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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누고자 하는 자 (왕상 17:8-16, 막 1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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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숭배론을 주창했던 카알라일의 주장에 의하면 '그저 백성들은 개처럼 끌려가더라도 한 영웅의 지도력으로 나라는 흥한다'라는 것이 다. 그는 이러한 영웅숭배론으로 마호메트를 언급했고, 많은 지도자들 을 언급했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독교의 중 심이 영웅이 아니고 바로 민중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영웅이 아닌 민중 속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 린아이와 같이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양 99마리 보다는 잃은 양 한마리에 더 관심하셨고, 집안에 있는 아들 보다는 집을 나간 탕자에 게 더욱 관심하셨고, 많은 돈을 바치는 부자 보다는 적은 돈 두 렙돈 을 바치는 가난한 과부에 대해 더욱 관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 스로 자신의 오심을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 노라' 말씀 하셨다. 그래서 소자중 한사람을 실족케 하거든 연자멧돌 을 지고 죽으라고 할 정도로 예수의 생애는 비천한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역사를 영어로 하면 History이다. 이 것의 뜻은 바로 His story(그 의 이야기)라고 한다. 역사의 중심이 되는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웅처럼 산 사람이 결코 아니었고 나눔으로 평생을 민중과 더불어 산 사람이었다. 우리가 크리 스찬이라고 할 때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며 사는 것 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교회학교에서 들었던 동화중에 [천국과 지옥]이라 는 것이있다. 지옥에서는 자신의 팔보다 더 긴 수저로 자신만 먹으려 하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천국에서는 긴 수저로 식사를 하는데 남에 게 먹여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상부상조의 식탁공동 체를 이루는 곳, 그곳이 천국이라는 이야기다. 교회는 빛과 소금의 직 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나눔이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폭정을 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세벧 과 결혼하여 이방신을 숭배하였고 선지자 엘리야를 핍박하였다. 아합 왕의 폭정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가뭄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졌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과부에게 보내 과부의 한줌의 밀가루와 몇방 울의 기름을 나누게 하셨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과부에게 나눔으로 얻 는 기쁨을 가르치신 것이다.

 신약시대 성전에는 13개의 헌금통이 있었다. 그 헌금통중에 9개는 성전을 위한 헌금이고, 4개는 빈민구제를 위한 헌금이었다. 세상 사람 모두의 관심이 많은 헌금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은 바로 가장 적은 헌금을 드리는, 그러나 생활비 전체를 바치는 두렙돈의 과 부에게 있었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물 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네 것을 나누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물질, 시간 등일 것이다. 바로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다.

 종교개혁 당시, 알브레이트 듀러의 작품 [사도의 손]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무런 느낌 도 없이 막연하게 기도하는 손의 그림을 보고 있지만, 이 작품은 나눔 의 기막힌 사연이 들어있는 애절한 것이다. 알브레이트 듀러는 친구와 둘이 도시로 그림공부를 하러 갔다. 그러나 돈이 없자 친구는 듀러에 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학비를 벌테니, 네가 먼저 그림공부를 하여 라. 너의 그림공부가 끝나면 그 다음에 내가 그림공부를 하겠다.' 그 래서 한 사람은 열심히 돈을 벌고, 듀러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 러나 돈을 벌던 친구가 오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더이상은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는 실망치 않고 오히려 듀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었다. 자신은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친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그의 손은 일그러질데로 일그러졌다. 바로 이런 손 을 듀러가 그린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눈이 많이 오는 산길에 한사람이 쓰러져 있 다. 그는 곧 얼어 죽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그의 옆을 지나 갈때 살 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람은 이 눈속에 나 혼자 도 살기가 힘든데 어떻게 당신을 구해 줄 수 있느냐고 그냥 지나쳐 가 버렸다. 잠시후 또 한사람이 지나가는데 역시 살려달라고 외쳤다. 이 사람은 곧 얼어 죽게 된 사람을 업고 눈 덮힌 산길을 갔다. 조금 가다 보니 길에 얼어 죽은 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먼저 갔던 사람이었다. 눈길에 사람을 업고 온 사람은 땀이 나서 온 몸이 훈훈하 고 이 사람의 체온으로 업힌 사람도 살고 자신도 살아 무사히 길을 갈 수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누고저 하는 자의 의미는 살고저 하는 자 는 죽고 죽고저 하는 자는 산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 여준다.

 나눔! 이것은 바로 축복이다. 소박한 인간의 나눔 속에서 사랑을 이 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세기를 넘기면서 세계는 두가지의 Ideology로 나 뉘어 살았다. 한 세계는 공산주의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증오의 철 학을 강요받고 살았고, 또하나는 자본주의로 자유의 띠를 머리에 두른 인간들이 각자의 탐욕을 극대화하기에 미쳐버린 세상에서 살았다. 이 렇게 20세기는 혁명과 전쟁 증오와 탐욕, 대량 살육과 대량 파괴의 피 로 물들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어리석을까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만 할 인생이었 는데 그렇게도 미련하고 못난 짓을 했을까 이것으로 말미암아 20세기 의 인류의 의식은 한쪽은 움켜쥐려는 제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또한쪽은 빼앗는 습성이 체질로 굳어져 버렸다. 이제 21세기의 인류역 사에 우리의 기대한 바는 자기를 버리는 용기로 소박하게 나누고저 하 는 뜻을 쫘아 화해와 사랑의 공동체가 이 지구촌에 서서히 밝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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