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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축제에 참여하라 (요 0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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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다녀올 때 꼭 들르는 곳은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올라가시다가 시원한 냉수 한 컵 드시기를 원하셨던 수가성을 야곱의 우물입니다.
이 수가성의 한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하는 중 이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있으나 모두 실제 남편이 아닌 것을 알고 이 분이 메시야임을 깨닫게 되며 예배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예배를 이 산에서 혹은 예루살렘에서 혹 어디서 드려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예배드리는 대상이 누구며 예배드리는 자세가 어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가르치십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를 이끄시며,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류 역사의 흔적이 있는 어느 곳에나 신 앞에 제단을 쌓았던 예배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어느 나라든지 재단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드리는 것이며 예배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우상 숭배자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행하신 행위에 대해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그 사람의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형식으로, 건성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믿음의 분량은 그만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하고 나서 사람에게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 자연 속에서 등산하는 것도 예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베풀며 봉사한다 할지라도 예배를 다신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향한 봉사와 사랑도 예배를 드린후 거기서 흘러나오는 동기에서 사람에게 봉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종드리는 것 없이는 인간에 대한 봉사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을, 이 승리에 대한 축제를 가르켜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승리의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승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 승리를, 그 부활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축제이어야 합니다. 만약 진실된 신앙을 보여 주기를 원한다면 예배드리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아무리 5년, 10년 다녔다 할지라도 예배 태도가 언제나 부자연스럽고 미숙하고 경건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신앙이 아직도 어린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 졸거나 자기중심이 되어 오만불손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 분위기나 목사님의 설교를 평가하고, 자기중심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입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진지하게, 마음을 모두어서 영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때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찬송 소리를 들으면, 아멘 소리를 들으면 참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예배드리는 사람은 감사, 찬양을 드리고 간구를 드리고 중보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찬양과 간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 시간에 늦어 감사의 찬양을 드리지못하고 예배 시간을 뚝 잘라서 설교나 듣고 축도를 받지도, 좋으신 하나님 찬양으로 영광돌리지도 않고 그대로 슬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늦는 것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예배 시간에 늦게 와서 포켓에 손을 넣고 왔다갔다 하는 것도 예배에 방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때는 아주 정각에 문을 닫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지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돕는 것이 되어야지 방해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르게 대하는 것이 모든것에 대해 올바르게 대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잘못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첫시간을 찬송과 영광 돌리고 신앙 고백으로 시작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재헌신을 다짐하고 하나님 종의 축복기도를 받고 하나님 앞에 찬양 드리고 돌아가는 것이 온전한 예배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일에는 분주하지만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줄 모르면 예배 통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온전한 크리스챤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 변화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만남으로 새 생명길을 얻어 기쁨으로 동네에 뛰어들어가 증거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배의 대상인 예수를 바로 알고 예배가 바로 될 때 그는 바로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가장 기본적 태도는 예배드릴 줄 아는 것입니다.
폴 털리히 라는 신학자는 예배는 교회의 고차원적인 응답이며 그 존재의 궁극적인 터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진정으로 드릴 때 생명의 궁극적인 공급을 받고 그 생명의 공급으로 1주일 동안 살 때 세상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이 됩니다.
지난 육.해.공의 대사건 모두가 주일날 일어났습니다. 사상계 주간이었던 권중하 씨라는 분도 주일날 등산을 가서 생명을 잃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여러분의 생명이 보호받고 참 생명과 영생의 삶으로 직결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군 사병은 성경 겉을 쇠로 만는 성경을 포겟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 유래는 어머니가 주신 성경을 주일 예배후 왼쪽 가슴에 꽂고 싸우던 한 병사가 전쟁 중 적군의 포탄을 맞고 전사할 뻔했으나 총알이 신약성경을 뚫지 못하여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일선 병사에게 주는 성경은 Cover를 쇠로 만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받는 새 생명을 얻는 변화를 이것이 바로 예배인줄로 믿습니다.

세번째로 심령의 치유와 평화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 다섯을 두었으나 참된 마음의 평화와 예배의 참된 대상을 알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은 대낮에 우물을 긷는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메시야를 만나, 그 구원의 기쁨을 온동네에 전하게 될 때 그 마을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남이 사도행전을 통해 전해집니다.
일상 생활 가운데 마음의 스트레스, 공포, 미움, 시기, 우상숭배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될 때 마음의 참된 평화, 기쁨이 넘치고 삶이 살만한 가치있는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참소망, 참기쁨, 참평화를 예배드리는 공동체 속에서 느끼십시요. 김일성은 요즈음 그의 동상을 피난시키는 훈련을 시키고 있답니다. 우상숭배하는 백성의 불안, 갈등 또한 김일성의 심리적 갈등은 치유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랜져 웨스트록이라는 전인 치유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의사인 그의 주일날 아침예배 드릴때가 한 주일중 가장 기쁘고 가장 건강한 때라고 합니다. 미국의 제임스스맨톤이라는 가난하고 불신자였던 그는 교회 출석후 분노, 경멸, 냉대의 유혹을 물리치고 기쁨과 만족을 얻는, 참 행복과 평안을 얻는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사람만이 마음의 치유를 받을 줄로 믿습니다.

네번째로 순종과 재헌신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앞에 순종하고 재헌신을 다짐하는 심령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겨울 워싱턴에 눈이 많이와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운데 백악관의 클린턴 부부는 한 감리교회에서 신실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십니다. 그에게 새 생명과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삶을 주십니다.
1978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정보함인 프에블리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으로 납치되었습니다. 어떤 군목님을 통해서 들은 얘기인데 그 군함에 예배를 주관하려 가셨다가 분위기가 되지 않아 여러번 그냥 돌아오셨던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1년동안 포로 생활후 크리스마스때 미국으로 돌아온 후 기자회견을 통해 그들이 21년간의 삶동안 모든 것이 자유로웠으나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성경을 읽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예배 드리지 못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이 거룩한 주일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성수하시어 승리의 축제에 참여하시고 부활과 승리의 삶으로 이끄시는 축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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