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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가정 (룻 0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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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룻의 결혼에 관한 내용과 그 축복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엘리멜렉의 가문, 그것도 자기 동족이 아닌 나라의 사람에게 시집을 왔던 룻이 뜻하지 않는 가 문의 징계로 남편을 잃고 소망없는 과부의 집안에서 구차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스라엘 그 어떤 사람들보 다도 뛰어난 믿음을 보임으로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자들을 능히 부끄럽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1. 하나님의 법을 이행하기 보다, 이해타산에 밝은 자는 축복에서 제외된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것을 알 았기에 성읍의 장로들 10명을 증인으로 삼고 그 앞에서 이 친족에게 나오미 과부 댁의 기업을 무를 의무가 있음을 알려준다. 만일 당신이 무르기를 포기하면 그 밖 에 남은 친족은 바로 자신이므로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노라고 하였다.

그 친족은 처음에는 기업을 무르겠노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무르지 않겠다고 번복 을 하게된다. 왜 대답을 하였다가 번복을 하게 되었는지는 몇가지 견해가 있습니 다만, 분명한 것은 이해타산을 따져본 결과 맞지 않아서임이 틀림이 없다.

(룻4:6)"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 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한다. 처음에 기업을 무를려고 대답하였던 것은 여러모로 당장 이익이 생기는 것으 로 생각이 들었는데, 다기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서 기업을 잇 게 하기 위해서 그 땅을 사는 경비를 들여야 되며, 룻과 그 가족을 계속 보호해야 된다는 이중적인 경제고를 생각하여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득 인 것같이 보였는데, 결국은 자신의 기업이 감소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다.

이같은 생각들이 모두 사실이었지만, 그 친족의 이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기쁘게 지키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의 이익에 맞으면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피할려는 그 신앙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그릇된 자세이다. 이런 자를 메시야의 혈통의 조상이 되는 영광 을 허락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가까운 친족이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므로, 보아스에게 기업무를 자격 이 승계된 것이다.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줄 때는 새 로운 소유자에게 신을 벗어서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족은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그 의무를 승계하였다. 이렇게 하여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권리를 공개적이고도 합법적으로 취득하였다.

 2. 믿음의 사람과 경건한 사람이 놀라운 구원의 반열에서 쓰임을 받았다.

 마침내 보아스와 룻이 결혼을 하였다. 이로써 룻은 가나안 여인 라합과 다말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계보에 드는 영광스러운 이방 여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보아스와 룻이 가정을 이루어 낳은 자손들은 다윗 왕가를 소개하는 족보적 배경이 되었다. 베레스로부터 보아스를 거쳐 다윗의 계보가 이르써 형성되었는데, 유대의 가장 강력한 왕조 가계가 룻과 보아스의 결혼으로써 탄생된 것이다.

아무리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닐 수 없 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셨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결국 이방인들을 위한 전초전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고 그것만을 놓고 자랑할 것이 못된 다. 중요한 것은 선민다운 경건함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오미의 친족과 같이 하나님조차 자신의 이해타산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가도 미련없이 버리고 내팽개치는 세 상적이고 육신적인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신령한 축복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하 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 적 축복에 대하여 완전히 무지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 중에는 보아스와 같이 선민 으로서도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다. 이방인이라고 하여서 모두 다 멸망받을 자 들은 아니다. 룻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구원의 반열에 들어올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기둥같이 쓰임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전통이나 연수의 자랑, 역사 자랑, 옛날의 열심 등이 이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 자랑 여부는 천국 가서 가려지게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겸손히 수종들려는 순종 하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은지 얼마되지 않고 허물투성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빼고 소극적일 필 요는 없다. 담대히 주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오래 믿은 성도는 보아스와 같이 신실하게 쓰임받아야 하고, 믿은지 얼마되지 않 는 성도는 룻과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시 기를 축원드린다. 이것이 구원의 참된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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