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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이 가지 말아야 할 곳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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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이 비유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설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 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뜻으로 신약성경에서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는데 한사람은 요11장에 등장하는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로서 마르다 마리아의 오빠인데 병들어 죽었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불쌍한 거지 나라로 입니다.

본문을 보면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 라고 나와 있지만 부자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거지 나사로의 이름만 말씀하시고 부자의 이름은 말씀하시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부자의 이름이 다이브스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부자와 거지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하고 잘사는 나라인 미국에도 거지는 많이 있고 그곳에서 배를 채우지 못해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빈민굴에 가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도 거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거지가 없다고 떠들고 있지만 사실 북한의 대다수의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고생을 하고 거지처럼 살고 있다 하니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기만 합니다.

모든 부자가 다 죄인이고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이 거지 나사로처럼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것이 죄가 아니고 돈이 없는 것이 무슨 영광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부자의 특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그는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이웃에게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특징을 보면 ①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본문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색 옷이란 그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만 입었던 아주 값이 비싼 옷입니다. 또한 베옷이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비싼 옷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값진 옷을 입었다는 말은 좋은 집을 가지고 줗은 자동차를 가진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②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생활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기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즐길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③ 부자의 세 번째 특징은 이웃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이 살았습니다. 자신의 대문 앞에서 배가 곱아서 구걸을 하고 온 몸에 병들어 고통의 신음을 내 밭으며 살아가는 나사로에게 한번도 동정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부자라고 해서 모두 죄인이 아닙니다. 즉 부 자체는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사치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자신의 배부름과 쾌락만 위해서 사용을 하며 이웃에게는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는 그 자체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X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사회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된 말인데 70년대 이후에 탄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X세대의 특징은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것입니다. 옛날 아버지 세대처럼 죽도록 일만하지 말고 즐겁게 인생을 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① 이들은 남에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남이 잘되든지 안되든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특징이 있습니다. ② 이들은 자신의 할일 만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할 일만 다하면 남을 도와주지 않는 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단체생활을 하기가 힘들어 지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③ 희생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나 단체를 위하여 희생하지 않고 특히 가족을 위해서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④ 모든 일을 쾌락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것도 즐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⑤ X세대의 쉽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절망을 합니다. 도전하려는 용기나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다가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알코올에 빠지고 마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즈음의 젊은 이들이고 우리들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말씀을 나누고 있는 부자와 X세대와의 공통점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지혜가 없고 게을러서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니까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자신들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열심히 일했지 때문에 그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무시하게 되고 그들은 특권의식과 교만이 쌓여서 가난한 사람들과의 담은 점점 높아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눅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 부자는 좋은 집에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산해 진미를 먹으며 날마다 잔치를 열고 즐기면서 대문간에서 자신이 먹다버린 쓰레기를 뒤지며 썩어져가는 몸뚱이를 긁고 있는 거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것입니다. 이 거지는 부자가 버린 쓰레기와 같은 음식을 먹고살고 있는데 부자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데 거친 빵으로 손을 씻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부자가 손을 씻은 빵으로 나사로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살았을 것입니다.

2. 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은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심는대도 거두게 하시는 공으로운 심판자이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시며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를 부자들의 기도보다 더 잘 들으신 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궁핍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가난한 자를 건지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 당하는 자들을 건강한 자나 부자들 보다 더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 병든 자를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그 값을 갑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잠17:5에서는 “가난한 자를 조롱하면 이는 이를 지으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요 재앙을 면치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지 나사로를 멸시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멸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주고 돌보아주어야할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 가난한 나사로를 멸시했기 때문에 나사로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멸시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이 부자는 사람은 죽게 된다는 것과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가고 늙으면 죽게 되는 것이며,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늙으면 죽는 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귀한 인생을 함부로 허비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옛날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하나님을 모르고 죽은 뒤에 심판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은 노래입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이간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후 찾아온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이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뒤에 영적인 죽음인 하나님과 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② 육신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가리켜 주지 않아도 잘아는 죽음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고 세월이 다하면 죽게 되는 것인데 지금 사람들은 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죽음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 심판 두에는 무서운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셨습니다.

불행하게 거지가 되어 남의 대문에서 냄새가 나는 부스러기 음식을 먹고살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 보다 명이 짧다고 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죽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거지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것이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것에 쓸쓸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인삼 녹용으로 몸을 보했기 때문에 더 오래 살았을 것입니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받아서 치료했기 때문에 가난한 거지보다 몇십년은 더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는 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죽는 것입니다. 부자가 한 20년 더 산다고 하여도 그러나 죽는 것은 다 같은 것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는 호화스럽게 장례를 치렀고 좋은 자리에 묻혔을 것입니다.

③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는 둘째 사망이라고도 하는데 이 죽음은 불신자들만 당하는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처럼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오늘 본문의 부자처럼 불꽃이 타는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협박이나 공갈을 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나사로는 죽은 뒤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하였습니다. 즉 낙원 천국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이 나사로는 둘째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사망을 당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음부에고 불꽃가운데 고통하며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하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4. 이 부자는 지옥의 고통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부자가 얼마나 괴로웠던지 아브라함을 향하여 말하기를 눅16:24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에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기며 살았지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이러한 심판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죽은 뒤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지옥에 대하여 18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지옥에 대하여 말하면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면 무식한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신자들은 지옥에 대하여 생각하기조차 싫어합니다. 지옥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옥을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위안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지옥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① 지옥은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지만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는 곳으로 영원히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② 지옥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본문의 부자도 지옥에서 두 가지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한 방울의 자비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만 지옥은 하나님의 자비나 은혜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③ 지옥은 무섭게 기억력이 되살아 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무디라는 의학자는 어떤 사고로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한 내용으로 “죽음 이후”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그 책에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는 좁고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고 과거에 지은 나의 비밀스러운 모든 죄를 다 알게 되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부자도 이 세상에 두고 온 다섯 형제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섹스피어는 그의 작품 ‘리차드3세’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자기 양심에 달린 혓바닥들이 쉬지 않고 지껄이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옥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가 기억나서 그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을 괴로워하며 사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④ 지옥은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단테의 명작 신곡을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릴 지어다” 지옥에서는 천국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절망이 가득한 곳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이 부자처럼 세상 낙에 빠져 있는 모든 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원래 지옥은 하나님을 대적한 마귀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인데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귀를 따르는 인간들도 마귀와 함께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지옥의 멸망을 당하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무서운 지옥이고 고통스러운 곳이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왜 오늘 본문과 같은 지옥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있겠습니까 그것은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지옥에 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전도지를 들고 나가서 왜 복음을 전하고 외쳐야 하겠습니까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전도하는 사람은 아직 훌륭한 전도자가 되지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불쌍한 영혼이 지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는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자신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와 같은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쉽게 믿고 회개하여 지옥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 복음을 전하여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오늘 전도하는 전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중에 구원에 확신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성도들은 나사로처럼 고난 중에도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지옥갈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열심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자와 같은 사람은 이제 지옥을 두려워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여 나사로처럼 천국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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