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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의 미래 축복 (슥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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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투하시는 하나님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슥8:2)
1).전심을 요구하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분적으로 아닌 마음 전체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습니다(2절).
질투는 한국말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이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99%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1%는 다른 우상을 따라 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사랑하는데 남편이 아내를 보고 “나는 99% 당신을 사랑하고 1%는 다른 여자를 사랑합니다.
1%를 빼앗긴 것때문에 99%의 사랑을 토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부는 피차에 100% 온전한 사랑을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또 우리에게 사랑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2).회복하심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슥8:3)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노로 질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얘기이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돌아오게 하시고 예루살렘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미래의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래 샬롬”에 거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진리와 거룩의 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거하시겠는 데 하나님 거하시는 그 예루살렘은 진리의 산, 거룩의 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모리아산은 거룩한 산으로 진리와 거룩, 거룩과 진리입니다.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3)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거룩하게 되지 다른 것으로는 거룩하게 되지를 않습니다.
진리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공자 맹자의 말씀으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는 성도는 진리와 거룩,이 두 가지가 절대 필요한 조건입니다.
반드시 진리의 사람, 거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사람이란 죄와 구별된 생활,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과 구별했다고 해서 거룩한 무리, 성도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구별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마음도 구별해야 됩니다.
안식일도 다른 6일 동안의 날들과 구별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것도 구별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별을 중요시하며 바로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구별을 할 줄 모르면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슥8:4)

예루살렘이 평안을 누리는 것을 보여주는 말로서 곧 교회의 평안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평안은 사람들이 양보하고 겸손해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므로 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진리와 거룩이 상실되면 하나님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진리와 거룩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평안을 주십니다.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가 뽑아진 개인, 거룩이 상실된 가정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리와 거룩의 삶을 살 때에 평안이 오고 늙은이도 젊은이도 어린아이도 평화스럽게 장난을 하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강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약속하시는 하나님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슥8:8하)

사람들은 때때로 인간의 수준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자기들의 수준을 하나님 수준으로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8:6) 하나님께서 다망한 예루살렘을 수축하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평안을 주시는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고 기이한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준으로만 생각해서 불가능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틀렸어, 안돼, 이젠 도무지 소망이 없어” 하면서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인간의 수준으로 보면 홍해는 건널 수 없습니다.
인간의 평가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죄와 마귀의 사슬에서 나오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며 가나안 칠족을 물리치고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가능합니다.(8:8)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아니하면 내 힘으로는 조악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죄를 안질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작심삼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결심을 해봐야 별 수없는 인생입니다.
똑똑한 사람도 쓰러지고 잘난 사람도 넘어지고 못난 사람도 자빠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쓰러진 사람을 보고 멸시하며 천대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쓰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내 힘으로는 안된다고 하는 철저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죄에서 건져 주시며 죄를 막아 주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내힘으로는 진리 안에서 살 수도 없고 내 힘으로는 거룩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슥8:7)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두루 부르시어 인도하셔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또 인도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품 안에 거하게 하시고 평화의 도시에서 살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으로 약속을 변개치 않으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계약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새벽에도 주시는 말씀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라” 고 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계시고 나는 내 주장대로 산다면 스스로가 아브라함의 계약을 파기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도 하나님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명령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성실과 진리로, 정의와 공의로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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