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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요일 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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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를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도 사랑의 표시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저주의 사형틀이 었습니다. 죄인 중에도 중한 죄인, 사형수 가운데도 가장 악한 범인 을 처형하던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 가심으로 인하여 이 십자가의 의미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 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위에서 사랑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을 친구로 삼으시고, 바로 그 친구 들을 위하여 친히 그의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세상을, 특별히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말씀을 보면 5:7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 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하셨습 니다.

 십자가의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선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말하고, 좌에서 우로의 수평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면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 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 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 는 것이 마땅하도다" 라고 하면서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 라. 우리가 이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4:10-11, 20-21)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것이 무었입니까 기독교의 계명의 총체가 무엇입 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 문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도 '서로 사랑하라'하는 것입니 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 당시 교회안에서 일 어나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언급해 내려가다가 "내가 제일 좋은 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면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한다고 해도,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하 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아도 심지어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한것이 조금도 없습 니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에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랑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이 곧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 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움이 있는 곳은 지옥입니다. 왜 그렇 습니까 마귀는 미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같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가진자든 못가 진 자든, 배운자든 배우지 못한자든 사랑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도 사랑하고 더 나아가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가령 마가복음12:31에 보면 우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까 우리가 우리의 몸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배고프면 먹을 것 찾고, 피곤하면 쉴 곳을 찾고, 졸리면 누워 잘 곳을 찾습니다.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고, 추 우면 따뜻한 곳을 찾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웬만한 것도 참지 못합니다. 오해를 받으면 그 오해를 풀려고 얼마나노력합니까!

내가 혹시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어떻게 합니까 자신에 대해서는 곧 양해하고 용서 합니다. 물론 내가 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화낼 때도 있습니다. 분해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 자기 자신에게 분해하는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갑니까 잠깐 있다가 그 노(노)는 곧 풀리고 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 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혹시 노할일이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대로 노하기를 더디하고, 설사 노했다 할지라 도 그 노는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분을 내 어도 죄는 짖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고 했습니다.

 또 사실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분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결 국 나 자신이 손해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서 떠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되는 것에 대하여 배 아파하는 사람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 습니다. 시기라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 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을때 그 사람이 잘되면 배가 아파합니다. 그 래서 옛말에도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 까 이것이 다 사랑의 결핍증세 입니다.

 여기 똑같은 일을 가지고도 그 평가를 달리하는 우리의 간사한 모습 을 잘 표현한 글이 있습니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은-인도 속담-

만일 그가 그의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를 게으르다하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면 수다장이라 하고, 내가 다른 이에 관해서 이야기 하면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고 하고, 만일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장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렷해서라 하고, 만일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다고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그 순간에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친절하게 하면 나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친 절하다 하고,

내가 친절하면 그것은 내 유쾌하고 좋은 성격의 한 부분이라 하고,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다니 얼마나 딱한가!

성도 여러분, 사랑이 없으면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 이 잘못이 자꾸만 눈에 뜨입니다. 시기하는 눈,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허물과 잘못만 보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허 물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잘못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 고 신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이 미워하는 눈으로 보면 이 허물이 눈에 크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남의 허물이 내 눈에 뜨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게 사랑이 없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시작 해서 세 마디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허물만 자꾸 들추어내는 사람 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이렇게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하는 증거입 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사랑을 가지고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과 그저 남의 잘못을 꼬집어 내는 사람의 표정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흠을 잡아내고 잘했다고 야단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드려다 보십시요. 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이라고는 전혀 채아 볼 수가 없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러나 보세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 까 미움이 있는 곳에 기쁨과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을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절대로 평화가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 니다. 그러므로 결국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보면 허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사도 베 드로는 [벧전] 4:8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경고하면서 "무엇보 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 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 데 길가에 한 마리의 개가 죽은지 오래되어 썩어서 구더기가 쓸었는 데, 그런 것을 본 제자들이 "선생님, 저 죽은 개를 보십시요. 구더 기가 생기고 더럽기 한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니까 예 수께서 옆에서 그 말씀을 듣고 계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여보게들, 아니 왜 죽은 개에게 붙어있는 구더기만 보나 저 개의 이빨을 보게, 옥과 같이 희고 아릅답지 않나"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허다한 허물을 덥습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라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에게 들어 오면서 미움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간 사회에 미 움이 들어오게 되었고, 최초로 그 동생 아벧을 미워하여 쳐죽이는 비 극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먼 데 갈 것 없이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부부간에 사랑하십시 요.그럴 때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가 평화로와집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 형제간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끼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같은 직장에 계신 분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끼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물론 교인들끼리 서로 살랑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끼리끼리만 사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서로가 함께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초대교회에 권력있 는 사람이 많았습니까 재벌이 많이 있었습니까 학식있는 사람이 모였습니까 사실 그러한 특별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부흥했습니다. 바로 그 부흥의 원동력은 세상에서 채아볼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이 저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랑에 굶주린 많은 사람들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채아 볼 수 없는 사 랑을 발견하고 구름같이 교회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배당을 지었으면 무엇합니까 아무리좋은 시설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잘 짜여진 조직을 구성한다고 해야 뭐합니까 아무리 은혜스러운 목사님을 모신다고 해야 소용이 없습 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교회에 나와서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에 몇 시간되지 아니합니다. 대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시 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화제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정 이야기나 직장 이야기 혹은 학교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 니다. 그런데 교회 이야기 중 대부분이 교역자 이야기입니다. 교역 자 이야기 중에는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타락한 이후부터는 좋은 이야기 보다 안 좋은 이야기, 칭찬하는 이야기 보다는 흉보는 이야기를 해야 흥미있어합니다. 그 러므로 남을 칭찬하면 별로 관심이 없이 건들건들 졸고 있던 사람이라 도 남을 흉보는 이야기가 나오면 정신을 차리고 흥미진진하게 듣습니 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도 목사, 전도사 흉보는 이야기를 하셨던 경험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 교역 자들을 볼때 사랑으로 보아 달라는 것입니다. 사랑없는 눈으로 교역 자를 보면 어떤지 아세요

