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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느 청년의 용기-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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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씩 용기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그들은 조용히 행동한다.
얼마 전 김도형이란 대학원생을 알게 됐다. 수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한 종교집단과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서부터 들은 얘기는 이랬다.
95년 3월경 카이스트 학생이던 그는 한 교회를 소개받았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그 교회는 전국에 수많은 지부를 둔 독특한 교단으로 명랑하고 뜨거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조직이 핵심과 일반신도로 나눠져 있었는데, 핵심간부들은 교주를 메시아로 비밀리에 모시고 있었다. 한편 조직의 핵심은 정체를 숨기고 대학 내에서 위장 동아리로 침투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연히 교주가 그가 다니는 대학을 방문했다. 황제 같은 행차였다. 경호원들이 교주가 탄 벤츠 승용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교주의 옆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신도가 앉아 있었다. 문득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그는 탁명환 씨가 발행한 종교 잡지에서 한 기사를 봤다. 교주의 성 추문 의혹이 제기된 기사였다. 여러 여신도들에게 조심스럽게 확인한 결과 그게 사실임을 알았다. 농락 당한 한 여신도는 '말하면 죽어요' 하고 겁을 냈다.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조직은 연말에 학생들을 길거리로 내보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은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돈은 새고 있었다. 순진한 마음에 여기저기 따지고 다니던 그는 어느 날 교주의 경호원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들은 죽지 않으려면 까불지 말라고 협박했다.
그때부터 돈키호테 같은 그의 무모한 투쟁이 시작됐다. 먼저 그는 그가 폭행 당한 사실을 고소했다. 하지만 그를 때린 범인은 진단서를 만들어와 서로 싸운 것으로 사건을 희석시켰다. 퇴원 뒤 그는 수사기관을 찾아가 신고했다.
그런데 신고 받은 수사관은 오히려 몸을 사렸다. 다음에 그는 언론기관을 찾아다녔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광신도 집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잡지사에서도 처음에는 흥분하더니 며칠만에 외면해 버렸다. 교주의 하수인이 매수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교단에서 그에게 거액을 내놓았다. 학생들을 앵벌이로 내세워 모은 돈이었다. 또 순진한 신도들의 헌금이기도 했다. 그 돈이면 당분간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사용하여 불법 교단과의 전면 전쟁을 시작했다. 과학도답게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교주의 엄청난 신도 강간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명예훼손으로 감옥에 가겠다고 선언하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마침내 그의 집념에 의해 교단의 마각 일부가 텔레비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방영됐다. 그러자 곧 교주와 핵심간부가 사법조치를 두려워한 나머지 해외로 나갔다.
그러나 현실의 법은 꼭 정의의 편만은 아니었다. 천 명이 넘는 여신도를 추행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강간죄에서 고소 기간과 시효는 교주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여자들의 수치심은 교주의 파렴치한 행위를 감싸고 있었다.
지난해 나는 세브란스병원의 해부실에 들렀다가 의대생의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뼈 표본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가까이 가 보았더니 유리장 위에 '종교 연구가 탁명환'이라고 기재된 조그만 딱지가 눈에 띄었다.
몇 년 전 뉴스가 떠올랐다. 사교 집단의 비리를 파헤치던 탁명환 씨가 괴한의 칼을 맞고 절명했다는 내용이었다. 목사 자격을 가졌던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의대생들의 학습 자료로 바쳤던 것이다. 그를 죽인 진범은 지금도 거리를 유유히 활보하고 있다.
무모한 청년 김도형을 돕기로 하는 네티즌들은 점점 늘어갔다. 기성세대인 나는 그 청년을 보면서 정말 부끄러웠다. 그는 피해자들을 내게 데리고 와서 소송을 제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피하고 싶지만 거절할 수 없는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 여러 명을 만났다.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뉴욕으로 건너간 교단의 한 간부를 찾아가 어렵게 만났다. 그는 한때 교주의 오른팔 역할을 한 핵심이기도 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김도형의 말이 모두 진실임이 드러났다.
'강박관념을 가지거나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도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에게 강한 종교적 환상을 심어 주면 쉽게 빠져듭니다. 깨어나서도 그들은 자신의 황폐해진 모습 때문에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모자라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을까? 내 의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지상왕국을 만들어 놓으면 엄청난 재물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김도형이란 청년은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소금과 같은 이런 청년의 진실한 용기가 어리석고 무모한 것으로 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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