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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겉 탕자와 속 탕자 아들 복종 신자 (눅 15: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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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예수 믿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식어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예배에 한번도 빠진 것이 없고 십일조도 확실하게 드린다. 교회 일이 나 성경도 누구보다 많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차갑 고 얼굴은 굳어져 있다. 예배나 삶에서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 로도 무엇이 문제인지 안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첫 사랑은 다시 잘 회복되지 않는 것을 본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은 그것이 신앙인줄 알게 된다. 아마도 바리새인들의 전통이 그러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열심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엄격한 분이고 약속한 것은 지며야 하고 명령 하신대로 안하면 벌주는 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일이 잘 안풀리는 것 같으면 하나님이 벌 주신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펴본 다. 신앙생활을 힘들고 불안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신자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정 지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만약 교회가 이런 상태라면 냉냉하고 비판 적이고 언제든지 일어나서 따지는 사람이 나타날까봐 두려운 상태이 다. 또한 이런 분우기를 타고 부족한 사람일수록 남들보고 사랑이 없 다고 비난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정당화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한 공동 체의 문화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예수께 이 이야기를 하실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중생한 사람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니에 의해 참으 로 변한 사람은 능력이 공급된다. 비록 외모로 볼 때는 별반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기대하지않 아도 하나님은 기대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새 일을 하신다. 탕자 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진행하신다. 돌아온 탕자가 조금만 협조하면 된 다. 그러나 돌아온 탕자가 아니고 마음의 탕자로서 집에 잘있는 자식 이라 하더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복종만한다면 앞에 말한 바리새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성경과 의식과 안식일 준수를 포함한 모든 율법에 철저하게 복종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 도 마음은 아버지와 달랐다.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니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탕자 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탕자를 사랑해서 환대하 는 것을 보고는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한다. 아버지가 나와서 청해도 거절한다. 그리고 말한다.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 다는데도 내게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내 벗과 놀게 한 적이 없더니 탕자 가 돌아오니 송아지를 잡습니까"

그 아버지의 대답이 무엇이던가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 이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 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이 속에 바리새인 의 사랑 없이 굳고 냉냉하진 심정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고 복음의 이 해를 돕는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을 너무 단순히 보면 절대로 능력의 생활을 할 수 없다.

 아버지가 말한다. 첫째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다." 그는 아버지와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누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저 밖의 존 재요 그저 명령하고 벌하시는 율법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나는 복종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것을 주고 칭찬해줄 것이다." 이것이 큰 아들 의 생각이었다. 오늘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이 아들처럼 살지 않는가!

이 아버지는 탕자라도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풍족한 분이었다.그리고 그 탕자가 돌아올때 모든 것을 제쳐놓고 받아들이고 축복하는 이였다.

"내 것이 다 네것이다." 이것이 아버지가 주시는 복이다. 큰 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아버지 것은 아버지 것이요 내 것만이 내 것이다.

그러므로 잘 해야 아버지가 무엇인가 나누어 줄 것이다." 이 마음은 탕자의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스스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나도 이 큰 아들처럼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실제로는 아 무 것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내 것이 다 네 것이라는 말은 듣고 알면서도 정말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아버지처럼 살아 볼 수 없는가!

이 질문들을 두가지로 모아보자 첫째, 내가 하나님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고 있지않은가아니면 내 수준으로 신앙을 가지고 거의 아무 것 도 기대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둘째,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 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가 내 좁은 욕심이나 채우 거나 헛된 꿈에 젖어서 현실도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이 얻어지면 무엇을 두려워할게 있을 까! 우선 하나님과 그의 모든 재산이 내게 언제나 내 주위에 있다. 마 음은 죄인이고 실패자이고 어둠 속에 죽고 싶은 심정이면서 엄청난 그 무엇을 요구하지 말자. 우선 마음부터 하나님의 것이 즉 그의 마음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자. 신앙은 외부적인 체험보다 내면적인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 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은 우리 밖에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밖에 있다 면 아무리 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것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바리새인 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하나님과 그의 율법은 밖에 있고 그는 복종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대하는 것은 복종에 대한 댓가일 뿐이었 다. 내면적인 탕자의 마음이다.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처럼 된다면 이제 잔치할 준비는 된 것이다. 또 한 아버지처럼 죽었다가 돌아온 동생들을 찾는 것과 그들을 받아들여 함께 기뻐하게 된다. 이미 마음 속의 첫 사랑은 회복되었을 것이다.

자 이제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수동적인 신앙에서 일어서라. 그것은 속탕자의 마음이다. 이제 아들답게 집안을 다스리고 확장시키라. 그렇 게 내 삶과 운명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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