1. 나이어림:경험부족 많음:시대 뒤떨어짐

2. 식구가 많음:미련하게 애만 많이 나았다 하고 적음:가정이해 못함

3. 원고 설교:은혜, 능력이 없다:준비성이 없다.

 4. 가난한 교인에게 접근:가난한 교인들에게 인기 얻기 위해 부유한 교인들에게 접근:돈많은 사람들만 알아줌

5. 예화 많이 사용:성경실력이 없다:설교가 딱딱하고 어렵다6. 죄에 대한 설교:인신공격:정의감 부족

7. 교인의 비유 맞추지:사랑이 없다 0:줏대가 없다

8. 옷을 잘입으면:사치:교회 위신과 명예를 떨어드린다

9. 외부강사를 초청하지 않으면:폐쇄적:자기책임 다하지 않음 10. 설교를 박력있게 하면:소리만 꽥꽥 지른다 하고 차분하게 하면:힘이 없다 하고 1

1. 외부설교를 자주 하면:본 교회 등한시한다 하고:오죽 못났으면 초청하는 사람도 없나.

1

2. 사례를 많이 받으면:돈을 밝힌다 적게:교회 망신시킨다f 1

3. 사모 교회일 많이 하면:여자가 너무 설친다:부인이 교회일에 관심이 없다 1

4. 사모가 심방 동행:여자가 주책 없이 따라다닌다:여자가 교회 일에 무관심 1

5. 목사가 심방 많이 하면:주책 없이 남의 집만 돌아 다닌다:교인들의 상태를 돌아볼 관심과 열성이 부족 하다 16. 목사가 뚱뚱하면:밤낮 돼지처럼 무엇을 잘 먹어서 저린 뚱 뚱할까 날씬하면:얼마나 은혜가 없어서 먹기는 혼자 먹으면서 도 저렇게 빼빼할까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똑같은 목사를 사랑의 눈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목사가 뚱뚱하면 "우리, 목사님은 보기만해도 은혜가 돼"라고 하고, 목사가 빼빼하면 "우리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애쓰시느라고 살도 못찌 시고 저렇게 빼빼하실까"라고 합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교역자가 교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없이 교회를 보면 부족한 것이 보입니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 만 합니다. 목회가 신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어쩌다 저런 교인을 만나게 되었나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다 모였구만, 말썽 피우는 사람들은 다 우리 교회에 왔구만"하면서 개탄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감사한 것 뿐입니다. 기쁨이 넘치고, 활기 가 넘칩니다. 교인들을 만날 때,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지. 나같이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에게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성도들을 보내 주셔서 함께 교회를 섬기게 하셨을까" 장로 님을 생각해도 감사하고, 집사님들 일하는 것을 보면 너무 좋고 자랑 스럽고, 권사님들 봉사하는 것을 보면 감격스럽습니f다. 사랑하면 이 렇게 행복합니다. 목사 사랑하는 교회는 행복합니다. 교인 사랑하는 목사는 행복합니다.

 "행복의 범위는 사랑의 범위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사랑하면 그만큼 행복합니다. 열사람 사랑하면 열사람 만큼 행복의 범위가 커집니다. 내 동포를 사랑하면 그 만큼 행복이 더 커집니다.

그리고 사랑은 무거운 것이 없습니다. [요일]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 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f구 일은 무거 운 것이 없습니다. 70이 다되신 어른이 손주를 자랑하시느라고 엎고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즐거운 모습일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 의 모습 속에서는 힘들다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은 전혀 채아볼 수 없 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본인들 몸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우 실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다. 한 두돌쯤 지난 아이를 예를 들면, 적어도 10Kg은 넘을 터인데, 그 어른에게 10Kg짜리 돌을 등에 지고 계시라면 얼마나 지고 계실 수 있을까요 아마 10-20분도 힘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돌이 더 무거워서 그렇 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교회를 섬기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면 f 교회 일 하는 것이 힘은 들어 보이지만 짜증은 나지 아니합니다. 무슨 일을 맡든지 그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무거울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증 거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길 뿐입니다. 교인의 모습은 사랑하는데 나타납니다. 교 회는 재물을 축적해 두는 곳도 아니고, 이념을 추구하는 곳도 아닙니 다. 그저 모여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 랑하는 공동체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구별 할 때 장식으로 달고 있는 십자가로 구별합니까 얼마나 사랑을 베푸 느냐에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 말 없어도 내가 가진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증거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이 넘칠 때 사랑이 없어 쓸쓸하기 한 없는 이 세상에 나가서 주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모르고, 사랑 속에 살면서도 사랑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오늘 다시 은혜의 시간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해야 할 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간구하오니 이제 사랑을 알게 하시며, 주의 사랑의 깊은 뜻을 알 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 속에서 더욱 더 깊은 능력을 체험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살고, 사랑의 능력으로 살고, 사랑이 능력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도록 항상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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