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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느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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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던 유다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해야 될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하나는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는 일이었고,다른 하나는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당시 유다 민족의 지도자였던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70년동안 폐허로 방치됐던 성을 재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주변 국가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그들은 집요한 방법으로 예루살렘성이 재건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예루살렘성이 재건되는 것은 주변 국가들에게는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온갖 도전과 위협을 무릎쓴 채 성을 재건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언제 위기가 오는가.
1절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느헤미야가 원수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을 다시 쌓고 마지막 성문에 문짝만 채 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그 때 위기가 온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로서는 성문짝을 달고 닫아버리면 더 이상 공세를 취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짝을 달기전에 최후의 공격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무력침공보다는 회유하고 기만해서 느헤미야를 암살하고 자중지란을 일르켜 유대나라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전술이었습니다.
문짝을 달기전에 위기가 왔다는 것은 큰 일이 마무리 되기 직전에 위기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사짓는 경우를 보면 모내기할 때나 씨를 뿌릴 때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곡식이 여물고 벼가 익을 무렵이면 태풍이 불거나 폭우가 쏟아져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제 아무리 농사가 잘 되었더라도 마지막 결실할 때가 중요한 것처럼 개인생활이나 신앙생활도 문짝을 달기 직전이 중요한 것입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경영부실과 생산력의 약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첫째는 자만심입니다.우리가 제일이다라든지 우리 제품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이고,둘째는 기술개발에 늦장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고,셋째는 관료주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은 미국의 경우만은 아닙니다.그리고 기업경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제일이라든지,이젠 됐다든지,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나 태도는 신앙의 열등생을 만드는 유혹들입니다.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그리고 날마다 말씀앞에 서야합니다.그래야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합니다.
남자는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새어나간답니다.그러나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오른쪽 귀로도 잘듣고 왼쪽 귀로도 경청합니다.그러나 입으로 모조리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교만할 때 옵니다.그리고 뭔가 꼭 해야할 큰일의 뒷마무리를 제대로 못했을 때 밀어 닥칩니다.
마귀의 유혹이나 시험은 연탄 개스와 같아서 틈만 있으면 스며듭니다.그러나 틈이 없다면 스며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문짝을 달고 닫아 버리면 유혹이나 시험은 다가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2.어떻게 시험이 오는가.
2절을 보면 원수들은 평화 협상이라는 가면을 쓴채 오노 평지 한촌에서 만나자고 제의해 왔습니다.그리고 4절을 보면 네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 만나서 평화적으로 대화를 나누자고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만이었고 술수였습니다.2절 끝을 보면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로 유인해낸 다음 그를 암살할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런 것을 아는 느헤미야였기 때문에 네 번씩이나 요구해 온 만남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세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는 반드시 필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과의 만남,부부간의 만남,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좋은 일을 위한 만남 등이 있습니다.
둘째는 의미없는 만남이 있습니다.
노닥거리고 지꺼리고 떠들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만나고 난후 돌이켜 보면 별의미 없는 만남들이 있습니다.
셋째는 해로운 만남이 있습니다.
열차안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든지 길가다가 미친 개를 만났다든지 도둑놈이나 깡패를 만나는 경우라면 그것은 해로운 만남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만남가운데 해롭거나 무익한 만남일수록 횟수가 많고 만나자는 유혹이 잦다는 것입니다.
해롭고 무익한 만남일수록 시간과 정력과 경제적 낭비와 손실이 크기 마련입니다.그러나 유익한 만남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익하고 경제적으로도 득이 됩니다.
국내 모 건설회사에서「시간창조왕」을 7월부터 뽑는다는 기사가 모일간지에 실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 중소기업에서는 92년도부터「초 관리운동」을 벌여 왔다는 기사도 실려 있었습니다.그 기사의 내용은 시간을 초단위로 아끼자는 운동을 벌리고 있는 두 회사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회의시간을 대폭 줄이고 결재단계를 최대한 축소시키면서 시간을 1분단위로 계산해 1분을 낭비하면 얼마가 손해이며 아끼면 얼마가 이익인가를 계산한다는 것입니다.예를 들면 담배 한대를 피우면 1200원이 낭비된다는 것입니다.1000명이 한대씩 피우면 120만원이 삽시간에 낭비되고 맙니다.
