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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중 나온 포도주 (요 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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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사람들은 희망을 가집니다. 특별히 지난 겨울은 걸프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서 전세계는 긴장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고, 경제침체를 크게 우려했습니다. 그런데 새 봄과 함께 전쟁도 끝났고, 사람들은 눈 을 뜨고 마음을 활짝 열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가려고 하고 있 습니다. 성경 아가서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 르렀다!'(아 2:11)고 봄이 온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춥고 지루한 긴 겨울이 지났다는 일은, 우리 인생에게 여러가지 의미와 교훈을 줍니다.

그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도 활력과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봄철에는 모든 일들을 새로 시작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새학년을 맞이하여 학문에 원대한 꿈을 품고 새출발하며, 재수생들은 이를 악물고 재도전의 용기를 가질 것입니다. 농무들은 봄부터 씨를 뿌리고 1년 농 사를 풍성한 소출로 이끌려고 합니다. 사업도 대개는 이 봄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서민들의 어려운 가정생활도 봄부터는 새로운 포부와 기대 감을 가지고 꾸려 나가려고 결심들을 합니다. 집없이 사는 가난한 사람 들의 자기 집을 가지려는 소박한 꿈이, 금년 봅에는 이루어 지려나 하고 기다립니다. 또 더 큰 집을 새로 짓는 이들도, 봄부터 그 일을 시작합 니다. 그러니까 봄은 확실히 희망의 계절입니다. 행복한 결혼도 봄에 가장 많이 합니다. 이러한 아름답고 좋은 일들이 금년 봄에도 많이 이 루어지고 성취되여 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던 때, 그 때도 어느해 봄철이 아니였나 생각됩 니다. 갈릴리지방 '가나'라는 한 평화로운 마을에서 혼인예식이 있었습 니다. 그 때에 예수님도 거기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많은 하객들과 함께 예수님과 그 모친 마리아는 즐거운 피로연에 참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포도주가 그만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객들은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들고 있는데 잔치집에 없어선 아니 될, 포도주는 바닥이 나고 말았으니 그 주인은 얼마나 당황하였겠습니까 이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들'에게, 이 딱한 사정을 알렸습니 다. 예수님은 그집 하인들에게 돌항아리 여섯개를 갖다 놓게 하고(두세 통드는) 거기 물을 채우게 한 다음,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낳는 지는 알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그걸 먹고 만족해 하고 기뻐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객들은 그 신랑을 불러세워 말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 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는데. 그대는 지금깨지 좋은 포도주를 두웠도다!'(요 2:10)하면서 칭찬을 하였습니다. 나중 나온 포 도주가 기가 막히게 좋고, 맛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흐 뭇하고 고마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을 해주신 분은 예수이십니다. 성경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 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 저는 여기 '나중 나온 포 도주가' 더 좋았다고 하는 데에서 인생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무엇이든 처음보다 나중이 나아지고, 더 잘 된다는 데 에, 희망이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못해지고 형편이 기울고, 떨어 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입니까

1. 그런데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어떻습니까 초지일관 변함이 없이, 하는 것에는 항상 맘이 놓이고 불안이나 아무 걱정이 없습 니다. 거기에는 진실성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대개 그렇지 못합니다. 처음엔 잘 하다가 나중엔 못하고, 시작은 굉장히 할 것같다가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끝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뭐든 꾸준히, 끝까지 잘 해보려는 성실 성이 너무나도 결여되여 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작은 음식점 하나를 경영해도 처음에 손님을 왕창 끌어 드리는 재주는 부리는데 그것을 신용 이 있고 성실한 사업으로 오랫동안 이끌어 나가지를 못하고 '권리금'이 나 받고 금방 넘겨 버립니다. 그래서 고객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그리 고 사업은 더 이상 발전을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매사에 그렇 다면 우리는 사람에게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날 유대인들의 잔치 집에서도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는 아무렇게나 낮은 것을 내는 버릇들이 있었습니다.'(요 2:10) 심지여는 자기 집잔치 에 온 손님들에게도 그런식이였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까 이것은 손님을 모욕한 것이고 기만한 것이지요 오늘 우리 인간사회에 되여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지금 이렇게들 하 고 있는 것이 아닙니가 선거때의 공약과 당선되고 난 다음에 하는 처 사들, 국민앞에 선언한 약속과 나중에 그 상활이 모두 달라지는 일들 처 음 시작할 때에 그 성실성과 나중에 되여지는 불성실한 일들 도무지 일 관성이 없는 처사나 이론이나 주장들...그리고 구구한 변명들 이런 것 이 모두 처음과 나중이 맞지를 아니해서 오늘 우리 사회는 불신의 늪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사회나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믿어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해야 됩니다. 믿어지게 하는 일은 모엇입니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할 것입니다. 한결같은 소신 과 신뢰를 보인다면 모두가 믿고 인정하고 다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그 마음의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시 15) 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모든 사정과 형편이 달라졌어도, 어리석을 정도 로 우직하게 자기 서원을 변경하지 않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사회의 혼란, 무질서, 불신, 폭력등은 처음과 나중이 다른데서 생 겨지는 반항의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여 주어 취 하게 한후 나중에는 낮은 것을 내는' 그러한 처사때문에 사람들은 분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뭘 믿고, 뭘 바라고, 뭘 더 기다리겠습니까 참거나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낮은 것만 나오기를 기다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중에 에베소교회는 '처음사랑'을 버린 교회라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처음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그것이 교회로서는 예 삿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대한 뜨거운 사랑, 열심, 큰 포 부 충성된 자세, 그리고 순종심, 그걸 가지고 예베소교회는 시작했습니 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이 첫사람이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처음 에는 모두들 잘했는데, 나중에는 모두 형편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그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며, 처음 행위를 가지 라.'