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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출 33:12-23, 살전 01:1-10,마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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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3장의 일반적인 주제는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본문을 유심히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상당히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과 함께 보낼 자를 지시해 달라고 요청하며, 하나님의 길(혹은 목적지)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들의 지도자로 삼고 의도된 특별한 역사적 순례를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17-23절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모세는 주의 갈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제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청을 들어 주시는데 그러나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됩니다. (19절에서 23절까지)

19절 말씀은 히브리적인 표현으로서 이것은 변덕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굴”, “등”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여기에서는 중요한 강조점이 있는데 하나님은 명백히 자신을 계시해도 여전히 숨기워진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숨은 것을 나타내 보여도)
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인간을 보호하십니다.
여기에 무한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온 우주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계시함이 핵심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 대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99:1,9)“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 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1.하나님의 현현과 인도하심 (출33:12-23)
※ 하나님이 눈에 뛰게 나타나시는 것으로 대체로 인간의 모습을 취합니다.

(창03:0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28:10-17)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주리니,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찐대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출33:33)“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요1:18,딤전5:16,요일4:1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기에 출애굽의 역사를 그의 종 모세를 통해서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 보면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를 직접 이끌고 가는 분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현현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우리는 인간을 보면서 인간 이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2.모든 것의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 (마22:15-22)
(마22:15-22)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왔거늘,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22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마태복음22:15-22은 성경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잘못 이해한 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관념에 따르면 가이사의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대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종교적인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돈과 같이 세속적인 것은 가이사의 것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섯 개의 논쟁설화 중 두번째 것으로 예수님과 적대자, 그리고 교회와 유대교의 구별점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는 막12:13-17절의 설화를 취해서 새롭게 변형시켰습니다.(눅20:20-26)
두 그룹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 선언의 효과는 모든 유대인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으로 이들은 로마정부에 과중한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헤롯당으로 세금문제에 유연한 자세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직면한 문제는 어떠한 대답을 하든 명백히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 상황에서 21절 말씀으로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즉 대답 자체가 질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간파해서는 안될 점은 궁국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자아인식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의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2:15-22절은 여러 면에서 오해할 소지가 많은데 예수님의 답변을 논쟁 상황에서 이해하며, 논쟁을 회피할 목적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고 대답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깊이 따져 볼 때 이 세상의 어느 것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3.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도의 역활 (살전1:1-10)
(살전1:1-10)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 희에게 있을지어다,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 함이니,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 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1:1-10절은 고대 편지의 인사말 다음에 관례적으로 하는 감사의 말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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