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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요 0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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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되심을 증명하려고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선생님 선생님께서 증거한 그 분도 세례를 주는데 그 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가고 있습니다."라고 보고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선생님이 저분보다 더 선배가 되지 않습니까"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를 간파한 세례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할 분이므로 많은 사 람이 그리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해서 내가 쇠하는 것으로 그가 흥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의아심을 갖 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흥하고 잘 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흥성에 유익이되지 않을까 하 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중에 어느 부분을 맡는 것이 그 리스도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보통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쇠하여야 그리스도 께서 흥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흥하여야 할 일이 무었인지를 먼저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무었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리고 무었을 성공시켜 야만 되는 분이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음을 위해 오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 공하시고자 하는 것도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역설 적입니다.

그리스도게서는 저주받아 죽는 것으로 성공하셔야 되고, 그것으로 흥하 셔야 되며 죽으셔야 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무었에 익숙해 있느냐 하면 '내가 누구를 도와줌으로 말미 암아 그 분의 실패와 멸망을 저지시키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있 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에는 본문에서 세례 요한의 쇠함으로 예수님이 흥하 여 진다면, 세례 요한이 쇠 하여져서 그리스도께서 쇠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 세례 요한이 죽음으로써 그리스 도는 죽지 않고 그 다음부터 성공을 해야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라고 볼수 있지 않 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밑거름 삼아서 죽으십니다. 우리가 생 각해 볼때에 차라리 그럴 바에야 세례 요한을 죽이지나 마시지... 하는 생각을 하 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죽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흥하는 것이란 무었을 말하는 지를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흥하는 것이란 다른 일이 아니고 바로 그가 죽어야 할 필요성과 그 사실을 모두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이 땅에서의 그 리스도의 흥함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일차적으로 영광과 성공의 주가 아니라, 죽어야 하는 분 으로 이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죽지 않고 되는 일이 있다면 그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쇠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 자들이 가장 추구하는 것이 무었이냐 하면 의로운 것, 거룩한 것, 사랑하며 희생하 는 것, 봉사하는 것,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 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 없게 된다면 그것만큼 하나님 앞에 욕된 일이 없게되는 것 입니다.

사실, 우리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사랑하며 희생하는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요구받는 자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대사들 이요, 신령한 일과 절대 진리를 책임진 사람으로 사회에 들어 갑니다 이때, 신자가 그와같은 사람임을 어떻게 증명하고 나타냅니까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또 지며, 의롭고 거룩하고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그것을 증명합 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이 잘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대목에 가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사랑한 것 때문에 그들이 변화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실제적으 로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받 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같은 생각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내가 사랑하고, 내가 봉사한 것 때문에 그들이 변화되면 십자가가 서 있을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인간도 십자가 이외의 방법으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또한, 십자가 없이 변화된 변화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든 단체이든 그리스도의 십 자가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을 봉사라고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한다 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놀라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외로 사랑이자 희생이 며, 의 와 거룩일 것입니다. 왜냐면 만일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뒤로 제체고 만들어진 의와 거룩과 사랑은 십자가와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기독교에 큰 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씨이저 도 아니고 히틀러도 아닌 슈바이쩌 일 것입니다.

슈바이쩌가 어떤 사람인줄 아십니까 슈바이쩌는 우리가 아는 대로 흑인들의 아버 지요 아프리카의 횃불입니다. 우리 모두는 슈바이쩌를 존경합니다. 왜냐면 인간적 차원에서 윤리와 휴머니즘으로(인간애)는 슈바이쩌를 따라갈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일들을 기독교로 수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 니까 그것은 그의 신학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슈바이쩌가 유명한 의사요, 오 르가니스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가 신학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쩌는 그의 신학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다. 그는 원래 오셔서 인간들을 계 몽하고 지도하여 하늘나라의 비밀들과 진리들로 인간들을 분발시키고 이 세상에 하 나님 나라를 이룩하려고 오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아마도 그를 추종하지 않자 마침 내 자신이 죽음의 길로 들어감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을 분발시키고 촉발 시키기 위 하여 희생제물이 되신 분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 입니다. 슈바이쩌가 자기의 주장대로 예수님을 이해 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도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 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이해하기를 사회를 정화시키고 도덕성을 회복시키는 소위 사회 구원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 은 기독교를 하나의 인간 수양과 도덕 수양을 도와주는 선량한 기관으로 여길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는 기독 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모두가 다 빛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체요 생명과 진리와 하나님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리스도로 인하여 진리를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도무지 스스로는 빠져 나올 수 없었던 저주의 자리에서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우 리를 사셔서 우리를 끌고 나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되어진 사람을 신자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복음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휴머니즘을 끌어내고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이끌어 내어 십자 가 없이도 선과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기독교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16:24절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 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서 신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 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 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 '자기'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말하므로 나의 십자가란 나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신자가 되려면 자기의 죽음을 치루고 나서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를 좇는데 있어 서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 울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께 도움이 되리라는 혼동을 합니다. 그 래서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킵니다.

