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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삿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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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Irving(1783-1859) 이라는 학자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다가 피곤해서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도서관벽에는 역대 여러 석학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벽에 걸린 초상화가 걸린 초상화가 움직였습니다. 한 사람이 내려오더니 자기가 입고있는 양복을 벗기면서 "이것은 내것이다."하며 가져갔습니다. 또 다른학자가 내려 오더니 "너 왜 내것을 입고있니" 하면 속옷을 벗겨 갔습니다. 또다른 사람은 와서 신고있는 신을 벗겨갔습니다. 입은 것을 다빼앗기고 벌거벗은 알몸이 되어 부끄러워 울다가 깨고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자란 대개 남의 학설을 많이 입고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리는 것을 배우라"는 말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너무도 지저분하고 더러운 세속적인 것을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목회자 세미나를 다녀왔습니다. 세미나 도중 내속에있는 잘못된 것을 회개하며 많이 버렸습니다.그러나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 때에도 또 버릴 것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여룹바알이라 불리우는 (1절)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기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은 3만2천명이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사람들과동행안 미디안 군사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습니다. (12절). 12만명이나 되는 미디안 군사에 비하면 3만2천명은 1/4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안돼! 군사가 너무 적어! 우리의 군사는 훈련도 안된 군인이야!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드온아 너를 쫓은 백성이너무 많은즉(2절) ..."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3절) 이때에 2만2천명이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만명의 군인으로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아직 많으니.."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될 때가 많습니다. 포스틱은말하기를 "세계의 희망은 많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소수의 신앙인에게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1. 자신을 믿고 자긍할 사람이 너무 많다 (7:2)
하나님은 자긍하고 교만한 사람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제일 싫어하는 것은 자신을 믿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살 기도를 드렸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앞에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후 히스기야는 바벧론 왕 므로닥 발라단이 보낸 신하들에게 병을고쳐주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간증을 하지 않고 교만하며 궁중 보물창고를 다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보여준 모든 것은 다 바벧론에 빼앗기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39장).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베드로전서 5:5).

사울이 왕이 될 때는 타고 온 행구 속에 숨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했을 때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버렸습니다. 교만은 멸망의선봉입니다. 3만2천명 중에는 교만한 사람이 2만2천명이 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2.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3절에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도려보내라고 했습니다. 여기 두려워 떠는 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 불신앙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은 숫자를 자랑합니다. 가치평가를 숫자에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성도는 모든 일을 믿으으로 하는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유럽을 침략할 때 알렉산도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군사의수로 겁주려고 참깨 한 부대를 보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알렉산더는겨자씨 한 톨을 봉투에 넣어서 보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겨자씨한알 같은 믿음으로 싸워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다 . 아직도 많다'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교인들의 종교생활에는 익숙하나 믿음없는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미국의 돈에는 "in God We Trust"( 우리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는 글이 쓰여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세면서도 돈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돈을 셀 때에도 안에서 바깥쪽으로 셉니다."이것은(돈) 내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셀때자기 가슴쪽으로 넘깁니다. 이것은 내것, 내것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3. 용기가 없는 자가 너무 많다
여기 "두려워 떠는 자"는 (3절) 용기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정신은 첫째도 용기, 둘째도 용기, 셋째도 용기입니다. 용기를 잃고 두려워 떠는 사람은 군인으로서의 자격이 상실된사람입니다. 사역병으로 밖에 쓸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영적 군사입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 떠는 3만2천명보다 용기있는 3백명이 더 필요합니다.

히브리 11장에는 믿음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웅형 믿음의 사람과 순교자형 믿음의 사람들로 분류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히브리서 11:38에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큰 일은 큰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갈 때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나가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기드온의 3백명 용사도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자라나는 젊은이들은 너무나 용기가 없는 못난이가 많습니다. 쉬이 낙심합니다. 쉽게 좌절합니다. 믿음은 긍정이요, 용기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정탐보고를 보세요 신앙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놓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믿음이 없는 자, 용기가 없는 자는 돌아가라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돌려 보낼자가 많으니 그들은 사명감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자란
(1)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람입니다.
(2) 군사적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3) 물질앞에, 돈 앞에 시시하게 무릎을 꿇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군인으로서 사명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움켜 핥아 먹는 자는
(1)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닌 사람입니다.
(2) 깨어 있는 군인의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3) 먹으면서도 적군을 삼치며 육체의 욕구보다는 현재의 사명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이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사람은 사명이 있기에 먹고 입습니다. 사명이 있기에 삽니다. 사명이있기에 삶의 의미가 주어집니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없습니다. 입고 마실 자격도 삶의 의미도 상실한 사람입니다.

사명은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명을 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의미가 사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기를 믿고 자긍하는 교만한 자가 너무 많습니다.믿는다고주여 주여 하나 믿음없는 자가 너무 많고 믿는 성도에게 믿음아닌 것이 너무 많습니다. 큰일 앞에 두려워 떠는 자가 너무 많아 큰일을 할수 없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람은 많으나쓸만한 일꾼은 너무도 적습니다.

시대는 사명있는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있는 사람을찾고 계십니다. 이제 사명을 가지고 주의 일꾼으로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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