살 면 자신에게도 피해를 가져오게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세례요한은 본문을 보니까 자기를 분명히 알고산 사람입니다. 예루살 렘으로부터 세례요한에게 온 사람들 즉 제사장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와서 묻는 첫마디는 "네가 누구냐"였습니다. 이 물음속 에 숨겨있는 뜻은 "네가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가 아니냐"였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말했습니다. 사람들중에는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과소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저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위대한 선지가가 아니라고 했 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존경받고자하는 유혹이나 교만해지려는 유혹, 또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명예를 취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유혹이 왔을 때에 즉석에서 거절했 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메시아로 인정할려고 할 때에 묵인하지 않 고 단호히 부인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렇게 한마디로 자기자신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짧은 한마디속에는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나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임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자기는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자기 의 사명을 다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은 자기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 이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조그마한 이적을 행사하고서도 자기가 마치 능력과 특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신자들중 에는 어떠한 능력이 나타났다하면 세례요한 시대의 사람들처럼 그곳으 로 몰려가고 그 능력을 행사한 사람을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하고, 따 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지나치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저 바울 일 뿐입니다."라고 타일렀고 또 그를 과소평가하는 자들에게는 자기의 육체는 연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하나님으로 부르는 자가 있을 때는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보잘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되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진실로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높일 수가 없습니다. 그 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그 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세례요한이 협잡꾼이거나 벼락 출세를 노리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을 때 에 "그렇다.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호히 부인했습니 다.

 정직한 그리스도인! 오늘날 참으로 아쉽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요한처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유리의 회장인 최태섭 장로님이 일제시대에 만주에서 비누공장 을 경여할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콩기름 값이 폭등한 적이 있었습니 다. 그래서 이미 계약한 것을 파기하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 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로 부터 어리석은 사람이란 핀잔을 들으면 서 까지 종전가격대로 거래를 해서 중국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얻었습니 다. 그후 공산군의 점령으로 장로님은 끌려가서 인민착취자로 사형당 할뻔 하였으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정직과 진실함을 변호해 주어 서 무사히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산안창호 선생이 대성학교에 교장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도산은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농담으로 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아"

하루는 도산선생이 조회시간에 한 학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린다 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학생은 우리학교의 기본정신인 진실성이 없이 속이는 죄를 범했 기 때문에 박절하지만 무기정학을 시키기로 작정하였고 이 학생이 속 인 일이 비록 작은 일 같지만 이런 정신으로 공부한다면 세상없는 공 부를 한다하여도 소용없을 것이요. 이런 학생이 있다는 것은 우리 대 성학교의 큰 수치외다. 우리 학생들은 꿈에라도 거짓을 버려야 하오 학생들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휘하던 대장이나 초대대통령이 되었던 워싱턴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어려서 자기 아버지의 벗꽃나무를 찍고 누가 찍었느냐고 아버지의 묻는 말에 '제가 찍었어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던 어린 조사 워싱턴을 배우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 이외에 딴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유일한 포부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었습 니다. 외국의 어떤 청년은 평생을 누워있으면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워있으면서도 그 동네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동네 사람들을 다 주께로 인도해 주셨고 또 크 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청년의 기도드림을 알게된 동네 사람들은 어려운 일만 있으면 저에게 찾아와서 기도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기를 위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면 서 자기가 할일을 찾아한다면 이 청년같이 많은 사람들에게와 자기에 게 유익을 주면서 살게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게 될 줄을 믿습 니다.

 다음의 말씀을 넘어가겠습니다.

 2. 세례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할 때 제사장들과 레위지 파 사람들은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라고 세례요한은 대답합니다. "그러면 네가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이렇게 엘리야도 아니라지요. 선지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 아합때에 유명한 선지자로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아의 400인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서 송아지로 제물을 삼고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은 물론 나무와 돌과 흙 까지 태우고 도랑의 물도 함은 듯이 말리는 역사를 이룬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또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 경에 보면 이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막 4:5) 그 말씀대로 저들은 엘리야가 승천한 그 자리에 내려온 것으로 착각한 것 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대답은 "나는 너희들이 하늘에 승천했다가 다 시 지상에 올것을 기대하고 있는 그러한 엘리야가 아니라"는 것입니 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엘리야가 가졌던 그러한 심정과 능력으로(눅 1:7) 엘리야적인 사역을 했습니다. 다만 구약에 나타났던 그 엘리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란 말은 보통 말하는 평범한 선지자를 말하 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말했던 '나와 같은 선지자"(신18:15) 를 가 리킵니다. 이렇게 모세가 말한 선지자는 예수를 의미합니다 (행 3:22,7:40).

 이러한 선지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모세가 말 한 선지자도 아니고 사무엘이나 엘리야같이 로마의 압박에서 이스라엘 을 구원해 줄 선지자도 아니고 옛날 선지자들처럼 꿈이나 환상에 의한 선지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도아니라 엘리야도 아니라 선지자도 아니라 그러면 도대 체 너는 누구란 말이냐 "너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하는 놈이냐" 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할 말은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때 비로소 세례요한은 자기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사 40:3) 이 말은 단순히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1) 세례요한의 소리는 한 인간의 소리였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은 천둥번개와 함께 큰 나팔소리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조용한 인간의 목소리로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 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을 전달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평범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듣지도 못한 일을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 리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요"라고 했습니다. 여러 분의 입술이 세례요한의 입술처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복된 입술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세례요한의 소리는 진지했고 집요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소리는 헛튼소리가 아니였습니다. 생명과 함께 진지하게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의 소리는 열정적이었고 적극적이었습니 다. 오늘도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하늘의 메세지를 전할 때의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열정을 다하여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강단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진지하게 받아들 여야 합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교회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면 이 시대는 어두움으로 짙게 물들어 길잃어 버린 배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 이 시대를 통하여 죄로 죽어가는 자들을 생 명의 길로 부르는 소리요. 환란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들을 평강으로 부르는 소리요. 싸움과 미움으로 얼룩진 마음들을 사랑의 안식처로 부 르는 소리요. 실패와 좌절로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을 희망으로 부르는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자들은 새생명, 새능력, 새희망을 얻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지게 됩니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례요한을 통해서 주신 말씀처럼 (1) 정 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 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사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 니다.

(2)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지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성도가 되어서 여러분들의 입술을 통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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