"네가 이류, 삼류 대학을 다니면서 예수를 믿는 것과 일류 대학을 다니면서 예수 를 믿는 것 중에 어느 쪽이 하나님 앞에서 더 영광스러우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군소리 말고 고 3동안만은 집에 꼭 박혀서 공부나 열심히 해라"그럽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은 일류 대학 때문에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류 대학 때문에 늘 손해를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일류대학 이라는 미명 하에 하나님은 이류, 삼류로 전락되는 예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심하면 아예 하나님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살 수 있도록 자녀를 훈련 시키고 있는 것입니 다.

또한, 우리는 돈 이나 권세나 명예로 인해 하나님께서 도움을 받으실 줄 생각합니 다. 그래서 '신자로서 돈과 권세와 명예를 가지는데 하나님께서 밀어 주셔야만 됩 니다' 하면서 억지를 부리고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것 때문에 하나 님께서 이익을 보시게 된다고 생각 한다면 다 집어 던지고 알몸으로 하나님께 나아 오십시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돈과 권세와 명예로 하나님께 이익을 끼쳐드리겠 다고 장담해 왔는지 아십니까 그래 놓고서 도리어 돈과 명예와 권세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들을 식은 죽먹듯 모르는 척 해 왔다는 것을 아십니 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런 말에 더 이상 속으시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에게는 각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을 따름입니다. '너는 돈을 간수 해라', '너는 지위를 맡아라','너는 권세를 맡아라' 이렇게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늘 자기의 죽음을 지고 그리스도를 좇 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살펴 볼 또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자들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16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는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 이 나오는 장입니다.

마16: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말씀을 들 으신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기뻐 하셨습니다. 그러나 21-22절을 보십시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 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이렇게 예수님이 죽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랬더니 2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주 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베드로의 말의 뜻은 '오! 예수님이 돌아가시다니요, 죽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 시고 예수님은 사셔야지요.'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생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23절에는 이에 대하여 무서운 말씀을 기록하고 있 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 각하는도다."하시면서 이어 24절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 이니라" 다시말해 나를 따라오려거든 사람의 일을 가지고 오지마라, 너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나에게 쓸모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 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안에서는 이같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부인하 고 주를 따를 것이냐 아니면 자기의 것을 첨가시키며 주를 따를 것인가 하는 싸 움입니다. 사람의 것, 자기 것을 첨가시켜 놓은 것을 가리켜 이단 사설이라고 그럽 니다. 이것만큼 우리가 경계하는 것도 없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인간이 만든 윤리나 도덕이나 계율로서 대단한 것 같이 치장 해 놓고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이 필요 없는 것처럼 가르치는가 하면, 인간이 만든 윤리와 말로서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기독교를 대 치 하려는 무리들이 소리 없이 자리잡고 우리 주변에서 신자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본능은 원래부터 기독교의 신령한 것과 진리에 대하여 귀 귀울이지 않으려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사람의 일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가지 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웅변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곳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찾아 보십시다. 행7 장 내용은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에 한 아주 긴 설교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습 니다. 그러면서 51-53절까지에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 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하니라." 이 말씀은 결론 부분입니다만 앞에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하나님이 자주 선지자들을 보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말을 듣지 않았지 않는가...하는 내 용 이었습니다.

