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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받은 자의 자세 (롬 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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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무슨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절대로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시지 않으셨다.

이런 내용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 11:11이하의 내용이라 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절대로 버리시지 않으셨다-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느 냐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은혜로 택해서 남겨 놓은 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 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사실 세가지를 바울이 말하고 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완악해진데 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를 배척한 덕분에 이방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첫째의 내용입니다.

둘째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그 중의 얼마는 예수를 믿고 돌아올 것이다. 하는 내용입니다.

세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돌아오는 날, 세계가 얼마나 더 복 을 받고 아름다워질까 한가지씩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오늘 20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 나님이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완악해진 덕분이 이방사람들이 믿게 되었다하는 내용입니다.

 11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 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이 11절 말씀은 조금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이 말은 저희가 실족하기까지 넘어져 버렸느냐하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실족하고, 넘어진다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실족이란 말은-돌에 발이 부딪혀서 비틀거리다가 바로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완악해서 아직까지 예수 믿지 않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넘어지는 것-완전히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 멸망당하는 것을 말합니다.전혀 소망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바꾸면 이스라엘이 비록 완악해 서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지만, 이것이 완전히 멸망당했다는 증거냐 그것이 절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실족하듯이 예수 믿지 않고 있는 이것은 다 의미가 있다. 비록 그들이 잘못하고는 있지만, 절대로 세상에 대해서 손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다.왜냐하 면, 그들이 예수를 안 믿으려고 했기 때문에 이방인인 우리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느냐 그러니 어떻게 그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냐 그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실족해서 비틀거린다고 해서 그들이 영원히 망했다.이 렇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1절 중간에 넘어진다는 말이 또 나오지요. [저희의 넘어짐으로] 이것은 번역 상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이 넘어짐은 앞의 넘어짐하고 같은 의미가 아닙니 다.오히려 [실족]하고 같은 의미로 해석을 하면 됩니다. 지금 예수를 믿지 않 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악하개 주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말합니 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이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있습니다만, 벌써 10장부터 시작해서 벌써 하나님이 복 음을 이방사람에게 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왜 사도들이 복음을 이방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느냐 이스라엘 사 람들이 복음을 전해도 안 들으니까 배척하니까 어쩔수 없이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큰 비중을 두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비시디 안디옥이라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이 들고일 어나서 전도하지 못하게 했고, 복음을 듣고 돌아온 이방사람들을 질투하고 굉 장히 방해를 했습니다.이 때 바울이 한 말이 있습니다.

행 13:46절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유대인 된 너희에게 전할 것이지만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자로 자처 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너희가 안 들으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인에게 가서 전할 수 밖에 없다 하는 이 야깁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2년동안 수감되어 있을 때에, 조금씩 자유를 얻어 가지고 로 마의 사는 유대인들을 불러서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예수 를 전했지만 믿는 사람은 대단히 소수였고,대부분은 바울을 배척했습니다. 이 것을 보고 바울이 행 28:28에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저희는 또한 들으리 라.

이만큼 이스라엘 백성이 듣지 않은 덕분에 이방인인 우리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호기를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 졌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그런 의 미에서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없는 기독교-이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위치는 매우 독보적이요, 존경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습 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세가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떡을 가지고 비유합니다.

민수기 15:19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대로 제일 처음에 거둔 곡식을 가 지고 떡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번 농사를 짓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제일 처음 익은 것은 하나 님의 것이 오니 받으시옵소서."하고 드립니다.

그러면 처음 익은 것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려지면, 그 다음부 터 음식 만들 때마다 들고 와서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어요. 그 다음의 이 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다 거룩하게 바쳐진 음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거룩한 떡과 같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뒤따라오는 이방 인들이 자연히 거룩해 진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었 으니 이스라엘의 위치는 대단히 독보적이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어린나무.-어린 묘목을 가져다가 성전 마당 귀퉁이에 심으면 서 [이 나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나무니까-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이 다 하나님계 바쳐진 거룩한 것이 됩니다. 열매를 따로 하나님 바쳐서 거룩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에게 어린 묘목과 같아요. 이들이 처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고,우리에게 전했으니까 그들이 묘목이고 우리는 가지나,줄기나 열맵니 다.

