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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같은 이 없도다 (미 0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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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의 예언의 주제는 겸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고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이나 권리를 포기 하고 오직 공의와 자비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셨습니다.

1.심판자 되시는 하나님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7:5상)

사람의 심판이나 판단도 종종 있지만 그것은 두려워할 바가 못되고 이런 판단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 망하는 심판의 모습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망하고 만 사실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4-15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심판이 점진적으로 온다고 하였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모든 것이 허사를 행하는 것과 같이 되어지는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심판이 임할 것을 조심스럽게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점진적인 심판이 지금 바야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어집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맺기를 기대했던 그 의의 열매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악한 열매만 보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대상이 된 그 사회가 맺은 열매는
1).부도덕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7:2상)

경건이나 진리가 찾아지지 않고 악한 백성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 되어 이제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재앙입니다.
서로 물고 찢고 자기 욕심만 차리고 인간 가운데 정직 자가 없고 모두 거짓투성이이고 두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했습니다.

2).지도자의 죄

“그 군장과 재판 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7:3하)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하여야 할 지도자들이 뇌물을 받고 백성을 억울하게 합니다.
정권을 잡은 지도자로 있을 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하게 합니다.
정권을 잡은 지도자로 있을 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해야 할 자리에서 뇌물을 받아 먹고 그것을 정권에 이용하고 잘못을 범하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지도자는 개인의 욕심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버렸습니다.
또한 연락을 취했으니 백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지도자가 끊어야 할 일들을 다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뇌물 문제는 금전 문제요 사욕 문제는 탐심의 문제요 열락문제는 나태의 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도자에게는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파괴되고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흔들리니까 이런 죄들을 쉽게 범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이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가 무너질 때처럼 비통할 때가 없습니다.
이웃을 믿을 수 없고 친구를 의지할 수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나를 대변해 줄 수 있고 내가 힘들 때에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는 친구,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곤고함에 처해 있을 때에 위로해 줄 수 친구, 아니 대신 죽어 줄 수 있을 만한 친구가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그 사회가 받은 무서운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되니 심지어 원수가 집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외적인 고민이 아니라 내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올림픽도 행하고 장애자 올림픽도 행하고 나라의 모든 것이 잘 되는 것같고 온 세계가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문화인이라고 할 것 같다고 자랑하는 가운데 내적인 문제가 있고 형제간에 문제가 있고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실토할 수 없는 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불행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기 품안에 있는 가족, 아내에게도 입을 조심해야 되고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면 얼마나 비극적인지 모릅니다.
‘예루살렘 사회가 그렇데 되었으니 참 안됐구나’ 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내 자신이 그런 지경에 빠지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중심하고 교회를 중심하고 말씀을 중심하고 희생하는 그런 자로 서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말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무엇을 이루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수고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자가 되어야 합니다.

2.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7:18상)

미가서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이 났다면 우리는 실망해야 되고 소망이 없으나 미가는 그것으로 예언을 끝내지를 않았습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구원하시는 그 활동을 크게 찬양하고 있습니다(8,13,15-17).
그 찬양은 나를 과거에 구원하신 하나님이라고만 찬양하지 않고 미래 구원까지 내게 주실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 은 회복과 영광을 보며 찬양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그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유해 주시고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십 년 묵은 죄에 대하여 아직도 이를 갈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아닙니다.
용서받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유하시듯이 우리도 형제의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됩니다.

3.목자장 되시는 하나님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고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20)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신 목자장이십니다.
시23편 말씀과 같이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시는 목자 이십니다.
지팡이로 먹이시는 분은 목자장 되시는 하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자장 되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요 인애를 기뻐하시고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하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욕심은 다 부리고 자기 희생은 눈곱만큼도 없고 모두가 이기적입니다.
우리가 일을 해 봐야 얼마나 하겠으며 능력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으며 믿음이 커 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희생하고 얼마만큼 정성껏 일했느냐 입니다.
과부의 옆전 두닢이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의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과부가 매일 엽전 두닢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매일 희생하라면 이 세상에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옷 두 벌 있는 자는 남에게 한 벌 나눠 줘야 되고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줘야 되니 예수님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의 뜻은 결정적인 순간엔 희생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데 그때에 희생할 줄 모르고 구 때에 헌신할 줄 모르면 과부의 엽전 두닢이 안되는 것입니다.
과부가 주님이 필요하실 때에 바친 그것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자랑스럽게 아신 것입니다.
그것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늘 사랑하되 정말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그 자리에서 도와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 죽게 되었을 때에 자기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같으신 이가 땅위에 없습니다 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형제에게 나타내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나눠주고 형제와 화목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화목의 제물이 다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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