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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호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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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리던 날 친구가 시골 다녀오는 길에 호박을 세 덩이나 가져다주었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그득히 담긴 호박들이다. 끙끙대며 금빛 호박을 한 덩이씩 안고 들여오는데 그 무게만큼이나 넉넉하고 풍성한 기분이 들어 몹시 즐거웠다. 그와 함께 뭉클 뜨거운 감동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토록 커다란 열매를 땅이 내어주었다니 그 경이로움이 눈물겹기조차 했다.
내 어린 날 고향 마을은 가난했지만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문 밖에만 나서면 초록의 들판이 펼쳐지고 은실 같은 강물이 출렁이며 흘렀다. 봄이 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들이 있고 땅은 그 소산물을 넉넉히 돌려주는 인자한 어머니였다. 그 중에서도 호박은 참 친숙하게 우리 곁에 있었는데 주로 울 밖에서 아니면 텃밭에서 둥글둥글 잘도 자라기 때문이리라.
호박을 심을 때면 먼저 구덩이를 깊게 파고 인분을 한 통이나 들여 붓는다. 냄새가 지독해 코를 틀어막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지나가기 일쑤이다. 하지만 흙은 그 인분을 마신 후 비옥해진 토질로 여린 뿌리를 품어 자라게 하니 뒤로 버려지는 것들조차 소중한 자원이 되는 셈이다. 인분 위에 흙을 덮고 손톱만 한 호박씨를 묻은 지 몇 날이 지나면 통통한 떡잎 두 장이 고개를 들고 나온다. 토실토실한 아기처럼 귀여운 얼굴이다. 하루가 다르게 덩굴손을 뻗으며 튼실하게 자라는 모습은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호박만큼 풍성하고 신속하게 자라는 식물도 아마 없으리라.
못난 여자를 호박꽃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호박꽃이야말로 우리네 농촌 아낙 같은 순박하고 후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요즘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내면의 아름다움을 갈고 다듬기를 소홀히 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외모의 아름다움은 머지않아 시들어버린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후덕한 인품에서 나오며 그것은 지친 마음을 안식하게 하는 편안한 둥지 같다. 게다가 애호박은 또 주부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고 유용한 찬거리인가.
어느덧 가을이 오면 호박은 어떤 열매보다도 덩치가 크고 당당하게 여물어 마음에 풍성한 기쁨을 안겨준다. 볼품없이 누렇게 시든 줄기의 탯줄이 물고 있는 탐스런 열매를 보면 자연의 이치와 그를 섭리하는 신의 손길에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온다.
지금도 추수 감사절 성전 꽃꽂이에 호박이 주재료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호박이야말로 풍성한 신의 은혜를 가장 가깝게 눈으로 만나고 가슴으로 전하게 만드는 매개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한 아름씩이나 되는 호박을 세 덩이나 거실 한쪽에 둔 나는 마음의 부자가 되었다. 조용히 바라만 보아도 넉넉한 사랑이 내 안으로 들어차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얻게 되겠지.
또한 이토록 커다란 열매를 허락하신 이를 경외하는 마음이 겨우내 강물처럼 출렁이며 흐를 것이다.
조임생 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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