 또 하나의 비유가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비윱니다.

참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돌감람나무는 우리들이죠. 참감람나무 가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않으니까 가지를 쳐버렸습니다. 그리고 돌감람나무가 지를 접을 붙였습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 가지는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 을 당했으니까 잘 된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원예 법에 의하면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접을 붙일려면 돌감람나무에다가 참 감람나무를 붙여야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날 때부터 아무런 희망이 없는 우리들이 이스 라엘이 가졌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으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3가지 비유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중요한 위치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우리가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하거나,스스로 교 만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19절-20절을 봅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 지 아니 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대단히 무서운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완강하게 배척하지 안이하 면 우리가 이처럼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가질 만도 합니다.

그들이 잘못되어서 우리가 잘된 세이니,그들을 욕할 수 있습니까,우리 스스로 교만할 수 있습니까 비판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뿌리를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주 잊어버리기 쉬운 과거의 영적 자본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의존하고 있 습니다. 한사람도 신앙에 있어서 홀로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복 음을 전해 주어서 믿게 되었고, 누군가 나의 신앙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주 었지 때문에 내가 이만큼 영적으로 자랄 수 있었고, 누군가나를 가르치느라고 땀흘리며 애썼기 때문에 영적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에겐가 빚을 진 사람입니다.

이 빚진 뿌리에 대해서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멀리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는 빚진 사람입니다.

서상윤,존녹스 선교사를 얼마나 기억합니까 이들이 만주에서 7년여 동안 각고 의 노력 끝에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을 하고, 나무판에 새겨서 책을 만들고, 성서를 반포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이런 분들의 손을 거쳐서 우리가 지금 아 름다운 한글로 된 성경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아펜셀러 목사님을 여러분들은 기억합니까 갓 결혼한 신혼의 젊은이가 낯설 고,물설은 동양의 오지에 와서 일생을 바쳐서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오 늘의 우리 한국 교회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에 예수 그 리스도가 제대로 증거가 되었을까 의심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 거의가 교회에서 보낸 시간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특히 신앙생활에 철저하셨습니다. 한참 친구들에 빠지고,이성에 빠 지고, 다른 일들에 빠져들 나이에도 우리 아버님의 철저한 신앙 훈련이 오늘 의 황대성목사를 있게한 것입니다. 그 때에야 원망스럽기도 하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모든 분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가지고 생활했는지 생 각해 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너무나 가난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예수 믿게 된 경우 도 있습니다. 그것이 다 뿌리에요.

어떤 부인은 남편이 술에 빠지고, 탈선을 해서 하도 원통하고,절망스러워서 예수를 믿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뿌리에요.

 어떤 대학생이 쓴 간증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어머니는 처녀 때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교회에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딸을 낳아 키우면서도 남편은 술 고주망태기가 되고 점점더 타락해 갑니다. 그러다가 이 학생이 4살 때에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부 인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나 님을 섬기며 나름대로 다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간증의 제목을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나의 새 삶]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이 신앙의 고귀함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대학생의 가족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신앙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뿌리는 누굽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놓고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찬양합니까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까 진실한 성도는 자기가 빚진 영적인 뿌리를 잊어버리고 교만할 정도는 안된다 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기가 교만하면, 가지이면서도 뿌리와 줄기를 무시하고 잘난 체하고 교만하면 그 사람은 잘리울 가능성이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가지도 아끼지 않으셨은즉 접붙임을 받은 너희도 짤리울 것이다.

이 말씀이 본문에 나오지요.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교 만할 수 없다는 것. 자기의 신앙의 뿌리를 잊어버리고 자긍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남아 있게 된 것, 전적인 은혜지요. 내가 잘 나서 된 것 아니지 않습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혭니다. 나를 위해서 어떤 사람을 사용했던 간에, 이스 라엘 백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을 통하고, 우리 주위의 사 람들을 움직여서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혭니다.

