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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일조와 헌물 (말 0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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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요일 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강단 밑에 엎드려 열심히 준비기도를 하였습니다.
시간이 되어 예배 인도를 하려고 하니 교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설교 제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교인이 없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외쳤습니다. “도적놈들아 회개하라, 주일 성수 않는 도적놈, 십일조 떼어먹는 도적놈, 이 도적놈들아 회개하라, 당신들은 강도들이다. 이 강도들아 회개하라, 지옥의 이글이글한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으려거든 회개하라”
목사님은 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없이 외쳤습니다. 마침 강도 둘이 도둑질을 하러 가다가 비때문에 이 교회에 들어와서 숨어 있었는데, 목사님이 “이 도적놈들아 회개하라, 이 강도들아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에 감동이 되어서 설교 후에 기어 나오면서 잘못했노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외쳤는데 도둑들이 들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날 밤 목사님의 설교는 헛된 설교가 아니었고 두 도적을 회개시킨 결실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외치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목사의 고민이 있다면 분명히 전해야 되는 말씀인데 회중을 의식하는 나머지 똑바로 큰 소리로 확실하게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되지못하여서 소화를 시켜 삶의 양식을 삼지 못하고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성도를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의 집단 살인 사건 때문에 ‘구원’이라는 단어가 정말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된 것이라든가, 재림 사상이 성도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으로 그 강조가 시들해진 경우를 우리는 봅니다.
죄에 대한 지적, 특히나 헌금에 대한 설교는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다가 나오지 않는 분이 계시는데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목사님의 말씀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은근히 돌려서 물어 보았더니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 돈 내라고 호리는 것이지 정말로 복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듣기에 달콤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파수군의 나팔 소리는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복이 되는 말씀이라면 좋아하는 여부를 떠나서 증거해야하는 것입니다. 보약이 쓴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가집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서 이룩되어질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며 희망을 갖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공상으로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을 키우시고 가꾸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아 주셔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13:22)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갖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내(성도)가 누구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라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악함이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그러나 절대로 자기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되서야 그것을 압니다.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면 그만입니다. 인간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자기 손에서 떠나가고 맙니다. 자기 집이라고 등기를 하고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 흔들어 버리시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실감했습니다. 절대로 안전하다는 고속도로가 엿가락처럼 되고 물질 문명의 영화가 황폐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도 집착하며 얻기를 원하는 것도 물거품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란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사는 자’ 입니다.
(고전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사는 생활을 청지기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은 성도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청지기의 관리 능력에 따라 주인이 더 많은 것을 맡길 수도 있고,맡고 있는 것까지라도 빼앗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것을 잘 활용하여서 충성했을 때 칭찬과 존귀를 얻었지만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청지기 역할을 잘못하여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습니다. 우리의 몸, 가정, 자녀, 물질, 직분, 시간, 사명, 재능···············.

이 모두는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잘 활용하여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풍성하게 더하실 것입니다.
청지기로서의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질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물질 생활로 나타납니다.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곧 성도의 재물에 대한 바른 자세가 그의 신앙 전체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시금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재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구원이나, 믿음, 사랑, 은혜와 같은 것과 비교했을 때 재물의 가치는 미미합니다. 그렇기에 낮은 가치에 있는 재물 하나도 재대로 하나님의뜻대로 쓰지 못하는 성도가 어떻게 더 귀한 것들을 관리할 수가 있겠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물질 생활은 영적 축복의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 생활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물질생활을 우리에게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민족인데 이웃 나라에게 짓밟히고 제대로 되어 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원인이 바로 저들의 신앙생활의 잘못에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라고 하시자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물질관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십일조의 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말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받을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출발은 바로 십일조 생활부터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겠노라고 서약을 합니다. 십일조는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십만 원을 벌었으면 만원을 바치는 것이고 천원을 벌었으면 백원을 바치는 것입니다. 가축이 열 마리 새끼를 낳았으면 한 마리를 바치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십분의 일만 받으시고도 전체를 받으시는 것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 연보의 약속을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물질적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람과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은혜를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물질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안락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을 하게 되면 인정도 도덕도 사랑도 사라지고 모두가 망하는 파괴만이 남게 됩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온갖 죄악의 바닥에는 돈 문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물의 의미와 가치의 회복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좀 더 복되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짐을 감사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고백을 통하여서 인간 세상을 향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직.간접적으로 재물이 요청됩니다. 우리는 연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서 복을 주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해 보라는 말씀은 증명(확인)해보라는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과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 그대로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만족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고 해서 거래하는 것처럼 돌아올 것에 집착해서도 안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음을 감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데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준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이것을 씨앗으로 삼으시고 채워 주십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놀라운 것은 심는 것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표현으로 하자면 30배 60배 100배 입니다. 여러분 잘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선교헌금도, 구제도, 봉사도··········, 많이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에 있는 말씀처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넘치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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