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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에게 행한 것 (요 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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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지나다가 컴컴한 문밖에 서있는 집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 니다. 어둡고 추운데 왜 밖에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딸이 아직 오지 않아서 기다린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추운데 들어가서 기다리시지 밖에 있다고 딸 이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잖느냐고 저는 들어가시기를 권했습니다. 그랬 더니 그 집사님 말씀이 여기 서있으면서 깨닫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집 사님 자신이 처녀 시절에 밤늦게 돌아다닐 때 당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걱 정하셨을까 하니 생각이 나면서 그 때 일을 회상하며 회개하며 서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후에는 알리라"는 주님의 위대한 믿음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먼 훗날, 주님을 생각하며 깨우쳤던 일입니다.

 1.분위기 1)예수님께서 연출한 분위기

이야기는 지금부터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으로 거슬러 올라갑 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여기로 오셨습니다 이 마지막 유월절은 제자들이 함께 영원히 기념할 날입니다. 이 장면에는 마지막 기회가 가지기 마련인 엄숙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여기 서 예수님은 유월절 양을 자기 몸으로 대신합니다. 그는 떡을 떼어 제자들 의 손에 한 조각씩 쥐어 주시면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몸, 바로 나 자신, 나의 모든 것이니라." 이 것은 거룩하고 엄숙한 식사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목전에 두 고 나누는 식사입니다.

 2)제자들이 연출한 분위기

 제자들은 이 엄숙하고 위대한 순간을 맞이했지만 겸허한 마음이 아니라 은근히 자리를 탐내며 서로 양보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에 든다는 것 만 으르도 황송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겠다는 최고욕과 독점욕으로 형제간의 의리나 동료간의 신 의를 헌신짝 처럼 저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발 구조상 식사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발을 씻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풍습으로는 자기 발을 스스로 씻지를 않습니다. 종이 주인 을 씻기거나,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의 발을 씻기기도 합니다. 이 유월 절 만찬 전에도 누군가 나서서 발을 씻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이런 천한 일을 자청하고 나섰음직 도 합니다. 이 얼마 전 야고보와 요한이 첫째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을 때 예수님은 첫째가 되는 길은 모든 사람을 섬기는 길 밖에 없음을 이들에게 일러 주신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말씀을 이미 까맣게 잊고버리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시몬도 이런 천한 일을 하지 않 으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체 면을 유지하는 데 너무 바빴습니다.

모두가 더러운 발을 그대로하고 상을 마주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마음은 어떻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대야에 물을 가져오시고 수건을 동 이고 한사람씩 발을 내오 놓으라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 에 죽어야 하면 이 식사 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어린 기도를 해야 하는 어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는 사람없으니 마지막 순간가지 한가 지라도 행동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자리에서 자신을 낮추신 것이나 후에 십자가를 지시면서 자신을 낮추신 것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 다.

 (예화) 링컨 대통령이 하루는 어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걷고 있는 길은 너무나 협소하여 두 삶이 일렬로 서서 걸어갈 수 가 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이 일행은 다른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습 니다. 이 행인이 길을 비키지 않자 링컨 대통령이 길을 비켜야 했습니다. 이 를 본 친구가 잔뜩 화가 났습니다.

"각하, 각하께서 길을 비키신 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길을 비키게 하셔야지요." 이 말에 링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길을 비키지 않았다면 충돌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예수님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몸소 이 일을 하시지 않 으면 이 일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자리를 잡으 신 후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해 주지 못 한 큰 봉사를 이들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봉사를 통해 예수님은 이들에 게 겸허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謙虛 >란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는 별로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겸허함을 경건한 교 회의 언어로 여겨서, 기도 모임에서는 사용하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달 갑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누가 우리를 겸허하 다고 하면 칭찬하는 소리로 여겨야 할지 모욕하는 소리로 여겨야 할지 모 를 때가 많습니다. 겸허의 덕이 귀한 보석이라 하더라도 현대에는 <빛을 잃 어버린 보석>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2 겸허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겸허>함이 없었습니다. 겸허란 분명히 제일가는 자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 천한 일이라고 하여 보잘것 없이 여기거나 무시하고 거절하지 않습니다. 겸허란 사람들이 "이 모임의 의장을 시켜주 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런 자세도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 이상으로 인생을 망치기 쉬운 정신적 자세란 없 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 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 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요 13:3-4)이것이 자기 모멸과 같이 들립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하니님께로부 터 오신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가장 투철하게 인식하는 바로 그 순 간 허리를 굽히신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높은 겸허함을 보여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겸허란 무엇입니까 자신을 바로 평가하는데에서 옵 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직시하는 데서 오는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결과 입니다. 겸허는 진실에 입각한 것이고 교만은 거짓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 면 자신에 대해 올바로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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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며 위대한 피조물들 입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주께서 는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 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위대한 피조물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 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구속함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를 닮 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처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빌 1:21)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키워 가며 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우리는 이 축복을 실현하지 못 하였습니다. 주의 아름다움이, 햇빛이 언덕에 머무르듯, 우리에게 머무르도 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모습 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롬3:23).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직도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작디작은 부분밖에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화) 어느 유명한 화가가 자기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화랑에 군중을 피하기 위하여 일찍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화랑에 나가 있는 모습을 한 친구가 보게 되었습니다. 화가는 이 친구를 피하려고 하였으나 허사였습니 다. 친구는 화가의 얼굴이 눈물에고여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무슨 일 인가"고 친구는 물었습니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들을 살펴 보고 있는 중 이다"라고 화가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는데 나이 들어 아 직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무명 화가일세. 내가 노력했더라면 될수도 있었 던 수준의 화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네 그림을 보는 순간 이렇게 아 파 오는구만." 이렇듯 우리가 우리의 가능 존재의 빛에서 우리를 보게 되는 때는 자연히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2)겸허는 어린이다움을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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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가르침이 가능한 존재로서 누구에게서라도 배우고자 합니다.