그러면 무슨 은혭니까 22절을 보십시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엄하게 다스리시는 것을 보라 그 말입니까 그러면 누구에게 엄하게 다루십니까 넘어지는 자들에게 엄하게 다루십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에요.

안 믿으니까 그러나 접붙임을 받은 가지처럼 연약한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인자로 다루셨다.

너희가 인자에 거하면-우리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그 덕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자랑합니까 무엇을 교만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잘못이 없도록 언제나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보이게 보이지 않도록 수고해 주신 분들에 대해서 늘 감 사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이방인들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을 보고 이 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질투심이 생겨서 돌아오게 된다고 말합니다.

 14절에-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먼저 믿게 하신 것은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기 나게 해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지혜요. 섭리라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이방인들을 보고 질투해서 회개하고 돌아 왔는지 정확한 숫자를 제시할 수는 없어도, 대단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개는 그들의 질투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자기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믿는 자를 핍박하고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이렇게 잘못된 질투도 있었지만,반면에 이방인들이 예 수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가난한 중에서도 풍성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시기가 나고 질투가 나서 저것들이 믿는 예수를 왜 내가 못 믿나 하고는 돌아 온 유대인들이 많다는 것을 봅니다.

 지금 팔레스틴에 가면 440만명 정도가 산다고 합니다. 그 중에 30개 정도의 교회가 있고, 한 교회에 평균 100명 정도가 모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000 명 정도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마 이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믿 는 예수에 대해서 질투가 생기고 너무 좋아 보여서 돌아온 사람들인지 모릅니 다.

그러나 반면에 예수 믿는 사람을 끝까지 핍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스스로 단체를 만들 어서 조직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는데, 12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아니마민]이 라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더디 오신다.

이들은 나찌의 개스실로 들어 가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마나 처량한 사람들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들이 안달을 할 때가 되어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다려도 메시야는 오지 않고, 세상의 종말은 다가오고,그래서 이방인들이 믿 는 예수를 우리도 따라 믿자고 하는 때가 곧 오리라고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질투에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 한다면, 예수 믿는 우리가 과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었는 가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안 믿는 사람들이 [너 믿는 예수 나도 믿어 보자]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집이 자녀도 잘되고, 가정도 화목하고,사업도 잘되 어야 합니다.그래서 시기가 나서 예수를 믿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 믿는 가정이 가장 못사는 집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 특별히 다루신다고 보아야 합니다.

 안이숙 여사는 감옥에 잡혀서 취조를 받는데 얼마나 매력이 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소문이 퍼져서 평양 도청의 연로 담당 주임이라고 하면 당시 세도가 보통 당당한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의 부인인 히라시라는 여자가 안이 숙여사를 보고 싶고 사귀고 싶어서 일부러 간수가 되어서 이틀에 한번씩 감방 에 들어 와서는 하루 종일 안이숙 여사를 옆에서 지켜 보는 것입니다. 죄수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매력이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찾아올 정도로 매력이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끝으로 바울은 언젠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돌아 오는날 눈 앞에 전세계가 복을 받는 축복이 임할 것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12절을 봅니다.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 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또 하나 15절을 봅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바울은 자기 민족을 향해서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이 믿고 돌아 오는 날 놀라운 복을 받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꿈 을 가지고 자기 동족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동족을 향해서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한민족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20세기말 21세기에 세계를 위해서 사용 하시는 아름다운 도구가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사분오열되어 당파싸움에 날새는 줄 모르고,경제 가 어렵지만,그러나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바울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가졌던 꿈처럼 아름다운 미래 가 우리의 민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선교회에 갔다가,목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어찌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 는지, 우리는 당장 망하게 되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언성을 높이며 조목조목 따져서 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고,돌아 오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언 짢았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 르겠어요.

우리는 바울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젼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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