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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도 소경인가? (요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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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결함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결함이 무엇이겠습니까? 헬렌 켈러 여사는 듣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고 통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어려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경 가운데 특히 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들에게는 상상의 근원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본 일이 없으므로 상상할 능력이 없습니다.

 본문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유되는 기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소경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보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 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2절).

제자들은 그 소경을 불쌍히 여기거나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를 고민하기보다 그가 소경 된 이유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상대방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치유에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이 소 경에게 어떻게 새 삶을 살게 할 것인가가 주님의 관심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불행해진 원인을 규명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러나 제자들은 이 사람의 불행을 죄와 연관시켜 생각하였습니다.

본인의 죄가 아니면 조상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으리라고 상상했 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생각이 부질없는 것임을 지적하 시고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3절)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이 사람을 소경 되게 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 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어떤 불행한 상황도 주님의 도우심을 받 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 이 사실을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여심 ^ 이 소경은 눈을 뜨는 위대한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즉시 그리스 도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기적이 일어났 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이 소경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소경은 그가 구세주입니다라는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직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 떤 분인지 알고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화를 통해 이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人子)를 믿느냐.

인자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메시야에게만 사용하는 독특한 명칭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그 런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힐 때 쓰는 표현이 바로 인자입니다.

 예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구세주가 되신 것을 믿느냐는 질문입니다.

이때 소경이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36절)라고 되묻습니 다. 소경은 고침을 받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 드디어 예수께서 놀라운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자신이 메시야 라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나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37절).

 기적만 가지고는 정말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깨닫고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킨 뒤 가 르치시는 것입니다. 기적은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기 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기적과 함께 전달되는 메시지가 기적 의 핵심입니다.

예수께서는 소경을 눈 뜨게 하는 과정에서 이미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셨습니다.

 첫째/진흙을 이겨 눈에 바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을 빚어 만드셨습니다(창 2: 7). 예수께서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신 것은 바로 자신이 창 조주 하나님이심을 계시한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분이 소경을 고치고 새롭게 하실 수 있음을 예시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고난 이나 문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실로암 못에 눈을 씻음 예수께서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 라고 명령하십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실로암 못은 기혼 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혼은 예루살렘 바깥 에 있던 샘입니다. 기혼 샘의 물이 바위를 깎아 만든 수로를 통 해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실로암 못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러 니까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샘물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로암이라는 이름이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유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로암 못으로 소경을 보내면서 그 뜻이 보냄을 받았다 는 것을 강조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 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내가 나를 위 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느니라.

예수께서 자신이 아버지께로서 보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흑 암 속에 있는 사람들의 빛이 되기 위하여 창조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동시에 구세 주가 되기 위해 보냄을 받은 분입니다. 실로암 못은 바로 보 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

 우리의 눈을 여심 ^ 본문에는 두 종류의 소경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날 때부터 소경이 되어서 예수께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께서 창 조주이시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던 영적인 소경입니다. 요한복음 9장 39-4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 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자기가 소경인 줄도 깨닫지 못하는 소경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소경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십니까? 당신이 죄인이며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방황이 보이십니까? 당신이 소경임을 깨닫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는 거지였습니다. 노동력 의 가치가 떨어지는 소경이므로 거지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 신이 영적으로 소경이라면 당신의 삶 역시 가난하고 비굴할 것입니 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그분의 자녀로 누릴 수 있는 풍성한 삶이 있는데 구세주를 알지 못하므로 그 모든 것들을 잃어 버린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소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빛 되신 주님을 향해 돌아서 십시오. 소경이 단순히 눈을 떴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닙니다. 본 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기적은 그가 예수님을 보게 된 사건 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쯤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당신은 예 수님을 인류의 교사요, 위대한 스승 정도로만 생각하십니까? 성경 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자라고 증언합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에 보냄받으사 빛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기를 원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당신이 창조자이시며 빛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헬렌 켈러는 당신은 때때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두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 께서는 제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수많은 찬송시를 지은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95세의 나이로 세 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생을 장님으로 살면서 찬송시를 무려 8천 여 편이나 썼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24편 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204장).

 화니 크로스비의 행복은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불행한 처지에 있었지만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는 감격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았습니다. 당신에게도 영혼 의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찬양하는 삶 을 살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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