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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없는 사랑 (요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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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으로 유명한 고전13: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방언도 그치고,지식도 폐하리라."

진정한 사랑의 아름다운 특성중의 하나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NEVER FAIL, NEVER END!

떨어진다는 말의 헬라어는 '펩토'라는 말인데,이것은 '이파리가 시들어서 떨어진다',혹은 '무대에서 배우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 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죽고,인간사는 변하고 환경은 소용돌이 치지만,참된 사랑 은 변치않고 영원하다고 하는 것입니다.(모든 것은 시들어 버릴 때가 오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랑을 붙잡고 이 사랑을 위해서 살아 가야 합니다.

환경따라 여건따라,세월따라 사랑이 변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정 한 사랑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2장에 보면 에배소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수고도 있고,인내도 있으며,판단력과 정의 감,그리고 진실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책망할 것이 있으니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결여된 수고! 사랑이 빠진 비판, 사랑없는 정의로 인하여 주님은 분명히,'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붙잡고,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가운데 그 사 랑의 추구속에서 살아야 그 사랑과 함께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장 1절에 보시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 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일이면,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입니다.

죽음앞에 직면해 있는 예수님! 그는 마지막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에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점검하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깊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에게는 지금 제자들을 사랑할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 다.

오히려 이 때에는 제자들이 주님을 위로하고 사랑으로 도움을 주어 야할 입장입니다.

또한 제자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볼 때는 도저히 사랑할만 하지 못 합니다.

예수께서 죽어지는 밀알의 설교도 했고, 본인이 죽어야 한다고 여 러차례 말씀하셨지만,제자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할 줄로 끝까 지 생각하면서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일에 끝까지 신경이 곤두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등극하셨을 때 우편,좌편에 누 가 앉느냐는 것입니다.

우편은 당연히 수제자인 베드로의 것이라면 좌편은 누구차지인가 요한은 자신이 가장 사랑받은 제자이기에 자신이 앉을 것이라 생 각했고, 야고보는 야고보대로 자신이 형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앉아야 한다고생각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아예 한 술 더 떠서 예수님께 아주 자신 의 이 두 아들을 우편,좌편에 앉혀 달라고 청탁하기까지 하였습니 다.

또한 사랑하여 회계의 직분까지 맡긴 가롯유다는 이미 예수를 팔 작정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죽는 순간까지 사랑받기에는 너무나 한심한 제자 들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 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 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 다.또한 우리가 본받고 이 세상에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모델이 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의 이 사랑은 끝까지 섬기며 발을 씻겨 주는 사랑인 것입 니다.

 4,5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 을 벗고,수건을 가져다고 허리에 두르시고,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 들의 발을 씻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인데,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조금만 걷다보면 발이 먼지투성이가 됩니다.

그래서 어느 집이든지 들어가기 전에는 발을 씻어야 합니다.

(예)가나 혼인잔치에도 보면 발씻는 물항아리가 있었습니다.

발을 씻고 들어가서 식사를 해야합니다.

특히 지금은 유월절 잔치이니 더욱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풍속으로는 자신이 자신의 발을 씻지 않습니다.

만일,하인이 있으면,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겨 주게 되어 있습니다.

종이 없으면,아내가 남편의 발을,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기고, 친구 끼리도 서로 발을 씻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먼저 씻겨주는 사람이 밑어 있는 사 람인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을 보니까,어찌된 일인지,서로 팽팽하게 맛서면서 서로 먼저 씻겨주지 않은 것같습니다.

 그러다 보니,선생이신 예수님의 발조차 씻겨주지 않게 된 것같습니 다.

이런 한심한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손수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을 씻기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은 내가 먼저하는 것이요, 나 위주의 생 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상대방을 위주로 하는 생각에 있는 것이라 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수고와 섬김이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사랑이란,정말 상대보다도 낮아지게 될 때에 이루어 지는 것 입니다.

무릎을 꿇고 낮아지지 않으면 상대의 발을 씻길 수가 없습니다.

고고하게 서서 나의 허영심을 채우면서 사랑하겠다고 하면 진정 사 랑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겸손과 낮아짐이 있을 때,진정 사랑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도 어쩌면 종이 되어주는 사 랑입니다.얼마나 자신을 헌신하며,마치 노예처럼 헌신하고 섬겨주 는 것입니까

사랑한다고 시늉은 하면서도 겸손과 낮아지는 섬김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고,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두르신 허리의 수건은 사실, 겸손의 허리 띠였습니다.