이 설교를 하고 있을 때에 앞에 모여선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로서 그리 스도의복음을 반대하는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메사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스데반은 그리스도가 바로 메사야 라는 주장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 것입 니다.

스데반이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 율법주의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생하지 못한 인간이 언제 분명한 진리에 대해 바로 안 적이 있었더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이 당신의 종들을 보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너희가 한 번이라도 그들의 말과 권위를 인 정한 적이 있었으며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게서 오셨는데도 너희 가 인정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을 책망하는 뜻이 아니었 습니다.

다만, "이 인간들아, 너희들이 하나님과 신령한 것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이해할 구석이 있느냐"고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그 정곡을 찔러 설명했는데도 알아 듣지 못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죽여 버렸습니다. 죽는 스데반은 그 얼굴이 천사같이 빛났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진리가 무었이며 인간이 그것에 대하여 도 무지 알아 듣지 못하는 이방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돌에 맞아 죽음으로 생애가 끝났지만 오고오는 세대에 성경은 이 사건을 전하 면서 인간이란 진리에 대하여 도대체 반응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 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감격하게 됩니다. 도무지 진리에 대하여 반응할 수 없는 존 재였던 무능한 인간인 나를 지금 이 진리의 자리에 앉아있게 해 주셨다는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같은 감격과 축복을 받지못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도 안타까와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주여, 이 친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친구는 아직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대신하여 이 친구를 맡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너무도 무능합니다. 제가 죽고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야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 하여야 하리라"는 세례 요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 거기 그냥 계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요."하면서 혼자서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복음입니까 어느 인간이 어느 심령이 스스로 자기 속에 있 는 것을 가지고 기독교를 만들 수 있느냐 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죽어셔야 했던 것이 너무나도 절망적인 일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도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었을 요구하고 있습 니까 사람들을 설득 시키는 기술입니까 아닙니다. 전도의 사명을 받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은혜를 베푸시옵소서!'하는 애끊는 기 도와 호소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강한 진리와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신하려고 하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제 그리스도로 하여금 흥하게 하십시오. 주님 만이 앞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그 리고 자기자신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꽃필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모든 심 령들에게 속속히 들어 박혀 복된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착찹한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 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앞 세우고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내 세운다고 말 만 있을 뿐 온통 자기 자신으로 치장된 신앙이었습니다. 공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구호처럼 잘도 외치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공부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마치 변두리 허름한 양로원으로나 내 몰듯이 그리 무심하게 대접할 수 있 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나의 안방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도 황송할 판인데, 공부와 출세라는 명목으로 어쩌다 생각나면 그나마 한달에 한 두번씩 얼굴만 비추고 돈만 부쳐주면 할바를 다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이러면서 도 말로는 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부로 도움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공과 출세로 영 광을 받으시기 보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시는 일이 더 많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었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십자가를 지 고 오라고 하십니다. 내것을 주장 할 수 없는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오라는 것입니 다.

주님께서는 내가 잘되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으로 흥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광 스럽게 하고 흥성하게 하는 길은 세례 요한의 깨달음 같이 내가 쇠하여 죽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아래서 죽어 질 때에 비로소 진정한 순종이 있으며, 참 믿 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나의 체면과 나의 이름과 나의 영광과 나의 자랑이 죽어지지 않는 한 주 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성공과 출세에도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 니다.

아직도 우리는 너무도 많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 많이 깨어져야 할 부분이 아직도 있으며, 더 낮아져야 할 부분이 상기도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모님 여러분, 십자가 아래 온전히 죽어 지지 않는 한은 고3이 되자마자 절반의 학생들이 아예 주일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은 고3 이 되었을때 신앙이 심하게 퇴색하고 변절하고 마는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3의 문턱은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시련기인 동시에 믿음의 시험이 있는 시기입니다. 누구든지 큰 소리 칠 수 없습니다. 겸손히 주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이 나를 통하여 빛나도록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생 각, 나의 욕심, 나의 뜻, 나의 명예을 내 몫에 태워진 십자가 아래서 온전히 죽임 으로 주님께서 흥하실 수 있도록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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