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1 (막 06:32-44)

첨부 1


필자는 이 본문으로 설교하시는 분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점들만을 쓰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한편으로 본문의 선포를 겸손히 듣고 자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교회가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였다. 본문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구체적으 로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도로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나 누는 공동체"라는 하나의 신학적 주제를 충분히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마지 막 부분인 설교자를 위한 제언에서 그것을 평신도에게 선포될 수 있는 설 교로 만들어 보았다.

 본문 사역 6:32 그리고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광야의 한 곳으로 떠나갔다.

6:33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자, 알게 되었고, 많은 성읍에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뭍을 따라 그리로 달려가, 제자들보다 먼저 갔다.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 들과 같기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6:35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예수의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이곳이 광야고 이미 날도 저물었으니 6:36 저 사람들이 근처에 있는 농가들이나 마을들로 흩어져서 먹고 싶어하는 것을 제각기 사 먹도록 저 사람들을 보내십시오".

6:37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을 사서 그들이 먹도록 주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말했다.¡ 6:38 그러자 예수께서 얼마만큼의 빵을 너희가 가지고 있느냐 너희가 가서, 알아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알아보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말씀드렸다.

6:39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에 명하여, 모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푸른 풀밭 위에 앉게 하셨다.

6:40 이에 사람들이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무리를 지어 앉았다.

6:41 그러자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드리고 영광을 돌리신 뒤에, 그 빵들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다. 그리고 그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6:42 그래서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었다.

6:43 그리고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찰 정도가 되는, 빵 부스러기와 물고기 남은 것을 모았다.

6:44 이 빵을 먹은 사람들이 어른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

 사역에 따른 풀이 < 32절 > 따로 ([카타 이디안] ' ).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privately) 또는 "따로 (by oneself)" 라는 뜻을 가지며, 막 6:30-31에 나타난 대로 음식 먹는 시간만이라도 기쁨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사람을 만나며 전혀 쉼을 얻지 못하는 제자들을 광야에라도 보내서 잠시 ( ) 쉬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각별한 배려의 명령이 이 기사의 출발점이다.

광야로 ([에이스 에레몬] ). "외진 곳으로" 또는 "빈들"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빈들"이라고 기록한 이유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해 보 면 많은 들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타당하다. 본문은 광 야의 어떤 지역이라고 말해 막연한 장소처럼 여겨지나, 예수님의 의도는 사람들이 많은 번잡한 마을을 벗어나 조용히 쉴 수 있는 은밀하고 외진 곳 으로 보내는 것이기에, 도시와 대조되는 의미에서 광야의 의미를 살리는 것도 오늘날 상황에서 볼 때 적절할 것 같다. 유대 광야같이 풀이 거의 없 는 광야도 있지만 갈릴리 지역처럼 풀이 상당히 많은 광야도 있을 수 있다 고 보았다. 그런 외진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 33절 > 뭍을 따라 ([페제]:by land).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지만 여러 성 읍의 사람들은 뭍의 길을 따라서 가게 된다. (by land)는 그런 뜻을 가진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자 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와 제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곧 알게 되고 도착 지점으로 가서 예수 님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다.

달려온다 ([순네드라몬] )은 [순트레코] (:함께 달려 가다:run together)의 제 2 단순과거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복수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한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와 제자들을 향하여 오고 있는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찾아오되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에서 예수 님과 제자들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 고, 또한 오늘날의 목회 상황도 그러함을 절감하게 된다. 식사할 겨를도 없이 수고하는 제자들을 잠깐이라도 쉬게 하시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달려 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때때로 쉬어야 하는 목회자와 계속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들고 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교인간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하 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일은 언제나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 34절 > 목자 없는 양들 ([프로바타 메 에콘타 포이메나] ) 자신이 책임 맡은 양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적절히 양식을 나눠줄 목자가 없었다는 의미로 마 9:36에도 나타나는 이 표현은 당시 일반 서민들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로마를 등에 없고 정권을 잡은 헤롯은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로마에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부하는데 급급했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을 괴롭히는 존재였다. 로마 당국도 되도록 많은 재화를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10-25%에 해당하는 높은 세금을 부과했고 이로 인해 토지를 몰수당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일시적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또는 헤어져 종살이를 하는 서민들이 많아졌고 이들은 유리 방황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 "측은히"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예수일진대 오늘날 기독교인은 당연히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보호와 배려를 받지 못하는 백성이기에 더욱 가르치는 것으로 베풀려고 하신다. 정신적 지도자가 없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많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다.

 < 35절 > 날이 저물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계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난과 위험에 노출된 백성들이지만 먹을 양식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했기에 잘 가르쳤다. 그 이유는 삶의 상황도 마땅히 변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깨달아야 삶이 변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36절 >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온 사람들 각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돈을 내고 사먹게 하자고 권한다. 그러나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돈을 가지고 있으 면 사먹을 것이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굶어야 하 는가 제자들의 대책은 공동체의 각 개인이 각자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 게 하자는 것으로 무척 합리적인 것 같으나 자칫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무책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하나 의 공동체로 같이 움직이면서 말씀도 같이 들었던 예수 공동체가 이제 먹 는 문제만큼은 비공동체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의 부재와 공동체적 문제 해결을 기피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 가족으로 말씀을 같이 들었으면 밥도 같이 먹는 것이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듯 신앙과 육신도 하나다. 배운 교훈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비공동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예수는 그의 방법을 말씀하신다.

 < 37절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도테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파게인] )는 것이다. 예수는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신다.

왜 바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가능하면 안에서 해결할 것이다. 이 말씀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떨어지자 수긍하고 그렇게 움직 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예수 공동체 밖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즉 돈을 만들어 공동체 밖으로 나가서 ([아펠손테스] ) 양식을 사 오자는 ([아고라소멘] ) 것이다.

 < 38절 > 그러나 예수는 간접적이나마 여전히 외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도 거부하시면서 철저히 공동체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한다. 계산, 획득 방법, 획득 통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는 달리 우선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즉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공동체 안으로 "가서"([휘파게케] ) 공동체 안에 있 는 자원을, 즉 빵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포수스 아르투스 에케테] ) 를 "파악하라" ([이데테] )고 명령하신다. 공동체의 문제는 우선 공동체 안에 있는 자원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 이 필요하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쫓아 순종한다. "파악하고" ([그논테스]-) 와서 보고한다.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이 그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예수의 파악 지시에 없었던 생선도 파악된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1) 제자들은 공동체 밖에서 문제를 해 결하려는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꼭 빵만이 아니라 "요기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기 원하는 예수의 넓은 뜻을 깨닫고 일을 능동적으로 했기에 그리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 고전적 해석의 일부지만 먹을 것을 파악하기를 원하는 제자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 한 예수 공동체원들이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 39절 > 무리를 지어 ([숨포시아] ) 풀밭 위에 앉게 하셨다. 이렇게 공동 체 안에서 해결하려는 뜻은 공동체가 함께 둘러앉아 먹는 식사 대형을 취 하는데도 나타난다. 식탁 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난다. 늦게라도 깨달은 제 자들은 예수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했으나, 다른 공동 체원들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도 알려질 필요 가 있는데, 그것은 식사 대형을 취하는 "참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즉 그들은 개별적으로 양식을 구해 개별적으로 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와 같이 식사하는 것이다. 교인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할 수도 있 지만 교회 공동체라는 성격을 띌 때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