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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 (요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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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부활절을 가지고 있는 특색있는 종교 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은 이세상의 다른 어떤 종교에도 없는 오직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동원하여 죽음에 대하여 도전해 보았고 또 죽음을 정복 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을 이겨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읍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직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요11:25에"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 놀라운 부활을 약속 하셨읍니다.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주님의 약속을 믿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승리를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탄생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2천년 동안 부활신앙에 기초해오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직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 믿지를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많은사랍들이 부활의 신비성과 그기적을 믿으려 들지를 않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않는 안타까움이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토록 3년동안 따라다니면서 누누히 부활에 대함을 가르쳐 주었건만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부활을 믿으려 들지를 않았읍니다.

그 가운데 한사람인 도마 였읍니다.

도마는 나중에 나타나서 "내가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며 믿지를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요20:26에 나타난 것 처럼 그 후 8일 만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특별히 도마를 위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난 후에 "나의 주시여,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는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은총 이라면 부활의 은혜는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승리 그리고 축복의 약속을 위한 성취이기도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오늘 아침에 본문말씀에 의지해서 부활의 은총의 효과를 생각하며 몇가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부활하신 주님은 평강의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닫고 한 집에 모여 있어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샬롬"이란 말은 '평안하다, 풍요롭다, 온전하다, 범사에 잘 된다, 건강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불안이란 말은 헬라어로 '메니조'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이 분열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인간에게 있어서 어느정도의 심리적인 불안 그리고 공포 등등은 어느정도 이겨낼 힘은 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인간적 능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극도로의 위기적 상황에 직면하면 그 불안을 이겨 내지를 못 하는 것이다. 고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성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게 도움을 그 누가 필요한 것이다.

그가 바로 우리 주님 이신 것입니다. 타 종교에서는 스스로를 끝까지 강조함을 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인간 스스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말씀 속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어떤 잘 믿는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가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예수님과 자기의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나란히 나 있어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또다시 보니까, 이제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예수님, 왜 발자국이 하나만 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불안해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나는 너를 내 품에 안았지 그리고 내가 너를 안고 갔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 고통을 당할 때에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고민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품안에 끌어않고 평강의 축복을 주시는 분 임을 믿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부활의 주님의 은총은 용기와 담대한 능력을 갖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죽데 될 것이 아닌가 두려워 떨면서 문을 닫아 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떨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비록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도망쳤던 다른 제자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면서 나를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목슴을 내걸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했던 것입니다.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사도 베드로의 담대한 외침-시련 중에도-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 했읍니다.

(행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행4: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행4: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사도 바울도 부활을 증거하다가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었다.

(행23: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24: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이러한 산 증인들앞에 핍박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순교자의 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주셔서 성령 안에서 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케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그리스도인들도 용기있게 그리고 담대하게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승리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부활의 체험은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도마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마의 태도는 바로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보고도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믿게 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입니다. 예수님꼐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실 때에 도마는 요14:5에서"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거기를 어찌 하겠사옵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의심하는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나 의심속에서 해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무신론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막스주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현세적 세상에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지상낙원은 커녕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읍니까 지금 곳곳에 공산주의의 산물 가운데 하나인 전쟁의 소문만 나고 있지 않읍니까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은 실로 어리석은 사람들 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않됩니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도마는 에수님이 부활하셔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 그곳에 없었습니다. 기회를 놓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의 축복을 받으시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4.부활의 주님의 은혜는 승리자의 반열에 서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며 결코 변치 않겠다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모두들 흩어지고 말았읍니다.

이것은 패배요 실패요 낙오의 길에 빠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주님의 진리의 약속을 믿지 아니하면 패배자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패배자가 됩니다.

또 그 무서운 죄가 우리를 패배케 합니다. 죄를 짓는 자가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가 무엇 입니까 죄를 조성케하는 마귀의 세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부활은 죄를 이기신 것 입니다.

불의와 미움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렇게 불의하고 이렇게 거짓되고 탐심이 많고 황금만능주의적인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고, 선이 어디 있고, 절대적인 가치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앞에서 패배자인 것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고 죄가 승리자가 아니라, 이들을 다 정복하시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이기는 승리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여러분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면 평강의 은총을 받고, 두려운 마음에서 용기와 담대한 능력의 증인으로 바뀌어지고, 의심없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며, 승리로운 삶을 영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간직하고, 믿는 자 들이 되시기를 주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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