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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번영성장부흥 (왕하 14,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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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여려보암 2 세의 치세 이야기이다.

여러보암은 이스라엘의 어느 왕보다도 더 오랜 기간을 통치한 왕이다.

 여로보암은 참으로 영특한 왕이었다.

여로암은 지략도 뛰어 났다.

여로보암은 전술도 상당했다.

 여로보암 왕때 많은 영토를 회복했다.

찢겨진 나라의 위신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도 해서 자유를 주었다.

 1,은혜와 자비의 하나님

그런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 세를 가리켜 성경은 무어라고 하고 있는가

24절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법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에 여로보암이 둘이나 나온다.

24절의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처음 임금으로 여로보암 1 세이고 23절에 등장하는 여로보암은 오늘의 주인공인 여로보암 2 세이다.

 이 여로보암 1 세때 여로보암 1세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금송아지를 만드러서 악한일을 많이 저질렀던 왕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4절에 여로보암 2 세도 1세와 똑 같은 악한 사람이란 것이다.

 어쩌면 이름도 같고 악하기도 같은지...

 25-27절을 다 같이 본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 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더라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음으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이 말씀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여로보암 2 세가 왕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말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26절 그대로 고난이 심하여 매인자도 없고 놓인자도 없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말할 수 없이 황폐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27절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음으로..."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줌이다.

 이스라엘은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인하여 마땅히 죽어져야 했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불상히 여기시어 25절에 선지자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파송하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다.

또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그래서 서지자 요나를 여로보암 왕에게 보낸 것이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순종을 했다.

 그랬더니 잃어 버렸던 영토를 되 찾게 되었다.

노예로 잡혀 갔던 불쌍한 백성들이 귀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은 여호와뿐이심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게 하시면 전쟁도 승리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가난도 부요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슬픔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알게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에게 선지자를 보내었던 것이고, 또 선지자의 말대로 여로보암이 따랐을 때에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었다.

 여로보암의 하는 일마다 형통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을 도우사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로보암에게 은혜를 물붙듯 부으시고 있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파송하고 있으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그리고 여로보암에게 그랬듯이 물붙듯 은혜와 자비를 주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나 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복을 주신다.

또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큰 은혜와 복을 주신다.

 2,번영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다.

25절 "...여로보암이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며"

28절엔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여로보암은 참으로 많은 일들을 성취한 능력있는 왕이었다.

여로보암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한 왕이었다.

 여로보암의 예기와 진취적인 기상은 나라에 새로운 활력이 용솟음치게 했다.

그의 군대의 승리는 보안과 평화를 확보했으며 새로이 가동된 무역의 수레 바퀴는 번영의 나라로 만들어 나아 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럴때 실수를 하게되는 것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울때 보다는 부요할 때 더 크게 실수를 저지른다.

대개의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보다는 성공을 했을 때 그때 영영 도리킬 수 없는 실수들을 저지름을 본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나라가 태평케 되었는데 여로보암은 이 번영의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임을 알지를 못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때 어머니의 젖은 손 마른 손의 돌봄을 기억하지 못함과도 같은 것이다.

 좀 이상아게 들려질런지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한 평생을 시험하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릴 것이다.

 그래서 인생들은 늘 하나님의 시험을 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들이 어려운 고난중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시험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과 부요도 하나님의 시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고난의 때, 역경의 때 보다는 번영의 빛이 찬란할 때 주어지는 유혹과 시험이 더 가혹한 것이 될때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역경을 헤메일 때는 나를 도우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그런대로 우리들의 경험으로 인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요하게 되면 그 부요의 눈부신 번쩍임에 하나님의 손이 가리워져서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기가 쉽다.

 사람들이 가난할 때는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임을 고백하는데 일단 가난의 도를 지나면서 웬지 자기 자신의 어떤 보이지 않는 능력 같은 것을 마음에 느기면서 살게됨을 본다.

 하나님께서도 일을 하셨지만 나도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내 세우고 싶어지는게 우리 모두의 마음인 것이다.

 그럴때 마귀가 미묘한 미소로 미혹해 오는 것이다.

마귀는 말한다.

"그렇다 네가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네게 그런 경험이 있기 대문이다.

너는 남들과 다른다. 너는 똑똑하다"'는 말을 한다.

 3,번영의 때에 더 정진하자

24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여로보암의 삶을 평하고 있다.

 여로보암의 죄악은 자기 혼자만의 죄악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함께 범하는 죄악의 선도자 역활까지를 했던 악한 왕이었다.

 죄악이란 마치 사람들에게 잘 맞는 보석이 달린 옷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보석이 달린 옷을 입게되는 날엔 벗어 던지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럼 첫번째의 여로보암은 어떤 사람이었나------------------------------------------바로 금송아지를 마든 장본이다.

예루살렘의 하나님과 금송아지를 동일시 했던 사람이 여로보암 1 세였다.

 그런 여로보암과 모든 죄를 같이 했다고 했으니 여로보암 2 세도 나라가 부요해지자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되니 점차 하나님보다 바알의 우월성에 대한 잘못된 확신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시고 있는 교훈이 참으로 많다.

 먼저 우리들이 생각을 해야할 것은 사람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계속 해서 성장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기가 성장을 하면서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넘어지기도하고 때로는 몸살도하고 때로는 병원에 입원도 하게된다.

 그러면서 성장한 장정으로 커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도 그렇다.

일단 주님의 부름을 받은 새로운 생명의 씨았이 뿌려진 사람들은 부름을 받은 그날부터 계속해서 성장해가야함이 정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넘어지기도하고 몸살도하고 병원에 입원도 하면서 성장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들이 우리들을 성장시키는 시험의 단계들인 것이다.

그 시험의 단계가 때로는 가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질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단계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일 때도 있다.

 사람이 가난을 넘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또 사람들이 축복을 받으면서 은혜도 받고 유혹도 받는다.

 그러니 사람들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을 통하여 즐겁고 기쁠때는 그 즐거움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의 시간에는 그 축복을 통하여

우리들은 더 높은 은혜와 축복의 자리로 옮아가게 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회의 순간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얼마나 감사한가

여러분들이 바은바 은혜와 축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주시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떻게하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 보시는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건강하실 때 건강을 하나님께 드리시라.

시간이 있을 때 그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쓰시라.

능력이 있을 때 그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시라.

 마25;에서 주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26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고 하셨다.

 이 말은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하나님을 위하여 활용을 하는 자들에게는 더 주시어서 풍성케 하시겠다는 말이다.

 눅19;11-27절에 열 므나의 비유가 있다.

13절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 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주인이 올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시었다.

 15절에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열므나를 나어 받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의 권세를 찾이하라" 고 했고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찾이하라"고 했다.

 그런데 한 므나를 그냥 가지고 있었던 종을 향하여는 27절에 이렇게 말했다 "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글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고 하시었다.

 원수라고 했다.

주님과 원수지지 말고 주님의 사랑하는 친구가 되시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 하나님을 위하여 더 크게 쓰임을 받으실 수 있도록 열므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처럼 믿음의 장사를 멋지게 잘 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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