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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우치지 맙시다. (수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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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사람입니다.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모세의 꿈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지만,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그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이유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 싸워서 그 땅을 점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40년 동안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한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했고,다른 한편으로는 가나안 땅을 공격해서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과업을 맡게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격려의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에게 주신 교훈입니다만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가장 적절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정치적으로도 양극단의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가 하면 노사(勞使),학원,사상,이념도 모두가 극좌 아니면 극우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극단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대립하는가 하면 극단의 세속주의와 신비주의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공동체 그리고 나아가서는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린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깊이 명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1.좌와 우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해방 이후 우리 나라는 우익과 좌익의 사상 대결로 얼마나 크고 많은 역사의 비극을 겪었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극우익 단체들과 극좌익 단체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와중에서 우리 민족의 해방사는 핏빛으로 물들고 말았습니다.그리고오늘에 이르기까지 분단의 장벽인 38선을 사이에 두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정치 체제의 근거를 둔 남북한이 계속 반목과 투쟁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족입니다.다시 말하면 주의나 주장 때문에 민족이 분열되고 국가가 분단되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주의나 사상에는 타협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만 절대적이라는 고집으로 똘똘 뭉치게 되면 그것은 극단주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의라기보다는 독선입니다.
그렇게 볼때 극좌나 극우는 둘 다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의 경우에도 극우나 극좌는 좋지 않습니다.“나만 천당 간다.우리 교파만 제일이다.우리만 옳다.우리만 잘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극단주의자들의 행패입니다.
그리고 “우리만 거룩하다.우리만 성령 받았다.우리만 구원받았다”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극단의 신비주의이며 도피주의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 운동이나 교회 성장을 마치 무당 푸닥거리로 생각하고,현실 참여와 정치 참여를 혼동한 채 정치 행동에 앞장서야 산 종교라느니 정치 참여 안하는 것은 모조리 사이비라느니 하면서 정죄하는 것은 극좌주의자들의 행패입니다.
현실 참여와 정치 참여는 엄연히 구분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현실 문제와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강단 메시지와 삶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가령 여단 당원이 된다든지 야당 당원이 되진 않습니다.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라면 제3국을 통해 북한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방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 신앙인이 서야 할 분명한 위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느냐,언제 통일이 되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서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두 사람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열거나 통일 대행진을 벌인다고 해서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일의 문을 열어 주셔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 신앙이고 성경의 교훈입니다.
사회 윤리의 기준도 극좌와 극우가 대립하고 있습니다.극단의 낭비와 사치와 퇴폐 풍조가 우후 죽순처럼 일어나는가 하면 그 어떤 새로은 전통이나 문화도 수용을 하지 않은 채 적대시하려는 수구적(守舊的) 태도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우려하는 것은 극단의 개인주의와 사치와 퇴폐 문화입니다.잘산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잘산다는 것이 향락 추구와 퇴폐가 되어선 안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나 통일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그것은 질서의 회복이며 도덕의 회복이며 윤리의 회복입니다.
지난 5월 1일자 뉴스위크(Newsweek)지에 의하면,알프스의 나라,소녀 하이디의 나라 스위스가 오늘에 와서는 세계의 검은 돈이 모이는 나라,마약의 소굴,AIDS가 급격히 불어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10만 명당 AIDS 환자가

9.7명인 미국 다음으로 스위스는

5.4명이 AIDS환자라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본래 종교 개혁의 중심부였습니다.그런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극도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 보건성의 한 관리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는,너무 많은 돈이 모여들기 때문이며,
둘째는,개인주의화로 인한 가족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고,
셋째는,정신적 공허로 인한 고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위스가 하루 빨리 도덕성과 정신적 지주를 회복하지 않으면 더욱더 침체 위기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 생각있는 사람들의 지적입니다.
필리핀을 방문한 미국의 상원의원 한 사람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필리핀을 “가난한 사람이 많은 나라 그리고 부자가 많은 나라”라고 꼬집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부를 특권층 소수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국민은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경제적으로도 극우나 극좌는 옳지 못합니다.
얼마 전 신흥 종교에 깊이 빠진 가정 주부 30여명이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 가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금년 8월에 종말이 온다는 신흥 종교에 현혹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칭 그리스도라는 사람들과 시한부 종말을 내세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그 수를 셀 수 없게 많습니다.거기에 빠지는 것은 좌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시한부 종말을 주장합니다.
둘째,기성 교회나 기성 지도자들을 매도합니다.
셋째,특정 교주를 절대화하거나 신성시합니다.
넷째,교묘한 방법으로 금품을 요구합니다.
다섯째,사회 생활을 단절시키고 가정이나 교회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여섯째,대개는 성경을 자신들의 교리의 도구로 삼아 교묘하게 가르칩니다.
본문은 말합니다.“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2.치우치지 않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8절 말씀을 보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게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입니다.그 속엔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자세히 들어 있습니다.
율법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회 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세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율법을 지키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르침이나 교훈을 따르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사람의 가르침은 가변적이고 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말이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다 보면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고 살면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마태복음 24:26을 보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마가복음 13:21에서는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광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져도 안됩니다.냉소주의나 지식주의에 빠져도 안됩니다.
우린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야 하고 하나님께 깊이 빠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어져야 합니다.

3.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을 때 오는 결과를 생각해 봅시다.
7절 끝에서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했고,9절 끝에서는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특히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갈 때는 두 가지 행동 원칙을 지켜야 했습니다.그것은 앞을 보고 걸어야 한다는 것과 좌우로 흔들거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생도,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좌로나 우로 흔들리지 않아야 인생과 신앙의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 한눈 팔고 곁눈 팔면 되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경제 전문 잡지는 통계 조사를 통해 중소 기업의 실패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습니다.즉,외적 원인은 원화 절상,수출 감소,노사 분규,생산성 감소 등이고 내적 원인은 기업주의 의욕 상실,무리한 사세 확장,외도(기본 사업 외에 다른 것에 손을 댔다는 뜻)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되는 대로 손대고 한눈 팔고 곁눈질하는 것은 인생과 신앙과 사업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진하면 형통하고 평탄하게 됩니다.
본문 9하반절이 결론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것은 내가 내 멋대로 가는 것이고,치우치지 않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것이니까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 됩니다.
바로 그 사람과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정하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죽으나 사나 나는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라는 믿음으로 오로지 외길,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 길을 가는 사람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기를 원한다면 치우치지 맙시다.
흔들리지 말고 치우치지 말고 변덕부리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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