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앙의 가정 (삼상 01:1-8, 딤후 1:5)

첨부 1


오늘 본문은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레위인 엘가나가 라마다임소빔(아리마대)이라는 마을에서 두 아내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 한나는 무자하였고, 다른 부인 브닌나는 자식이 많았습니다. 엘가나는 선량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부다처가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가 그랬을지라도(신21:15-17). 일부다처제는 하나님의 계시에 어긋난 일이었습니다(창2:24). 엘가나 집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또한 이 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 당시 백성들의 저급한 영적인 상태를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제사장들의 부도덕은 황당(荒唐)한 일로서(2:22), 엘가나는 그들에 비하면 상당히 경건한 인물이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차 사회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인간 사회의 중심이자 기본 단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가정의 신앙의 성패가 전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따라서 한 가정의 신앙 성공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며 살아가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삶을 조금씩 익히며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일까요 신앙의 가정이라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신앙의 가정이 다른 점입니다. 이제 이러한 신앙적인 가정의 문제와 해결책을 살펴보겠습니다.
한나의 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삼상1:6)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7)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6-8절을 보듯이 한나 슬픔은1)한나의 슬픔은 자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믿었기에, 그 기업이 없는 것이 그에겐 큰 슬픔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열매가 없는 것도 이와 같이 슬픈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수확이 없는 것은 정말로 슬픈일입니다. 우리의 슬픔의 근원이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는데 있음을 우리는 느껴야 합니다.

2)한나는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삼상1:6)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그녀의 무자한 상태가 경건치 않는 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한나와 같이 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주의 사랑과 은총이 더해집니다.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게 될 때에 더욱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된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3)그는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삼상1:7)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그녀는 매년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것을 인하여 울며 먹지 않았고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심술긋은 브닌나는 이 때를 이용하여 한나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브닌나는 엘가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서 한나와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엘가나가 한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녀의 무자함을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샘 많은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엘가나는 예배할 때마다 희생의 짐승을 잡아 제물을 바쳤고, 그 때마다 식구들에게 희생제물의 고기를 고루고루 나뉘어 주었는데 모두 각기 분깃을 받았지만 한나는 분깃이 없으므로 맛있는 부위로 크게 떼어 주므로 엘가나의 사랑을 한나에게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엘가나의 마음표시에도 기쁨은 찾아 오지 않고 슬픔만 더해 갔습니다.
한나에게는 근심대신 기쁨의 기름을, 침울한 마음대신 찬양의 옷을 가져다주실분은 엘가나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길,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한나의 슬픔과 브닌나의 짓굿은 심술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신앙의 가정으로 손색없이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엘가나는 선량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잘 감당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엘가나의 가정이 신앙의 가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말씀에 따라 사는 가정입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한 절차에 의해 규정된 제사를 합당한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드렸습니다(3절). 이것은 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즉 매년마다 실로에 가서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라는 규례(출 23:14-17)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음을 시사해 줍니다.
실로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식양대로 성막을 지었고.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시대까지는 여부스족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우리는 엘가나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절기 준수 명령에 순종하여 함께 실로에 올라온 것을 보게 됩니다(9절). 이는 엘가나의 온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겼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말씀이 가면 따라가고 말씀이 멈추면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 모두가 '주의 말씀은 우리 가정을 안내하는 등불이며 우리 가정의 나아갈 길을 비춰 주는 빛입니다'(시 119:105)라고 하는 고백을 충심으로 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2. 전 가족이 함께 신앙 생활하는 가정입니다.
엘가나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실로에 갔을 때 그의 두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갔습니다(7절). 또한 그들은 화목제로 드린 희생 제물 중에서 제주(祭主)에게 돌아오는 몫으로 온 식구가 여호와 앞에서 즐겁게 잔치하였습니다(4절). 이는 바로 앞에서 강조한 바대로 엘가나 온 가족이 모두 여호와의 절기를 지켰음을 가리켜 줍니다. 실상 한 사람의 신앙은 단지 그의 생애만 책임질 수 있는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족 중 어떤 한 사람이나 일부분만의 믿음으로 전 가족의 구원을 약속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시에 한 가정 일부의 신앙생활이 전 가족의 신앙생활을 대표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일 뿐 아니라 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컨대 온 식구가 주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 되어 서로 아끼고 돌아보며, 주 안에서 사랑으로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하는 가정! 이것이 진정 모범적인 복된 신앙인의 가정 모습입니다. 고로 우리는 같은 신앙을 가진 경건한 가정에서 젊은 목회자 디모데가 나왔음을(딤후 1:5)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가정 문제를 잘 해결하는 가정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두 아내를 거느린 이유로 해서 가정 문제가 생겼습니다(2절).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엘가나가 사랑과 위로로 이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5절). 물론 그의 축첩 행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축첩 제도는 사사 시대의 말기인 당시에는 일반적인 관습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그만큼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두웠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엘가나의 가정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관점을 바꾸어 봅시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전혀 문제가 없이 말 그대로 만사 형통입니까 솔직히 말해 이 지구촌의 어느 국가 어느 종족 중에 어렵고 고통스런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가정은 한 가정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한 가정에 있는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느냐가 큰 문제요, 관건인 것입니다. 본문의 엘가나는 그의 가정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았습니다.그래서 그는 남자로서, 가장으로서의 완력이 아닌, 사랑과 인내와 위로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진정 주(主)의 지혜와 사랑으로부터 나온 훈계와 지도, 위로만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엡 6:4).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권속으로서 가지는 특권과 복을, 이땅에 허락하신 우리의 가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의 최고 우선 순위를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두어야 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비판적 자세가 아닌 주의 사랑과 훈계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