커피 한잔 마시는 데는 3000원의 시간 비용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교회도 자칫 잘못하면 당회니 제직회니 하여 기도하고 성경읽고 전도하는 시간보다 갑론을박하는 회의시간이 더 길 때가 많습니다.그것은 비생산적입니다.앞으로 우리 교회는 회의는 짧게 기도는 깊이,전도는 날마다 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비생산적 갑론을박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시간 청지기의 실패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주변의 도전자들이 네 번씩이나 만나자고 회유했을 때 느헤미야는 왜 그것을 거절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음모가 빤히 드려다 보였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만나서 유익할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이나 시험,그리고 불의한 회유를 물리쳐 버립시다.

3.도전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도전이나 유혹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5절을 보면 “산발랏이 다섯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편지를 들려 보냈다”고 했습니다.그 편지 내용은 “네가 왕이 되기 위해 성을 재건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다.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는 역적모의를 하고 있으니 그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만나서 사실 여부를 허심탄회하게 얘기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한마디로 모략,중상,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의연하게 대처했습니다.8절을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요 네가 조작한 것이다”라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큰일을 하다보면 모략,중상,협박,비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나만 떳떳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일삼아서 남의 말을 씹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남의 약점만을 들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열등감이나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하려면 느헤미야처럼 의연한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큰 나무는 태풍이 불어도 가지만 흔들립니다만 작은 나무는 뿌리채 뽑힙니다.큰 그릇이 되려면 작은 사건으로 기우뚱거리면 안됩니다.
작은 감정때문에 흔들리거나 얼굴색이 변해선 안됩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이 보낸 편지를 보면서도 자신이 떳떳했기 때문에 동요하거나 경거만동하지 않았습니다.

4.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회유 협박 중상이 거듭되어도 느헤미야는 더 든든히 섰습니다.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 끝을 보면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손을 힘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느헤미야 4:14-20을 보면 성을 재건하는 대역사를 방해하는 주변 국가들의 기세가 강해지자 느헤미야는 비상령을 내렸습니다.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남자은 공사에 참여하고은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일을 했습니다.다시 말하면 완전무장을 한 채 공사를 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나팔소리만 들리면 일제히 출전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비상체제하에서 성을 재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긴장감이나 피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손을 힘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손의 기능은 다양합니다.손으로 도구를 제작합니다.악기를 연주합니다.자신의의사나 감정도 손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건강상태와 손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손이 차갑고,식은 땀이 배어 있는 사람은 기력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그리고 기력이 모자라면 손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좋은 일도 손으로 하고 나쁜 짓도 손으로 합니다.
뉴욕 지하철이나 그 벽의 낙서도 손으로 했고모나리자의 그림도 손으로 그렸습니다.
“손으로 힘있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첫째는 능력을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인간은 도구를 제작하는 존재입니다.그 도구는 손으로 제작합니다.그리고 능력이 없으면 제작도 못하고 활용도 못합니다.
내가 능력을 받아야 창조적인 역사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주의 일을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힘있는 심장과 힘있는 손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나쁜 일을 하기 위해서 힘을 달라면 주시지 않지만 주의 일을 위해 주십니다.
2차대전 당시 나치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살아난 네델란드 출신 전도자 코리덴붐 여사가 소련에 전도하러 가면서 두 개의 드렁크에 성경를 잔뜩 넣어가지고 갔습니다.통관이 문제였습니다.그녀는 세관검사대에서 기도했습니다.“주여 힘을 주소서”라고.드디어 그녀 차례가 왔습니다.“이 가방 할머니껍니까 무겁겠군요 제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라며 세관원이 택시 타는데까지 들어다 주었습니다.
“주여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힘 주신 그 손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내게 주신 일들을 위하여 힘써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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