어린이는 자기보다 높은 힘에 의존하고 자족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자기 의 약함을 깨닫기에 보호자의 손을 꼭잡고 갑니다. 길을 갈 때에는 어린이 는 엄마보다 앞서 뛰어 가지도 하지만 길을 건널 때에는 엄마의 손을 꼭 잡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자기보다 높은 힘에 의 지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다움은 남을 깔보지 않으며 정상적인 어린이는 재 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월등하다고 하여 다른 어린이를 다돌리는 경우는 드 뭅니다. 어린이는 가난한 집 아이나 왕의 아들이나 가리지 않고 같이 어울 립니다.

 3)겸허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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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는 주님께서 몸소 친히 가르쳐 주신 德의 하나입니다.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 우리 주님은 겸 허하셔서 다른 아무도 하기를 바라지 않는 발을 씻기는 이런 천한 일도 손 수 하셨습니다. 주님은 겸허하셔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 가에 죽으셨습니다"(빌2:6-8)겸허는 곧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다 른 사람들을 섬기느라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 겸허입니다.

 3. 겸허의 덕이 그토록 귀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겸허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門이기 때문에 귀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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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겸허한 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되 겸허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보십시오 "두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 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누가18:10-14)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바리새인은 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 습니까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 다. 오히려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은 곧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었습 니다. 이 바리새인이나 이런 유의 사람들이 없었다면 세리가 뉘우치면서 기도 들릴 수 있는 성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휼륭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 것은 그에게는 겸허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높은 곳으 로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세리는 이와 달랐습니다. 세리는 심령이 가난 했기 때문에,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겸허한 자만이 들어가 머무를 수 있습니다. 겸허한 자 외에 모든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의 문이 닫혀져 있습니다. 모든 가치 있는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은 겸허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지식의 나라에 들 어갈 수 있습니다. 겸허의 문을 통해서 뿐입니다.

(경험) 저도 오래전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들이란 머리가 둔한 학생이 아닙니다. 가장 가르치지 어려운 학생은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겸허는 교회안에서나 교실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업계에서도 귀중한 요소입니다. 가장 훌 륭한 사업가는 그 직종 제일 바닥에서 고생하며 배워서 익힌 사람입니다.

말단 종업원부터 시작하여 온갖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경험을 쌓은 후에 독 립하여 개인 사업을 전개하며 대부분 성공한다고 합니다.

겸허는 친구를 사귀고 친구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데도 필수적입니다.

만일 친구들 보다 우월한 자가 되려고 한다면 친구는 멀어집니다. 겸허의 덕은 또한 가족 관계에서도 필요합니다. 남편이나 아내 가운데 어느 한 쪽 이 언제나 옳고 다른 쪽은 그른 경우에, 다른 한쪽은 발 아래 앉아서 불균 등한 부부사이가 된다면 이는 비극만이 기다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 세술 뿐만 아니라 학문의 탐구와 능력의 배양을 위하여서도 곡 필요한 요 소인것입니다.

 2) 겸허는 행복에도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자기를 드러내고 PR하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심령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혼자만이 사랑을 돛차지하고 특별난 존재로 인종받기를 원한다면 인생 행 로는 퍽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길에 아무리 존경과 박수갈채 가 있다고 해도 여러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언제나 있게 마련 이기 때문입니다.

 +--+ 맺는 말 +--+

어디서라도 사랑받고 유용한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 스도인은 가정에서도 필요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직장에서도 꼭 있어야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려면 겸허하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 음을 가지십시요. 교만한 사람이라도 박수 갈채가 주어지는 경우에 봉사하 려 할 것입니다. 또 적절한 인정을 받을 경우에는 봉사하려 할 것입니다. 자 기 신분에 어울리는 일일 경우에는 봉사하려합니다. 이들은 어떤 일이 필 요한가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겸허한 사람은 이러한 일이 주어 진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하기 때문에 일을 만들어서 합니다. 지시된 일도 못 해내는 무용지물이 되지 마십시요. 어디에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설실하게 할수 있는 유용한 존재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 을 하고 몇번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야기) 헤밍웨이의 글은 아름다운 필치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수 있느냐고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작품을 최소한 20번을 수정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발표합 니다" 또 유용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누구보다 배 걸음 더 일찍 내어 디뎌야 합니다. 아직 해본적이 었기에 힘들고 어렵고 많은 시행착오가 일 어날수도 있지만 먼저 익히도 도와주는데 사용한다면 바람직한 모습일 것입 니다. 겸허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가장 많 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만 믿고 봉사의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혼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겸허한 사람은 전능하신 하 나님의 능력을 입으면서 나아갑니다. 그는 그의 겸허함으로 인하여 우리 주 님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약속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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