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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지로 택하신 이유 (요 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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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에 주님이 말씀하신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이 비유를 깊히 묵상하면 우리 신앙생활에 참으로 큰 깨달음과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참 포도나무로 심 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가지와 포도나무와는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줄기가 없어지면 가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참 생명의 근원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절대의존적인 관계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우리는 주님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고 촉구하고 계신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오늘은 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포도나무의 그 가지로 택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가지가 나무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낸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가지로서 택하신 것입 니다.

우리 신앙결단할 때 우리가 여러 종교와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중 에서 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왜 택하여서 가지되게 하셨는가 하면, 과실을 맺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요10:10의 말씀과 상통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 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 이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그 자체로 생명을 얻을 뿐 아리라, 열매를 풍성히 맺는 풍성한 생명으로 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바라고 계시는 열매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그것은 기쁨의 충만입니다.

요15: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 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포도나무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것을 말씀해 주심은 가지로 붙어 있는 너희에게 내 기쁨이 있어서 그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한 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쁨충만의 열매가 어디서 부터 오는 것인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하는 것입니다.

 즉 가지가 그 나무에서 진액을 빨아 올려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기쁨을 빨아 올려서 기쁨이 충만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기쁨의 열매는 우리 주님으로 연유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가지시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눅15장에 잃어버린 자를 찾는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 돌아옴 잃은 드라크마-나와 함께 즐기자 탕자-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자신의 자녀삼으시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주님이 기뻐하심-눅10:31,성령으로 기뻐하심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 생명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이규석 목사님-자녀보다는 자녀를 낳은 자들이 기뻐하는 것.

중학생 이후에 17개월짜리 여아를 낳으셨는데,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하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부모가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알게 되고 이 기쁨을 잘 소화하게 되면 또한 내가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기쁨이 있는 것 입니다.

 주님안에서 건져내는 기쁨이기에 세상것들에 의해서 변해지는 상대 적인 기쁨이 아니고,절대적인 것입니다.

구원의 우물물에서 기쁨을 길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기뻐하라!"

(예)토레이 일년 365일을 세속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예수와 함께 하루 24시간을 사는 것이 더 많은 기쁨을 얻 을 것이다. 나는 이 두가지를 경험을 통해서 너무 나 잘 알고 있다.

 2.사랑의 열매입니다.

12절에 보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다시 이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진액을 빨아들여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사랑을 깊히 깨닫고 묵상하게 될 때, 이웃과 형제에 대한 사랑의 참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것 입니다.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이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 을 정말 알기 시작하는 것고,그러고 우리도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 하는 것입니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사랑을 주시는데 여기보면,'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고하게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똑같은 인간이 되어 주는 같이 되어 주는 친구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죽어 주심으 로서 가장 큰 사랑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풀어 주고 희생해 준다고 할지라도 동정적으로 내 려다 보면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친구가 되어주는 입장에서,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서서 사랑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톨스토이,-적선을 원하는 자를 안아줌.

 사랑을 깊히 깨닫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예)사랑을 못받은 아이들 10대의 소년들이 농구경기를 구경하고 돌아가다가 길에서 무슨 일로 말썽이 생겨 편싸움이 벌어졌다. 치고받고 때리고 그래서 깨지고 터지고 하였다. 경찰이 달려와 그들의 싸움을 겨우 뜯어 말렸다. 무슨 일로 싸웠느냐고 경찰이 물었다.

그들은 부모들을 만나 보기로 하였다. 그 결과는 매우 흥미 있는 우리의 관심사이다. 즉 그중의 두 소년은 꽤 넉넉한 살림을 하는 가정의 아이들이었는데, 그 두 집의 어머니는 각각 댄스에 열중하여 밤중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고 한다. 한 소년은 어머니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아이는 다섯 살부터 계모의 밑에서 자랐다. 나머지 한 소년은 음식 점을 경영하는 부모를 가졌는데 밤 늦게까지 그들은 영업에 바빴다. 위에서 말한 다섯 소년들의 가정 중의 어느 한 가정 도 그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기네 아들이 어디를 갔는지 무엇 을 하는지 전연 관심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부모가 있긴 있었어도 그 소년들의 정신적인 깊은 요구를 채 울 수 있는 사랑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여 그들은 결국 정신적인 고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거칠어지 고 비뚤어지고 그들의 성격은 이지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항상 나에게 크게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 니다.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 어떠함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삼중고의 인생을 살았던 헬렌 켈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 습니다.

"인생에게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눈을 가지고 있으되 제대로 볼 줄 모르고 귀를 가지고 있 으되 제대로 들을 줄 모르며 입을 가지고 있으되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사랑을 받고 사랑을 가지고 있 으되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3.기도로서 응답받는 응답의 열매를 가지고 살것을 말씀합니다.

 제가 믿기는 기도라는 것은 어떤 주술이나,명상이나 소원을 이루는 어떤 주문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속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가지로 붙어있어서 하나님과 바르게 교제가 있을 때,그 때 기도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그 진액같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며 실제적으로는 기 도하기 전에 이미 아신다는 사실이 전제되기에 기도하게 되는 것입 니다.

 구하라,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하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이 평생 기도하시면서 사셨고 지금도 기도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공생애 시작이 기도,마지막도 용서를 구하는 기도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를 하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 으셔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하시기에 우리도 기도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기초로하여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의 열매가 있음을 믿 어야 합니다.

그 응답의 많은 열매가 우리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웰즈(H.G.Wells)는 [대주교의 죽음]이란 단편을 썼다.

대주교는 날마다의 습관처럼 그날 저녁에도 성당에서 기도 를 시작했다. 늘 똑같은 기도를 반복하는 것 뿐이었다. 언제 나 시작하는 기도문처럼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 냐"(Yes,what is it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듣자, 대주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는 이 야기이다.

이 단편은 날카로운 풍자이다.

대주교는 평생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를 듣고 있는 하나님 이 있고 그 기도가 정말 응답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것이다. 그래서 정말 대답이 있자 너무 놀라 쓰러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안드리는가 이런 예배를 안 드리고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며 예배하고 있 는가

나무를 심은 자의 기쁨은 가지마다 달려 있는 열매 때문이요, 가지도 보람된 것은 생명의 공급을 받으며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 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의 영광인 것입니다.

많은 열매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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