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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의 조건 (마 08: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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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이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예를 들어 자녀를 학교에 보내게 되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합니다.그러나 학교는 무료가 아닙니다.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결혼을 할 때도 결혼에 대한 대가가 있습니다.결혼을 함으로써 행복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유익하지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거기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습니다.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들은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1.명령의 이유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마8:18)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령을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거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의의 태양이십니다.태양은 한 지역만 비출 수가 없습니다.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태양이 비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의의 태양이시기 때문에 한 곳에만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한 지역에만 국한될 수가 없습니다.복음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파되어야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그 당시에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그것은 잘 나타납니다.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자,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된다면 물질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왕이 된다는 것을 최상의 진급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에게는 진급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우주의 왕입니다.그런 예수님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나라의 왕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명예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는 저들의 복음에 대한 열심을 시험해보려고 했습니다.

2.두 명의 제자 지망생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마8:19)
서기관 한 명이 예수님께로 와서 어디로 가든지 좇겠다고 했습니다.좇아가는 것이 제자입니다.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한 서기관이 신청을 했습니다.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좇아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제자 지망생인 서기관은 너무나 서둘렀습니다.그저 예수님 말씀을 듣고는 서둘러서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주님의 제자는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지망생인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그 당시에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베풀었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좇아가면 생기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들은 기독교를 기복신앙으로 착각을 한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병도 고치고 영혼이 구원받고…’기독교를 기복신앙으로 생각한 것입니다.물론 예수 믿으면 축복 받습니다.예수 믿으면 축복받는다는 말은 이 세상과 내세라는 전체를 통해서 볼 때를 말한 것입니다.그러나 이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가버나움에 가보면 시몬 베드로가 살던 집이 있습니다.시몬 베드로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그는 어부로서는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자기 배도 있고,함께 일하는 조합원들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간 다음에 그는 물질적으로 얻은것이 없습니다.나중에 그에게 다가온 것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힌 것밖에 없습니다.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개죽음이라고 오해를 할 만큼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가면 진주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 문마다 제자들의 이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시몬 베드로의 이름이 있습니다.이 세상 안에서만 본다면 시몬 베드로는 얻은 것이 없습니다.다 잃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참으로 얻은 사람입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부자도 됩니다.그러나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에만 국한해서 생각할 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기복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그런데 이 서기관은 기복적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얻고 출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세속적인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물론 세속적인 것을 전혀 주시지 않는것은 아닙니다.필요에 따라서는 풍성하게 주시지만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아니하고는,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이 서기관 청년은 너무 빨리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빨리 결정하는 사람은 빨리 후회합니다.신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아무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아마도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이 청년은 결단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또 다른 제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8:21,22)
물론 이들은 열두 제자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주님이 초청을 하신 것 같습니다.그러나 그가 대답하기를 부친을 장사하고 따라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관습은 부모님이 고령이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자식이 그 부모의 곁을 떠나면 안됩니다.멀리 갔다가는 장례식을 치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또 병든 부모님이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당시의 관습으로 보아서 이 청년의 부모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고령이거나 병들어 누워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훌륭란 효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지 1년 안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주님을 따르는 것은 시급합니다.예수님께서 이 제자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선권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그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문자적으로 보면 말이 이상하지만 여기서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말한 것입니다.
첫번째 청년은 너무 서둘렀고,두번째 청년은 소명을 받고도 너무 주저했습니다.그리고 그는 세상적인 변명을 했습니다.그것이 자기의 영혼과 생명에 관계되는 문제인데 궁색한 변명을 했습니다.“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이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3.주님을 따르는 자의 각오
결론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의 각오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절)는 말씀입니다.우리들이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는 가난도 각오하고 손해도 각오하고 욕먹는 것도 각오하고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심지어 집까지도 없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는 주님의 소명없이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첫번째 청년은 주님의 소명이 없었습니다.주님이 우리들을 부를 때라야 주님 앞에 갈수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불렀습니다.누구나 다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수고하고 짐진 자들만 부르셨습니다
세번째로 주님의 일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세상일에 우선권을 두면 안됩니다.세상적인 쾌락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첫째로 가난과 손해와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두번째는 주님의 소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세번째는 주님의 일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제자들은 선생님처럼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머리 둘 곳이 없을 것을 각오 해야 합니다.그러면 예수 믿기 편합니다.예수 믿으면 출세하고 성공하기만을 바라지 마십시오.십일조를 내도 고난 받을 사람은 받습니다.다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십일조 정신으로 살 때,청지기 정신으로 살 때 그 사람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예수를 믿으면 세속적이고 원리적인 축복도 옵니다.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아야 합니다.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이런 각오를 가짐으로써 주님 앞에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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