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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엣단 사건과 교훈 (수 22: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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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에 보면 34절에 ‘엣’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엣’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증거’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22장의 내용은 엣단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엣단의 유래와 그 교훈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엣단의 배경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서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는 기록이 여호수아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한 땅을 크게 나눈다면 요단강을 중심으로 요단강 동편과 서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요단강 동편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요단강 동편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반에게 이미 분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지파 반은 모세로부터 땅을 분배받았지만 젊은 장정들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서편에서 함께 정복전쟁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22장의 내용은 이렇게 함께 수고한 두지파 반에게 여호수아가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입니다. 3,4절에 보면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니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지파 반이 먼저 땅을 분배받았지만 다른 지파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수고한 이 행동은 좋은 교훈이 됩니다. 여호수아는 수고한 두 지파 반에게 축복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라고 하였는데, 요단강을 건너 가던 이들이 요단강 가에서 단을 크게 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10절에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 만한 큰 단이었더라.’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의논도 하지도 않고, 여호수아에게 보고도 하지도 않고 두지파 반이 요단강가에 큰 단을 쌓자 다른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일을 궁금 해하며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지파반이 그곳에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큰 단을 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엄한 교훈을 받았기에 우상숭배를 위한 단을 쌓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라고 흥분하였습니다. 그때에 전쟁을 하기 전에 왜 이런 단을 만드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고 몇사람을 그곳에 보내었습니다. 이때에 두지파 반은 이들에게 단을 쌓은 목적을 24-26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결론으로 두지파 반이 쌓은 단은 우상숭배를 위한 단이 아니라 요단강 동편에 사는 사람도 똑같은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을 ‘증거’라는 뜻을 가진 엣단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2.엣단의 교훈
두지파 반이 요단강가에 만든 엣단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교훈을 정리해 봅시다. 첫째로,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사건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두 지파 반이 요단강가에 큰 단을 쌓는 것을 보고 미리 짐작하기를 우상숭배를 위해서 단을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들과 싸우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외형으로만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다른 지파들이 대표를 뽑아서 두지파 반에게 보내지 않고 전쟁을 시작하였다면 큰 실수를 할뻔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내막을 알지 못하고 외형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형제를 비판하기전에 먼저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알지 못하면서 성급하게 행동을 먼저하거나 비난을 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로 우상숭배의 경계심을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가 이토록 흥분하게 된 것은 혹시나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가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들이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의 대표단이 두지파 반에게 가서 하는 말이 18절에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광야길을 오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상숭배를 미워하시며,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큰 벌을 받는지를 분명히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을 쌓는 것을 보기만 해도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두지파 반에게 가서 우상숭배로 받은 저주를 예로 들면서 브올의 죄악과 아간의 죄악를 말했습니다. 브올의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이만 사천명이 죽었습니다 (민수기 25:3,9 참조). 그리고 아간의 죄악으로 아간의 모든 가족이 아골 골짜기에서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스라엘 백성이기에 우상숭배를 철저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상은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이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배금(拜金)주의 사상이 이 시대에 만연하여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번째는, 같은 형제의 중요성입니다. 두 지파 반은 요단강 동편에서 살고, 다른 아홉지파 반은 요단강 서편에서 살게됩니다. 세월이 지나면 요단강을 경계로 해서 같은 민족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 동편에 사는 사람들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단을 쌓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형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살아가는 터전은 요단강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하나님을 같이 섬기고 사는 같은 형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같은 형제라는 관념이 너무나 적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서 차별을 두려고 합니다. 어떤 집에서 사느냐, 돈을 얼마나 버느냐, 학벌이 있느냐에 따라서 나누어져 살려고 합니다. 이것은 옳은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얼굴은 달라도, 사는 곳은 달라도,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도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같은 성도입니다.
엣단은 처음에는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싸움이 벌이질 것 같은 불길한 일이 있었지만 결론은 33절에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거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 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형제를 즐겁게 하는 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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