(계 2:5)그랬습니다. 그 전처럼 잘 해라! 첫얼심, 첫신앙, 첫은혜 받았을 때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여라! 왜 첫사랑을 버렸느냐 처음 행위를 가져라 그걸 지속해라 유지해라!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그걸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 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로서의 자격, 성도로서의 자격을 박탈 당할 것입니다. 자격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심과 충성심을 한 결같이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믿음의 생활이 그렇지 않으 면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2.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이 하신 것은 어떠했습 니까 우리 주님은 항상 처음과 끝이 같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 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 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 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고 하였습 니다. 아무리 상황이 달라지고 예수님께 대한 여러가지 어려운일들이 점점 많아지며, 12사람 밖에 않되는 제자의 작은공동체마저 불화불목, 배신이 생겨나려고 하는 때에도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히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요, 처음과 나중이십니 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날이 갈수록 좋은 일이요, 귀한 일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맛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가치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망의 하 나님이시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을 우리는 믿고 그 것을 바라고 그것 때문에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당하는 고난 도,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내놓고, 취하면 낮은 것을 내놓는...'어쩔수 없는 '인 간'에 비하여 하나님은 그의 무궁무진하신 사랑과 지혜와 그 풍성하신 은혜로써, 날이 갈수록 더욱 선하고 풍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 나님을 진실히 믿을 때에만이 거기에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점점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날이 갈수록 우리의 인생을 맛있게 하며, 가치있게 만들어 주시며, 기쁨과 은혜속에 살게하 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더 좋아진 사람은 많지 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으면 반드시 모든 면에서 더욱 좋아집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당신은 참으로 특별하시요 나중까지 이렇게 좋은 포도주 를 남겨 놓았다니' 하였다는 말,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 위해 해주시 는 그의 사업니십니다. 주님은 항상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시간과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낙심이 되 는 것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피일 날이 없고, 육체적으로도 날로 늙고 쇄하여가 몸의 부분부분이 고장이 나고, 흥이 않나고, 신바람 날 일이 없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주님은 우리의 속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육신은 늙고 쇄하고 병들어, 가 고 있지만, 신앙안에 있는 새생명은, 동이 트는 태양을 향햐 힘차게 나 아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안에 희망이 넘칩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더욱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 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해주시고 기쁨과 만족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 안에서 모두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는 우리는 나중이 점점 좋을 뿐아니라 '가장 좋은것'은 맨 마지막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상적인 영적생활은, 계 속해서 그 도표가 올라가는 것인데, 계속 좋아지고 또 좋아지고 하나가 절정에 올라가면, 가장 좋은 것에 도달하게 됩니다. 가장 좋은 포도주 가 맨 마지막에 나오게 되여서 잔치집에 기쁨을 최고도로 올려 놓듯이, 가장 좋은 것은 맨 마지막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바 랍니다. 그 때를 기다립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만해 도,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날에는 그 얼굴을 친히 왜면해서 볼 것이며 만날 것입니다. 그 날에 그 분이 선한 싸움을 싸운 이들에게 면류관을 친히 씌워 주실 것입니다. 그 날이 최 고의 날이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가서 사는 새하늘, 새땅, 새예루살렘 은 완전한 도성이요, 완전한 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또 우리는 그 때에 완전한 하나님나라 백성 이 됩니다. 이세상처럼 거기엔 눈물이 없고 사망도 없으며, 병이나 아 픈 것도 있지 아니합니다. 불완전하고 죄악되고 악하고 유한한 모든 것 들은 그때가서는 다 지나가 버립니다. 드리여 완전한 세계를 이루게 됐 고, 완전한 인간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시대, 최고의 영광, 최고의 생명, 최고의 기쁨, 최고의 축복속에서 영원히 영원히 살 것입니 다. 그때 우리는 그보다 더 건강하기를 바랄 수 없으며, 그보다 더 부 유하기를 바랄 수 없으며, 그보다 더 행복하고 기쁘기를 바랄 수 없으 며, 그보다 더 완전하고 영원하기를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환 나 라가 우리 성도들의 생애의 마지막에 가서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최선, 초상의 때를 향하여 지금 나가고 있습 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 그것은 가장 아름 답고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에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더 이상, 바 랄 수 없는 '은혜와 축복'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성 도들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을 약속하셨고, 그 소망은 틀림없 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큰 기대와 소망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는 그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주안에서 이 큰 소망을 항상 굳게 붙잡고, 기쁨과 용기속에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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