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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 소망의 삶 (벧전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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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는 "산 소망의 삶" 을 소개하면서 베드로전서의 멧세지를 시작합니다. 1장은 우리에게 고난의 목적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고난의 목적을 보여 주면서 본문인 1장1-12절에는 산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입니다.

 1.산 소망의 원천

우리가 산 소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산 소망 즉 살아 있는 희망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1장 2절과 3절이 이 산 소망의 원천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선택" 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번째는 " 하나님의 긍휼" 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하나님의 선택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고난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 여려분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 리가 우연하게 이 세상에 던져져 이런 고난과 이런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창세 이전부터 여러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리고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2절> "하나님 아버지" 여기서 성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미리 아셨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우리가 복음을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택함받은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 우리의 선택의 사건 속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동시에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사역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선택하시고 성자께서는 내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내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고 어느 날 나로 하여금 복음을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고 복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통해서 택함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도 베드로는 "피뿌림"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귀한 사랑을 받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입은 것입니다. 이 "피뿌림"이라는 말은 "피 흘림"이라는 말과 어감상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피 흘림"은 우리의 속죄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피 뿌림"이라는 것은 속죄의 적용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 하나님께서 완고한 바로를 인하 여 애굽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처음 난 것들과 장자들에게 심판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방편이 무엇이었습니까 양을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출12:23> 그 가정을 대신해서 그 가족을 위해서 양 한 마리가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이 피 흘림 때문에 그들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속죄의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양이 피를 흘렸다고 해서 저절로 그 집의 장자가 죽음을 면한 것은 아닙니다. 흘려진 피를 이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그 사실에 동의하지만 그렇게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참으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즉 이들은 피 흘림의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피 뿌림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으셨습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나의 구속의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때 피 뿌림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창세 이전부터 하셨습니다.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획 가지고 창세 이전부터 당신의 삶을 간섭하셨습니다.

 둘째:하나님의 긍휼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p하시며"<3절>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그 많으신 긍휼 때문입니다. "긍휼"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땅히 저주해야 할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저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의 깊이를 아십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문제 이상으로 훨씬 더 죄에 찌들리고 오염되고 부패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이 죄에 대해서 얼마나 신랄한 고발을 합니까 우리가 성령님의 밝은 빛 앞에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우리가 가진 죄r와 악의 깊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임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진노를 느낍니다. 그런데 마땅히 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나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절망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낙심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많은 긍휼로 나를 구원해 주셨는데-인생을 살면서 약간의 괴로움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노래를 불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해야 할 넉넉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많찺맒 긍휼대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어떤 역경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드디어 독일을 점령하고 독일의 저 유명한 지옥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환했습니다. 이 지옥같은 수용소 끔찍한 학대와 고통과 잔인한 고문 비인간적인 억압에 시달려야 했던 이 수용소의 한 벽에 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찬송가 가사가 적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v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조차도 빼앗아갈 수 없었던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보십시오 이것이 고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아시고 그분의 품 안에 안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품 안에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애정의 대상이며 많은 긍휼의 대상입니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는지요 <엡2:4절>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바울도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합니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그분은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감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선택, 이것이 우리가 가진 살아 있는 소망의 원천입니다.

 2.산 소망의 기초

우리의 산 소망의 기초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벧전 1:3절이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살아계신 주님,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 그 주님이 나에게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 생명을 통해서 새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실존적 체험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나를 계속해서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나도 언젠가 죽지만 예수님과 같이 다시 육체적으로 살아 난다는 내 육체의 부활의 보입니다. 또한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그분은 나를 영적으로 새롭게 소생시키시고 계속해서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죽으심은 믿을 수 있지만 부활을 믿을 수 없어." 부활이 없이 기독교가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만 가지고 기독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14절> 롬4장 2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필연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에서 "내어주셨다"는 말은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내어 주신 바 되었고 또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의 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목적만 관철된 것입니다. 왜 죄를 용서하셨을까요 나에게 이제 의를 옷 입혀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고 그 주님이 나를 의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하시기 위해서 그분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 뛰어들어와 나에게 새생명을 주시고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고 내 삶을 계속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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