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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지러운 세상에 흐르는 (합 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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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주변과 역사에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더욱 이해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 지고 있으며,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 지 많은 갈등을 가지게 됩 니다.

 지금 이 시간도 지구 도처에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 가고 있으 며,특히 죄없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뼈에 가죽만 붙은채로 마지막 숨결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 으며,힘없는 어린이들과 아녀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과학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거대한 맘모스의 우상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군림하여 모든 삶의 원리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악이 선을 이기고,패역과 광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절대가치와 선은 땅에 떨어져서 짓밟히고, 모든 것이 다 해석하기 나름인 상대가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도 보면 언론들은 정치나 사회 경제에 대하 여 바른 기준을 가지고 분석하여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나름대로 엉뚱한 소설이나 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혼란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그 속에 하나님이 과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많습니다.

세상과 교회의 선이 어딘지 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속적인 개념과 방법들이 교회속에 깊숙히 들어와 박혀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납니다.

바르게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업의 방법,세상의 적극적인 심리적 방법,매너좋은 세상적인 인간 관계, 경영학,이런 것들이 성경적인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무조건 성장과 성공이라는 목표아래 거침없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더욱 더 매력을 주고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과연 하나님은 이를 언제까지든지 방치해 두는 것만 같아서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어지러운 세상속에 살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하박국 서는 바른 조망을 같게 합니다.

성경은 개인구원의 교과서 일 뿐만 아니라,우리 삶의 정황과 역사에 대한 바른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처해 있던 상황이나 그가 가졌던 생의 의문과 혼란 스러움이 오늘 우리의 상황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는 1장 3,4절에서 패역과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을 보고 있다 말하면서,세상에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항 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합1:13에 보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 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면서 자기 혼란스러움을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혼란스러운 세대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묻고자 하는 질문을 대신하고 그 깨달음과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아 주 귀중한 선지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선 그가 가지고 있던 세상을 보는 문젯점을 세가지로 간추려서 생 각해 봅니다.

 1.하나님의 침묵과 무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분개하시고 바로잡으셔야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상하게 침묵을 지킬 뿐 활동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합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 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 다 4절에 공의가 시행되지 못한다는 것은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 다.

 부르짖어도 듣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그렇다고 공의로 활동하시지 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사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앞에 아뢰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신다고 했는데,이 강포라고 하는 말은 6번이나 나오는 말인데,극도의 타락상을 말하 고 있는 것입니다.

부도덕과 음란과 불의와 모순이 팽배함을 말합니다.

옳고 선한 것이 교수대로 올라가고 악한 것을 따르고 주장하는 것이 보좌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상한 침묵을 우리는 답답해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기도가 역시 3절에 나오는 그대로 우리에게도 나 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까

적어도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하나님이 그 때,그 때 가 르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역사를 보면서 빨간색으로 나타나면 악이고, 파란색으로 나 타나면 선이라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다미선교회같은 이단이 일어나면,하나님이 빨리 아니라고 가르 쳐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도 망신안당하시고 교회도 부끄럽지 않을 것 아닙니 까 몇천명이 모여서 휴거 1분전,십초전 할 때라도 '나는 안래려 갈 것 이다!'고 하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데도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말을 하고, 내 이기주의적인 생각으로 말하고,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00하는 사람의 입에는 두드러기가 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하면 얼마 나 많은 악을 방지 할 수가 있을까요

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가요

2.모순되게 보이는 것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문제입니다.

 5절부터는 겨우 하나님의 대답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또한 아주 혼란스러운 문제입니다.

 5절에 보면 사람들이 놀라고 믿지 않을 일을 할 것인데 악하고 사 나운 이방의 갈대아인을 일으켜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치실 것을 말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박국의 눈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백성을 그 보다 더 악한 갈대아 사람들을 들어서 치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침묵하고 계신 것보다 더 불가사의하게 보입니다.

이것은 이해되지 않고,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놀라고 믿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예)어떤 분은 하나님이 인간이 창조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어서 '놀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놀라겠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셔서 우리보다 더욱 큰 뜻을 가지시고 역사 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이방의 나라 갈대아인 들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치시기로 하시고 사람들이 놀라든지 믿 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그 일을 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교훈을 주 시고 이스라엘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고 계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 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 때,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 다 전혀 엉뚱한 쪽으로 응답하실 때가 있고, 우리를 사탄에게 내 어 준 것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더욱 큰 뜻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시한부 종말론자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이유-바른 교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고 교회가 병들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은근히 사람들이 그 런 순간적인 휴거의 현상속에서 도피하려는 것이 그 중심에 깔려 있 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각성하고 얻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건강을 구했지만,질병을 주셔서 겸손케하고 복되게, 어떤 때는 물질의 부요를 구했지만 가난을 주셔서 주님만 의지하며 살도록 하고,

어떤 때는 지식과 명예를 구했지만,평범함을 주셔서 평범속에 있는 하나님의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함을 사람으로는 측량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은 무엇인가요

1.하나님의 침묵하시는 것도 아니고 활동을 멈추고 계신 것도 아니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절에 보면,잠잠한 가운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을 가지시고 갈 대아 사람들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주의 뜻을 위하여 쓰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만 지배할 뿐 아니라,이 세상 모든 백성을 지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힘이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갈대아 사람들의 힘이 막강해지고 그의 막강한 군 사력 때문에 그 시대의 주도권을 쥐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끌어 올리셨기 때문에 되어지 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무수한 권력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자신들의 힘 에서 나오는 것같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을 보게 되 는 것입니다.

강대한 로마제국을 끌어 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의 손이요,강력한 공 산주의도 해체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이러한 과정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답변을 듣게 되는데 역시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는 것입니다.

2:7에 보면,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던 믿음에 관한 부분이 아주 잘 나와 있습니 다.

우리가 보이는 것을 따라서 판단하고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살펴보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판단하고 살아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살아 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로마서를 소유하지는 못했지만,로마서의 하나님을 이미 소 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혼란과 어려움속에 있었지만,이 짧은 예언서를 끝 내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 인해 믿음으로 큰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3.중요한 원리는 하나님과 계속하여 씨름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 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찌하여 선지자!

어찌하여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 다.

어떤 때는 그것이 시빗조의 기도가 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내어 놓고 기도하는 기도의 줄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으신 분들이/남들이 많은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하면서 기도한 적이 있는지 수많은 모순된 삶의 여러가지 정황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기도하고 있는지 왜 응답하고 계시지 않는가라고 하는 마음이라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지 꾸준히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하고 있는지

사40:27-31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 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 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 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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