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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때 (요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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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지금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주께서 기적을 보류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기적이 항상 일어난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닐 것입니다. 기 적은 좀처럼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더 기적이 요구되는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만 약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면 우리는 기적이 없는 상황에서 어 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적을 고대하는 상황

본문은 기적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기까지 그 형제 마리아와 마르 다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 던 오라비가 병들었을 때 그 동생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고 초조 하게 이틀을 기다렸으나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시고 나사로는 죽고 맙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흘이 지난 뒤에야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 예수님을 기다리던 그 초조한 나날들과 장사를 지내고 난 뒤의 허탈함과 슬픔은 한 가정에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 습니다.

 이런 비극이 주님을 사랑했던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 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병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런데 본문은 다른 각도에서 질병과 불행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있 습니다.

나사로의 가족은 자신들이 예수께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요청이 가능했습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3절).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 편에서만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 님도 이들을 사랑했다는 흔적을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5절 ).

 분명히 예수께서는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자 를 병들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빨리 와 달라고 절박한 호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타나지도 아니 하셨습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칠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삶 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 그분이 우리의 고통을 모르실까? 하며 좌절과 원망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 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 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 더라(32절).

하나님이 역사하셨더라면 우리 가정에 이런 비극이 없었을 것이라며 주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어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 이전에 겪은 고통스런 상황도 주의깊게 살펴보 아야 합니다. 주님의 응답이 없어 마음에 깊은 회의와 의심이 일 어나던 순간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교훈을 얻 으려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이 주는 교훈 ^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 하시고.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병환을 전해 듣고 오히려 더 늑장을 부리셨습 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 로 다시 가자 하시며 베다니가 아닌 유대로 가십니다. 예수께서 다른 어떤 시각보다도 치유의 기적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침묵을 지키신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애타게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네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만 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든지 간에, 신자건 불신자건 상 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이라는 위대한 해결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영광스러운 부활 사건을 예증하기 위해서 나사로의 죽음을 사용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은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다른 장소에 계셨습니다. 11절에 보면 주께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 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그가 잠들었다는 아주 신기 하고 흥미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은 죽음을 안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부활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결코 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이 기대되는 죽음은 분명히 안식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서 절망하거나 통곡하거나 유서를 써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 날이 밝을 것을 기대하며 평안히 잠을 청합니다. 내일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 습니다. 죽음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주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부활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죽음을 주께서 허락하신 안식의 선물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부활 신앙을 소유할 때 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 다.

예수께서 병들어 누워 있는 나사로를 제때에 찾아가지 않으셨기 때 문에 나사로의 가족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나중에는 주님을 원망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사로에게 가는 대신,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4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 습니다. 모든 질병이 악령이나 귀신들이 일으키는 것으로 종종 생 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질병을 자기의 실수와 연관시켜서 자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사건은 부활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일부러 늑장을 부리셨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은 바로 다음날 나 사로를 살리셨다면, 많은 사람들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 죽은 지 나흘이 지나면 그 죽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송장이 썩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사망이 입증된 상황에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5절).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어머어마한 진리가 전인류에게 계 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 다. 그들이 믿음으로 질병을 이기거나 아니면 주님 품안에 평안히 안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은 자들이 그 믿음을 본받을 수 있습 니다.

 여러 순교자들의 죽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편인 경우가 많음을 볼 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도 주님의 비통 한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영광스러운 사역의 시작이었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절 망과 역경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반드시 나타내십니다. 인간이 하 나님의 섭리를 다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 다.

당신이 당하는 고통을 예수께서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기 적이 나타나지 않을 때,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 앞 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절). 부활은 영광스럽지만 죽음 자 체를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11 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음을 이미 아셨다는 증거 가 나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힘들 때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형편을 아시 고 함께 고통당하시며 슬퍼하시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주님과 나 사이는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9,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아직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 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빛이신 예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경우에 기적을 베푸실 때 문제가 되는 고통을 제 거하십니다. 반면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역경의 골짜 기를 통과하게 하시면서 함께하시기도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경험이 바로 그 본보기입니다(단 3:19-27 참조). 그분은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 23:4).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을 때 예수께서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 그리고 전인류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 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25,26절).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육체가 부활할 뿐더러 영원히 죽지 않는 존 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과 영 원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이 관계는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 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내가 확신하노니 사망 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8,39).

그러므로 어떤 처지, 어떤 고난에 빠지더라도 그리스도가 함께하심 을 믿고 낙심치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원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당하더라도 말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침묵하신 주님의 놀라운 계 획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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