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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요 1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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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다 자라서 결혼한 다음 어머니를 기적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부모를 잃은 과정은 기구하고도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빼고 단지 그들이 어머니를 찾은 다음의 이야기 에 촛점을 맞추어 보자. 가장 부모가 필요한 시기에 얼마나 엄청난 손 해를 본 뒤에 만나게 되었던가. 그래도 어머니를 찾아서 좋다. 하지만 안되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고아들은 보통 아이들에 비해서 삶의 기대치가 아주 약하다. 보통 아 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에게서 모든 것을 받아낸다. 부모는 곧 모든 것 의 창고가 되고 해결사가 된다.무엇을 가지고 싶을 때를 써서 돈을 얻 어낸다.이때 잘못해서 아이들을 버리는 부모가 많다. 어렸을 때 과자 사달라는 것처럼 사업 자금을 내라 집을 사라하며 터무니 없는 요구를 벌리는 어린애로 영원한 남는다.

 제대로 자란 아이라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 감사하며 이제 더큰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 부모를 있게 만든 대자연과 삶이 바로 더 큰 부모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에게가지 연결되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도 이제 삼과 대자연은 모든 것을 제고 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삶과 잘 조화되면서 살아가야 바로 성장한 자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하간에 고아들을 부모가 없으니 모든 것의 해결사는 없는 셈이다.

고아원에서 누구에게 떼를 쓸 것인가! 아이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보통 아이들보다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너 무도 적은 사람으로 자라게 될 수 있다. 남들처럼 부모에게 떼를 쓰는 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삶에서도 안되는 것을 되도록 떼를 쓰고 매달 려 시도하려는 자세가 결여될 수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너무도 쉽게 자기의 운명에 순응해 버린다는 것 이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자기의 운명에 너무도 쉽게 순응한다. 선물 을 들고 방문해 본적이 있었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데 어떤 것은 좀 모자랐다. 그래서 선물이 어떤 아이 앞에서 끊어졌다. 보통 아이들 같 으면 떼를 쓰고 울고 야단일텐데 아무 말없이 씁쓸히 웃으며 앉아 있 었다. 간단히 상황에 복종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느 사회에서도 고아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일시에 부모 가 죽거나 잃게 되면 남의 아이들은 즉시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살아남는다해도 그때부터 사랑에 굶주린 상태로 평생을 보내게 된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에게서만 얻는 사랑은 절대로 경험될 수 없기 때문 이다. 영양이 결핍되어 자라는 아이는 불구가 되는 것처럼 마음 속으 로는 어딘가 결핍되어 성장하게 된다.

 흑인 영가 중 "때때로 나는 엄마 잃은 고아처럼 느끼네"가 있다. 흑 인 노예들의 삶은 불안 자체였다. 부모도 자식들 앞에서 욕을 먹고 매 를 맞는다. 얼마 전까지도 남부에서 반항적인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린 치를 당하고 나무에 시체가 되어 달려 있엇다. 그것을 보는 아내와 자 식들의 마음 그리고 다른 흑인들의 공포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 나 고아처럼 느끼는데 당연한 것이다.

 이 노래의 내용이 사실상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부모가 멀쩡하 게 살아있어도 그렇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이 느낄 것이고 믿는 사람들도 노래 말대로 문득 문득 그러한 심정을 느낀다. 여기 고아의 심정은 간단히 말해서 혼란한 심정을 의미한다. 참 평안이 없고 늘상 마음 속 깊은데서 허무와 불안함이 연기처럼 올라 온다는 것이다. 삶 에 대한 자신도 없어진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세상에서 무엇이 부복해서 느끼는게 아니다. 이것은 마음 보다 더 깊은 곳에서 더 근본적인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이다. 그것은 영적인 갈급이다. 불신자들은 영혼의 부모가 없기에 언제나 고아의 심 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의 상태는 육신적인 고아들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아무리 돈을 벌고 인기를 얻어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 려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함께 있다.

 그러므로 영호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는 절대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남산 공원에 전도를 나가 보았다. 노인 들이 많았고 여기 저기 할 일 없는 이들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몇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이들의 얼굴에 그늘을 내리고 있 는 무기력한 느낌과 불안이었다. 이들을 대화하면서 정말로 버려진 영 적 고아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영혼의 부모 하나님을 찾은 이는 다시 부자 관계를 확실하게 회복해 야 할 것이다. 자식은 아무리 해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자식을 낳아 보아야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잇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었을 때는 몰랐던 것이 부모 가 되니까 알겠다는 말이다. 부모의 심정을 알고 나니까 자녀로서 어 떻게 행동히야 할지도 깨닫게 된다.

