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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의 허물을 다루는 법 (욥 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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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첫번째 변론(8장)에 이어 두번째로 피력되는 수아 사람 빌닷의 변론이다 첫번째 변론 때의 빌닷은 욥에게 권면과 위로의 말을 했으나, 많은 논쟁을 거친 이후 본문의 두번째 변론 때에는 감정의 격화로, 빌닷은 욥을 악인으로 규정하여 그를 징책하고 정죄하고 있다. 이것은 빌닷의 영적 미숙을 보여주고 있다.

1. 빌닷의 영적 미숙

빌닷은 욥의 고난 배경에는 분명 어떤 죄악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욥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회개하면, 분명 회복과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고 역설했다(8:3-7). 그러나 욥이 스스로 의롭다고 계속 주장하고(13:18), 나아가 자신들에게 '번뇌케 하는 자(16:2), '조룽하는 자’(17:2)라고 말하자, 그만 감정이 격화되었다. 그래서 빌닷은 욥을 악인으로 정죄하고, 악인의 당할 고통과 비난을 욥에게 퍼 부었다(5-21절).
분명히 욥의 고난은 어떤 죄악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하신 경륜으로 말미암은 특별한 고난이었다. 빌닷은 이러한 높은 하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나중에 빌닷은 하나님께 꾸중을 면치 못했다(42:7). 이처럼 영적 미 숙은 종종 종교적인 독선과 아집을 낳는다. 그런고로 오늘날 성도늘은 시편 저자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갈6:1-2)“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형제가 허물을 범하고 상식 이하의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로 급하게 노기를 띤 얼굴로 형제를 정죄하거나 배타시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그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와 겸손으로 형제에게 접근하여 형제의 어그러진 모습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딤후2: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게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이렇게 하여 형제의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 지는 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형제의 실수가 단지 그 형제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아무리 성숙한 신앙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겸손한 심령으로 형제의 허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2. 악인의 궁극적 운명

빌닷이 본문에서 욥을 악인으로 규정한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그것은 그의 영적 미숙의 결과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차원에서. 악인에에 대한 빌닷히 평가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흔히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세상의 불공평 하다고 한탄한다. 때로는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듯이(5-21) 악의 형통함과 번영은 잠깐이요, 마치 짐승이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듯(8-10) 악인은 창졸간에 멸망하고 만다. 멸망하되 뿌리부터 가지까지 철저히 멸망한다. 외부적인 멸망뿐 아니라, 악인에게는 내부적인 두려움이 항상 뒤따른다. 그래서 두려움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키며 기 뒤를 쫓고 있다(11). 결국 악인의 장막은 흑암속에 뭍히고 마는 것이다(5-6)
그러나 성도에게는 비록 고난의 십자가가 있더라도 영생의 소망이 있다.
(고후4:16-18)“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결론>

우리는 나 횬자신앙 생활하여 나 혼자 천국가는 고독한 신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과 더불어 신앙 생활하며 함께 천국을 가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많은 형제들과 어울려 생활하게 되는데 그럴 때 필연적으로 인간 관계에서 불필요한 분란과 아픔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형제의 허물과 설수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그리고 거칠게 반응함으로써 형제를 바로 세
우기는 커녕 실족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인 관계에서의 아픔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슨 권면할 말이 있을 때는 겸손하고 온유한 심령으로 형제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형제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어떻게든 형제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진실된 태도로 형제에게 권면해야 하겠습니다(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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