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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보다 더하는 인생 (마 0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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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여 3가지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즉 ‘남보다 못한 사람’, 또 ‘남만큼 하는 사람’ 그리고 ‘남보다 더하는 사람’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모자라는 것이 많아서 그들에게 뒤떨어지고, 부족해서 그만큼도 하지 못하고 늘 따라다니기에 바쁜 그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부족하긴 해도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 만큼은 할 수 있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 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보다 더하는 것이란 여러가지일 수가 있습니다. 재능이나 능력, 지식이나 지혜, 힘이나 노력 등을 말할 수도 있고, 사랑, 믿음, 친절, 도움 등 행동이나 마음을 말할 수도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로는 사기나 횡령, 부정, 부조리 등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보다 더 하라’,‘남보다 더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남보다 더하는 인생’을 권고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남보다 더하는 인생을 살아오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남보다 더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저 남만큼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보다 못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번의 인생을 그렇게 덧없이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우기 장차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나설 수 있는 더욱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보다 더한 인생’을 권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의 인생을 바로 ‘남보다 더하는 인생’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라도 선한 것이라면 남보다 더할 수 있는 적극적인 인생이 바로 기독교인의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들의 인생은 바로 남보다 더하는 인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여러가지 봉사를 하는 것도, 핍박이나 곤고도, 전도와 말씀 공부도, 헌금이나 예배까지도 사실상 남보다 더하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남보다 더하라고 하시는 것은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산상 교훈 중 가장 핵심으로 말하고 계신 것은 바로 ‘사랑’ 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그런 흔한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위에 더할 수 있는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어에 사랑이라는 말은 네가지 다른 낱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1. 스톨게(storge)입니다.

이것은 가족 관계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자식이 부모에 갖는 본능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에로스(enos) 입니다.

이것은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정열의 사랑, 성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에로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랑이라기보다는 색정이라고 표현되어 왔습니다.

 3. 필리아(phillia)입니다.

이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애정을 말합니다.

사랑이란 단어 중에 가장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진실한 친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4. 마지막으로 아가페(agape)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사랑’ 이라는 말은 바로 이 아가페를 쓰고 있습니다. 이 아가페는 억제할 수 없는 자비심,추종을 불허하는 선의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아가페로 사랑한다면 그 의미는 그 사람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든,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대우하든지 그가 우리를 모욕하고, 상해를 입히고, 슬프게 할지라도 미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사람에게 대해 억제할 수 없는 자비심과 선의로 대하고 그 사람을 가장 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스톨게나 필리아, 에로스의 사랑과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의 사랑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그것은 사랑이라는 의미는 모두 같지만 의지와 감정에서 서로 다릅니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가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상대가 될 때에는 저절로 사랑에 빠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가페는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려고 하는 의지로 노력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가페의 사랑은 맹목적이거나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을 위하고, 잘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가 잘못될 때 벌을 주고 훈계도 하며 극기를 가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따뜻함의 단순한 의미보다 더한 사랑인 것입니다.

예) 부모의 사랑-맹목적이나 선생님의 사랑-의지적 예) 상처가 생기면 싸매주는 부모, 째고 고름을 빼내는 의사

이렇게 귀하고 값진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담고 아가페의 사랑을 여러분의 인생에 더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사랑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미움이나 원망의 마음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가페의 사랑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기도를 통하여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것’을 권고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이 사랑을 가지고 대하여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구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 생애에 아가페의 사랑을 더하고 그 아가페의 사랑에 기도를 더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것을 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아들’이란 말은 추상명사에 붙어 형용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평화의 아들은 평화스러운 사람, 위로의 아들은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니’ 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 즉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가페의 사랑을 우리 인생에 더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를 더한다면 바로 기독교인의 최대 목표인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감으로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바로 보람있고 가치있고 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더 함도 아니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참된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길이,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인생에 아가페의 사랑을 더하는 것이요, 기도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남보다 더한 인생으로 하나님의 상급을 다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과 기도를 남보다 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점진적인 것입니다.

한꺼번에 선물을 받듯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꾸준하게 내가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히 12:1-2에서 우리로 ‘경주하는 자’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우리 신앙생활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적만 바라보고 꾸준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참고 견디기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무겁고 고통스러운 죄와 걱정근심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목적 자체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잘 이겨내고, 한 목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누가 뭐라고 해도 꾸준히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 남보다 더한 인생, 정말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나설 수 있는 값지고 복된 삶을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후로는 이 귀한 남보다 더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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