 부모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것이요 둘 째 가능하면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남들보다 발육이 처지거나 공부가 뒤떨어지면 부모는 괴로워 한다. 만약 나이가 이십 삼십이 넘어서도 계속 어린애 같은 짓만하면 부모에게 모든 것을 다 요구하다면 성장이 안된 것이다.

 성장해서 훌륭하게 되면 사실 부모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은 것 이건만 부모들은 모든 것을 다 털어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미 국에 유학을 떠날 때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팔았다. 그래서 그때 돈 으로 이백만원을 만들어서 주었다. 물론 그것으로는 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동안 절약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폐결핵에 걸렸다. 당시는 육이오가 그친지 얼마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끼니도 잇기 어려웠다. 나는 누워있었고 어머니는 매 일 영등포 시장에 나가서 쪼그리고 앉아 미군 물건을 팔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병든 자식을 위해서 음식과 약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 일 이 여러 해가 계속되었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떼만 썼지 그후에도 한 번도 감사하는 말을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 보니 아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털 마음이 되는 것 을 느낀다. 그러면서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느끼면서 그 뜻을 져버리 지 않고 훌륭히 살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장이 다. 어린이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한 사람으로 성공했고 더 성장하는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내 마음 속에서는 계속 음성을 듣는 것이다. 좌절하지 말고 성장하라. 부모로부터 그 많은 희생의 노 고를 얻은 뒤에 네가 여기서 좌절하면 되겠는가! 생각해보라. 자녀가 공부하다 집어치우고 좌저해서 낙오된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러므로 나 자신도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도 절 대로 성장을 중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우리 아버지도 성장을 원하신다. 하나니은 우리를 구원하시 기 위해서 하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빠져 있는 무 서운 상황으로 들어오셨다.배고픔과 가난을 짊어지고 사람들의 비판과 배신과 모욕을 짊어지셨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자기 잘못 때 문인가 그의 손목들과 두 발 위헤 느슨하게 박힌 못은 그에게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주었다.

 이것이 누구 때문이며 무엇 때문인가 부모가 된 이들은 들어보라.

영적인 자녀인 우리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모든 희생의 댓 가로 우리는 생명을 다시 찾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주시는 영적인 도 움으로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그러한 음성을 마음에서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비참한 자녀 인것이다.그의 희생을 생각하라.

 우리가 이제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었기에 이러한 삼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아무리 무식하고 무식한 부모라도 자식을 향한 그들의 뜻 만은 하나님 비슷한 것이다. 부모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바른 자식 노릇이 어떤 것임을 알게 된다. 부모의 모든 희생 을 감사하며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모든 희 생을 우리 삶에서 누려야 한다.

 며칠 전에 딸을 잃은 엄마에게 전도를 했다. 국민학교 2학년이 취장 암으로 급작스럽게 응급실에서 죽었다.딸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대 신 죽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이제 딸의 방에서 딸이 믿던 신앙의 이야 기를 듣는다. 결신은 매우 쉬웠다. 딸이 간 곳에 자기도 가겠다는 엄 마에게 엄마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이야기 해주었다. 너무 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 아니던가.

 엄마의 사랑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부모는 자녀를 응급실까지 데리고 갔다. 거기서 밤을 세웠다. 그러나 딸을 살릴 힘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를 응급실로 데 리고 갈뿐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려내시는 분이다. 위급할 시간 뿐 아니라 언제던지 보호하고 인도하고 교육시키시는 분이다.우리가 그리스도만큼이나 위대하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삶을 향해서 어린이들 만큼의 확신은 가져야 한다. 어린이는 천국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부모가 있기 때문이 다. 자녀들을 보라. 부모가 있는 한도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 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를 부러워한다. "참 좋은 때다. 무슨 걱정이 있겠냐. 무슨 책임 질 일이 있고 누구 먹여 살릴 일도 없으니.

"그렇다. 어린이는 천국에 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린이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면 즉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의 할 일은 부모의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아들이나 할 일이다. 어린이는 그저 행복해 하면서 부모의 재산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기뻐하며 그의 재산으로 행복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멀리 하늘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바로 우리 옆 에 우리 안에 계시다. 그는 보혜사의 이름으로 계시다. 보혜사는 변화 하고 보호하고 돕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이라는 뜻이다.하나님은 분명 히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리지 않는다.세상이 나를 몰 라도 나는 너희 속에 너희와 함께 확실히 있다. 사랑하는 자녀야 행복 하라. 두려워 말고 오직성장하라.

 또한 부모들은 이제 보혜사의 심정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자신 이 자녀에게는 하나님인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 고자 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원한 생명과 신앙으로 양 육할 것을 마음에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 님께 아버지께 기도하며 도움을 요청하라.우리에게 보혜사가 있기에 우리도 보혜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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