나중에 이를 깨달은 베드로가 자기 편지를 쓰면서,"겸손의 허리띠 를 두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이신 주님이 제자들보다 낮아져서 그 발을 씻기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한 폭의 사랑의 그림인지요

이 아름다운 그림이 우리 생애에도 많이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은 가롯유다까지도 씻기신 사랑인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것으로 보아서 가롯유다의 발도 주 님이 씻기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아예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가롯유다의 발을 씻겼 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가롯유다의 발을 먼저 씻겨 버리면 다른 제자들의 발은 더욱 쉽게 씻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 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자세로 사랑을 베풀면 모두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 다.

 그런데 만일 사랑할 만한 자를 찾아서 사랑받아 가며 사랑하겠다고 하면 그 사랑은 제한적이고 지속성이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가롯유다는 미워하시고,신경을 쓰셨다고하면 12제 자가 다 미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뚜렸하고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가깝게 지내면 그 사람마저도 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이 증폭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것도 싫어서 그 옳다고 당연히 여겨 야 되는 진리까지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무언가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예,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결심하고, 악한자요,원수까지라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마음편한 일입 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기본자세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롯유다만 없어지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것처럼 인간이 사는 세계에 10분의 1보다 더 많 은 확률로 어디에나 가롯유다가 있습니다.

내가 가롯유다가 없어지면 제2의 가롯유다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두고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 것 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게 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모든 지식을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 사람이 변화될 것으로 생각하고 응답을 기준으로 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롯유다가 여전히 자신의 사랑를 보여줌을 보고도 배반 하고 등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별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워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 니다.

또한 사랑한다고 맹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객관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알고,잘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원수사랑을 위한 또 한가지 측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유명한 설교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사람, 그들이 증오하는 이유를 당신 은 아는가 그들은 내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증오는 변신된 사랑의 애원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 나를 모함하여 나를 함정 속에 몰 아 넣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들은 실상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애원하며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던, 무섭고 끔찍한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한 성도가 순교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더 욱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내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 어 낼 것입니다.

나를 때리십시오. 나는 신음 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 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나는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 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용서를 압니다. 사랑할 때 비로 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 님을 닮아갑니다.

 3.주님의 사랑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있는 사랑입니다.

 6절에 보시면,베드로가 질문합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절에,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 편에서 볼 때는 너무나 황송한 일어었습니다.그래서 어떻게 주님이 제발을 씻길 수가 있습니까 사실 여기까지가 순수한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어면서 늘 내가 받고 살고 있으며,이웃의 사랑과 은헤를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느끼면서 사는 것이 겸손이요,사랑의 출발입니 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랑하며,겸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 님의 크신 은혜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베드로에게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미래에는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넓은 마음과 믿음의 마음과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진정 믿지 못하는 마음, 인내와 희망이 없는 마음으로는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한 일을 즉석에서 상대가 이해하기를 원하고, 즉석에서 응답 해주기를 원한다면,사랑을 베풀기가 어럽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요,소망과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 사랑이 베드로에게 알려지고 체험되었기에 그는 거꾸로 십자가라고 지도 죽게 된 것입니다.

 조급한 사랑은 병든 것입니다.

오늘 결실을 얻겠다고 덤비는 사랑도 변질된 사랑입니다.

믿음이 결여된 사랑은 타락한 것입니다.

 주님은 묵묵히 이 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죽고,부활하며,성령이 강림하시게 될 때,베드로가 모든 것 을 알것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아직은 죽지 아니하셨습니다.

죽어주는 사랑이 있게 되면 베드로가 알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편이 내 사랑을 모른다면 아직 내가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일수 도 있습니다.

 차라리 침묵가운데 묵묵하게 내가 죽어 지는 사랑의 씨앗을 심으 십시다.

사랑은 전달되고 사랑은 알게 되어지고,사랑은 열매를 맺게 될 것 입니다.

 (예)

선진국의 국민병 일위,이위가 비대증 심장병 계통과 정신 분열증 환자다. 미국의 사망율 54%가 비대증과 관련이 있 다고 한다.

먹은 것을 신진 대사하고 소모시키기 위한 운동 부족과 과 잉 취식이 원인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도 사랑받지 못하거나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다. 남을 위해 시간과 돈과 기도 정력과 생애를 바치는 사람이 정신 분열증에 걸리는 일은 극 히 드물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도 사랑과 인기와 칭찬과 존 경을 받으려고만 하면 정신 비대증 증상이 나타나기 마련이 다. 사랑은 항상 주어야 생산되고 활성화된다.

사랑의 결핍증 내지 정신 비대증 분열증을 고치는 약은 무 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것을 순수하게 많은 사람에 게 나누어 줌으로써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사랑 지향의 생활 철학과 가치관을 가져야겠다. 성도의 영의 양식도 하 나님의 사랑을 받는 문제보다 늘 주는데서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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