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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원하느냐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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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은 유대인들의 큰 명절 입니다. 나이 12살만 되면 예루살렘을 중 심으로 24키로 경내에 사는 모든 남자는 그 절기 예배에 참배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유월절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루살렘으 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여리고 도상에서 한 소경이 눈을 뜨는 큰 기적이 일 어나 순례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눈을 뜬 사람은 바디매오 였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비참하게 살고 있었 습니다. 평생을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가진 것은 깔고 덮 고 때로는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가리개나 비를 피하는 우산으로 대용하는 누더기 겉옷 한벌 밖에는 없는 부모가 물려준 가난뿐 이었습니다.

 마지 못해 사는 인생이지만 그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소문에 희 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일행이 바로 자기 곁을 지나 고 있음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이 때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 나 언제 또 만날는지 모르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포기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격렬하게 부르짖어 마침내 행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인도되어 드디어 눈을 뜨고 광명한 세상에 사 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창조적인 삶을 사는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감동적인 말씀은 무지와 죄악,암흑속에서 빛을 잃고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 에게 희망을 주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이적을 가능하게한 조건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라고 봅니다.

 첫째는 그의 믿음 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 그 분이시라면 내눈을 뜨게할 수 있다 " 고 그 권위를 절대 신뢰하고 있었습니 다.

그 분을 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막연하고 모호하며 무언가 동경 하는 감상적인 소원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분이라면 자기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소원은 거의 필사적 이었습니 다.

 둘째 바디매오는 자기의 문제해결을 방해하는 어떠한 장애도 극복하고 제 거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회란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니며 일단 지나가면 다시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거나 좌절할 수가 없습니 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더 큰 소리로 그리스도의 구원 을 요청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일들의 중대함에 비하여 너무 안이한 방법을 선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 없이 한 민족을 구원 할 수는 없으며 주님의 십 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셋째 그는 매우 적극적이며 철저한 행동의 사람 이었습니다.

모든 생활의 행복은 선, 후, 완. 급의 조율에 달려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한다거나 급하게 서둘 러야 할 일을 느긋하게 미루어 두고,느긋하게 처리 해아 할 일을 서두는 것 은 어리석은 일이며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고 실패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속적인 인간들을 권하여 " 먼저 그나라와 의를 구하라 "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거치장스러운

모든 것 유일한 재산이며 생활을 위한 모든 것인 겉옷까지 벗어 던지고 예 수님에게 총알처럼 뛰어 나왔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는데 남은 미련 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주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구습을 버리고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지체없이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넷째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눈 이 밝아지는 것이었습니다. " 본다 " 는 것은 인간 생활의 근원적이며 기

본적인 동작입니다. 맛본다, 들어본다, 맡아본다, 만져본다, 하여본다, 등 예수님은 "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성할 것 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의 예수님에 대한 감탄은 모호한 것이요 감상적인 것이 었습니다. 근본을 모르면 자기가 구하는 것도 알지 못하고 구하게 됩니 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 물으실때 확신을 가지고 근본적인 희망을 말할 수 있는 한마디 대답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위를 신뢰했습니다. 그는 그의 믿음대로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 나 자유롭고 찬란한 하나님의 세계에 살게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의 아들이 되어 영원히 주와 함께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 무엇을 원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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