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생명의 면류관 (계 02:8-11)

첨부 1


미국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서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지미 카터>입니다. 그는 그의 고향 조지아 주에 카터 연구소를 만들어 국제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하면, 국제적인 해결사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는 경직화되어 가던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일성을 방문했고, 보스니아의 내전해결을 위해서 세르비아계의 본거지인 팔레를 방문했는가 하면, 아이티를 방문해서 긴장을 해결하는데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였습니다.

카터가 해군 중위시절, 해군함정을 타고 항해하던 중 어느 날 함장인 리코버 제독으로부터, “귀관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라는 책망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크게 깨닫고 자극을 받아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삶이 원인으로 작용해 서 대통령이 되었노라며 리코버 제독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의 조건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재벌들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들은 오늘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을 알게 됩니다. 음악도, 운동도, 미술도, 세계 정상에 오르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일곱교회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면서도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 환경조건이 몹시 나빴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처했던 상황이 오늘 본문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라고 말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과 훼방에 직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때문에 박해와 환난과 생활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유대주의자들의 방해와 훼방이 교회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의 황제 숭배와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서머나 교회를 위협했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황제 숭배를 거절하는 사람은 재산을 몰수당했고, 일터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순교자 가운데 한 분인 최태용 목사님께서는 1926년 1월호 <영과 진리>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 속에서, “이제는 신앙혁명을 들으라! 기독교가 아니요, 그리스도 자신을 믿으라. 교회 생활이 아니요 영이 되라, 진리가 되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인이 아니라,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등불이 방 가운데 들어가매 어둠이 밖으로 도망가고, 물이 그릇안에 들어가매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믿음이 마음 가운데 들어가매 의심이 밖으로 나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쫓겨나고, 물이 차면 공기가 쫓겨나는 것처럼, 믿음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면 의심도, 두려움도,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계 교회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인물들을 살펴볼 때 그들 대부분은 오히려 어렵고 힘든 환경과 조건 속에서 더욱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95년 4월달도 마지막으로 보내며 벌써 5월을 맞게 되는 모든 성도님들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후회없는 한해가 되도록 열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2. 영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생활을 잘 한다든지, 예수를 잘 믿는다든지,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와 하루 봉사를 했다고 해서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사건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축복을 받는다는 것도 당장 내 손에 수표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당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쪽 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영적인 문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이 본질이기 때문이며, 영이 살고, 영이 복을 받아야 육신이 살고, 바로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님은 일경이 고문을 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는데 저도 고문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며 고문을 견뎌내었습니다.
어느날 일경이 물었습니다. “영감!, 천황 폐하가 기독교를 믿으면 죽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천국법도 지키고 국법도 지키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둘 다 지킬 수 있단 말이요”라는 물음에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으라고 했으니 예수 믿고, 천황이 죽으라 했으니 죽으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깝지 않거나, 죽음이 두렵지 않고, 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면하고 싶어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나 서머나교회 교인들이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과 믿음을 지켰던 것은 영적인 문제가 더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를 에워싼 조건들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한시적입니다. 그러나 영은 영원하며, 영적 사건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오늘의 쾌락이나 행복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10절 하반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충성을 다하며 열심히 일했고, 환난과 궁핍과 고통을 감당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서머나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입니다.

이 한마디 속에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던 충성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이미 충성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자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나 가치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게임 끝났다고 훈련을 쉬는 선수는 다음 경기에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임이 있든, 없든 훈련을 계속해야 강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독창회나 연주회가 끝났다고 해서 연습을 중단해 버리는 음악가나, 전시회가 끝났다고 해서 붓을 던져버리는 미술가는 훌륭한 작품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4개월동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힘써서 그 일들을 계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9일 저녁 6시 제주공항을 떠나 광주로 이륙하던 여객기의 왼쪽 엔진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기 시작했습니다. 3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순간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곧바로 기장은 기수를 제주로 돌려 회항했고, 다행히 불은 착륙과정에서 꺼졌습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활주로에 있던 꿩이 비행기에 부딪쳐 일어난 조류 충돌사고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외국에서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고 부릅니다. 꿩 한 마리 때문에 엔진 부품인 팬블레이드(FAN BLADE) 46개가 망가져 40억원의 수리비를 날렸다고 합니다.
1955년부터 23년간 민항기와 군용기 73대가 새와 충돌해 추락했고, 138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92년 한해동안 전 세계적으로 5,606건의 조류 충돌사건이 있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그렇습니다! 꿩 한마리와 비행기는 비교 상대도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 사건속에서 작은 새 한마리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귀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작은 것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소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성과가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적위주로 치우치다 보면 형식과 전시효과를 중요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일은 오늘 당장 그 실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했다고 해서 오늘 상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시간제가 있고, 일급이 있고, 주급이 있고, 월급이 있고, 연봉이 있습니다. 한 시간 일하고 받는 보수는 극히 작습니다. 대개 엄청난 보수일수록 연봉으로 계산합니다. 1년에 얼마를 주고받기로 계약하는 것이 연봉입니다. 한 시간 일하고 그 자리에서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연봉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보상은 영원한 보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 당장 칭찬이나 보상이 없다고 해서 결코 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넷째,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면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면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공부를 못했나, 대학을 안나왔나, 얼굴이 못생겼나. 그런데 겨우 면장이라니!”하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술타령을 일삼고 걸핏하면 도지사 만나 교제해야 된다며 도청 소재지에 나가 살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왜 면장 일을 소홀히 하느냐”고 물으면, “나한테 대통령을 시켜봐라. 내가 누구보다도 잘 해낼거다!”라며 큰 소리를 칩니다. 이 소문이 도지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몇날이 못가서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핑계가 그렇게도 많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들은 둘을 맡겨도, 다섯을 맡겨도 충성을 다합니다. 무엇을 맡겨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취급하거나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군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장에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겠습니다.

다섯째,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순교 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 목사님은 1939년 6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2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40일 금식기도가 끝난 최목사님은 산 송장이었습니다. 병보석으로 나와 기홀병원에서 15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 하신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는 최목사님과 같은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날까지 한국교회가 역사의 격동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