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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래에 대한 희망 (롬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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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단편작가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세'에 보면 한 소녀의 생명과 나무에 달린 마지막 잎새를 극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이 작품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다해도 죽음이 이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성현과 위대한 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는 침묵을 지키고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요14:1-2)."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 이하에서 힘차게 말하고 있다.

1. 장치 나타날 영광 (18절)
사람의 생명은 결코 동식물과 같지 않다. 구약 창세기에는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 (Image of God) 을 따라 지었다고 했다. 죄로인하여 그 형상이 파손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사람이되었음은 그 형상을 회복함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죽음으로 끝나고 말겠는가하나님은 영원하시기에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도 영원하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는 장차 도래할 영원한 나라는 '다시 죽음이 없고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느' 곳이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아름다운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계 21:2-4).

바울은 빛나는 희망을 가지고 말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롬 8:18)."

2. 피조물의 탄식 (22절)

장차 나타날 영광이 크고 아름답기에 현재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악을 이길 수가 있다. 곧 현세의 죄와 악의 실재가 우리를 더욱 장차나타날 영원한 나라를 확증하게 된다. 바울의 통찰력있는 눈은 인간의죄악으로 인하여 자연계까지 신음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과연 오늘날 인간의 횡포는 자연을 파괴하고 파괴된 자연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늦게 자연보호운동을 펴지만 자연계의 신음소리는 드높다.

그러나 이같은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산고와 같은 것임을 바울은잊지 않았다. 새생명의 탄생을 위한 산고이다. 이땅의 그리스도인들도함께 신음하고 있다.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의 증언과 같이 우리는 그의 약속을 따라 새하늘과 새땅을 기다리는 것이다 (벧후 3:13). 새하늘과 새당은 죽음이 없는 곳이아닌가.

3. 보이지 않는 희망 (24절)
내세를 본 사람도 없고 죽은 후의 삶을 만져 본 사람도 없다. 장차나타날 세게에 대하여 확실히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날에 우리가 어떠한 형상으로 나타날런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곧 바랄 수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성경에도 장차 우리가 어떻게될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를 닮은 자가 되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뿐이라고 했다 (요일 3:2).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또 바랄 까닭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랄 때에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롬8:24-25)."

인간의 생명은 풀잎과 같이 끝나고 마는 것자니가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 당하는 고통과 슬픔은 무엇으로 보상되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성경은 대답하기를 인간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영원하며 장차 나타날 영광스러운 미래는 현재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해산의 고통을 참는 여인과 같이 인내와희망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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