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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안식처 (창 24:34-38, 롬 07:15-25, 마 11:16-19)

첨부 1


가정은 우리 인간들의 육신의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은 이삭의 배필로 리브가가 선택되고, 이들 부부가 결혼하게 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혼에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생을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배필을 선택할 때 매우 신중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육신의 안정을 위해 그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결혼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와 주님과의 영적 결혼도 우리에게 참된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줄 것입니다.

로마서 7:15-25상
영적 만족이 없는 인간은 누구도 진정한 만족을 알 수 없습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세상적인 명예와, 권세와, 지위와, 재물에 부요한 자일지라도 영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번민과 갈등 속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그는 세상적 지식과 종교적 지위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적 자아와, 영적 자아,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해결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선을 행하기를 원했으나 그 결과는 악을 행하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좌절을 거듭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 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 갈등이 해결되었음을 깨닫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곤고 한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참되 안식을 주시는 분은 우리 모두가 만나야 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6-19,25-30
예수께서 오셔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실 때! 자신의 슬기와 지식을 자랑하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한 자들은 오히려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안식처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을 향하여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고 초청하십니다.

오늘 세상의 지식과 슬기가 오히려 나의 짐이 되고, 번민이,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슬기와 지식으로 그리스도를 판단하면서 오히려 영적 방해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웁시다. 그러면 우리의 짐은 쉽고 가볍워 짐니다.

1.인간은 안식처를 필요로 합니다(창24:38,42-49,58-67)
아브라함은 자녀 이삭이 안식처로 가정을 갖도록 그 배필을 택하였습니다.
오늘 많은 현대인들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정이 주는 안식과 행복을 찾기에 분주합니다.
그래서 해가 질 때 그들은 모두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만일 해가 졌는데도 돌아갈 가정이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누구나가 인셍의 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해가 질 때에,우리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쉼을 얻을 안식처가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어둡기 전에 우는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야 합니다.

2.곤고 와 인생은 (롬7:15-25상)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 육과 영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믿거나 낙관하다가 절망을 당 합니다.
(변화 받지 못했던 사울은)
기대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이기적이요, 탐욕적이요, 본능적이며, 쉽게 죄에 넘어지는 자신을 보면서도, 누구보다 율법을 따라 의롭게 살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을 되풀이 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오호라 나는 곤고 한 사람이로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결론은 완전한 역전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하다”고 한탄하던 입에서 “감사하리로다”는 고백이 나오고 있습니다.
롬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무엇이 그를 새사람으로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총이었습니다.
비참한 인생, 죄에 패배하고 절망을 거듭하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새 삶을 얻게 된 것입니다.

3.참된 안식처는 (마11:16-19,25-30)
때로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져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23:3-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러나 주님은 곤고 한 우리 인생이 쉴 안식처를 예비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피리를 불고 애곡을 하여도 응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세상적 지식과, 지혜를 내세워 주님을 비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1).이 세상에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짐을 내려놓고 쉴 곳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품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다 내게로 오라
우리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늘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품으로 초청하십니다.

3).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놓을 곳이 없어 고통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그 짐을 대신 지심으로 안식을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죄짐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대신 지심으로 풀려지게 되었습니다.

지친 영혼들을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참된 안식을 주실 분은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시23: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세상에 지친 영혼들을 넓은 품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죄의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이 시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절망하던 영혼 들에게 새 소망을 주시고, 두려움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평안을 주시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 안에 거함으로 언제나 참된 안식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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