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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대한 인물 세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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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진 교수(서울신학대)

그때 예루살렘에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었다면 다음과 같은 보도가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예루살렘과 유대 전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요단 강변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젊은 예언자 세례 요한이 전파하는 회개의 메시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기대에 들떠 있습니다.”

당시 이같은 뉴스가 이스라엘 전국에 방송됐다고 상상해보자. 기독인으로서 가슴 뭉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랬다면 기독교가 더 빨리, 더 넓게 전파됐을 것이다. 더불어 세례 요한에 대한 명성도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만 소문이 옮겨지던 그때에도 세례 요한의 인기는 대단했다.

세례 요한은 인기가 절정에 달했지만 오히려 자기 몸을 한껏 낮추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께 향하게 했다.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며 “예수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신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는 ‘신 들메를 풀기도 합당치 않은’ 미천한 종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유대 광야에 출현하기 전에 그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신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데 그를 대리인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고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의 회개 메시지 대상에는 헤롯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헤롯의 칼에 목이 잘리고 순교했지만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처음과 끝을 동일하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없었다”고 하셨던 것이다.

지금 기독인들은 설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설교를 듣고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순교를 각오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려는 철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한국 교회가 부흥했던 것도 순교를 각오한 믿음의 사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의 사역 현장에서 이 두 가지가 행해진다면 한국 교회는 또 한번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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