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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통치의 확립2 (막 01: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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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3-28> 귀신 축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 이 이야기는 아마도 21-22에 기술된 가버나움 회당 장면의 연장일는지 모 른다. 예수가 권위 있게 가르치시고 청중은 깜짝 놀라며 쥐죽은듯 그의 말씀에 심취되어 있을 때, 갑자기 고함 소리가 터진 것이다. "나사렛 예 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이 말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배드리던 군중 속에 끼어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 하나의 외침이다. 그에게는 더러운 귀신들(복수)이 들어가 있고, 따 라서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사람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살도록 창 조되었는데, 악마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고, 자주자여야 하는 인간 속에 침입하여 그 개인의 주권을 유린하고 지배하여, 인간의 정상성 을 파괴하고, 자기의 졸개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현상은 하나 둘이 아니 다. 그 외형이나 증상이 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 항하고 그의 섭리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려는 악마의 간교하고도 끈덕진 장 난의 소치이다. 1:13에서 나타난대로 사탄은 예수가 메시아로 취임하는 첫 순간부터, 초전박살의 계획을 가지고 예수를 넘어뜨리려고 유혹을 시작 한 것이다. 결국 예수의 공생애는 악령과의 투쟁의 역사이고, 그 악마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을 구출하여 하나님의 주권 아래로 복구하는 일을 해 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메시아직을 받았다는 것은 악령과 그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기회 있는대로 사탄은 그의 졸개들을 통하여 혹은 직접으로 예수의 신국 운동을 짓궂게 방해한다. 이 장면에 나타난 사람은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여러 귀신이 들어 있고, 그들은 악령 조직의 일원으로 서로 연결되어 통하고 있는 것 같다. 악령은 존재의 영역에 있어서 공간을 초월하고,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도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아는 힘이 있으며, 능력의 차원에서도 사람을 능가하는 초월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사람을 깔보고, 원하기만 하면 사람을 덥치고 지배하고 미친 사람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히 귀신을 무서워하고 심지어 그들에게 아부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나타난 귀신들은 초월적 지식을 가지고 예수를 판단할 때, 예수가 사람 이상의존재라는 것, 즉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막1:11)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을 진술한 것 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 ([호 하기오스 투 테우])라는 칭호는 신약성경에는 요 6:69에 베드로의 고백 속에 다시 나오는 것뿐이다. 구약성경에는 사사기 13:7;16:17의 70인역(LXX)에 나온다. 삼손은 "하나님의 나실"( )이라는 말을 그렇게 번역했는데, 나실은 곧 "구별됐다," "성별했다"는 뜻이니까 "하나님의 거룩한자" 즉 하나님이 구별한 자라는 번역은 타당하다. 어쨌든 귀신의 입에서 나온 이 명칭은 예수를 보통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세우신 존재로 시인하면서 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예수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귀신들이 예수 앞에서 저자세가 되어 비굴한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그 자리에 나타났을 때 이미 귀신들은 그 권위와 능력에 위압을 당하고 있은 것 같다. 예수가 사람이었다면 그 귀신들은 예수를 덮쳐 자기들의 소유를 만들고 (귀신들린 자를 영어로 possessed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은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 자기 사람을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미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귀신은 역부족(力不足)으로 예수를 사로잡을 수가 없기에, 반대로 예수를 칭찬하고 높이는 고등 수단을 써서 예수의 정체를 폭로하는 작전을 쓰는 것 같다. 예수는 어떤 결정적인 시점까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귀신들은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 없는 영광의 길로 가게 할 작정으로, 그의 정체를 기회있는 대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도 예수와 사탄은 고단수의 싸움을 하고 있 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사람 이 귀신을 꾸짖는다고 해서 귀신이 무서워할 리가 없다. 사람이 귀신에게 어떤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귀신이 그 말에 복종할 것인가 그런데 이 경 우에는 예수가 귀신들을 꾸짖었고, 귀신들은 예수의 말씀에 복종하고야 말 았다. 잠잠하라니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고, 나가라니까 그 사람에게 서 떠나갔다. 그리하여 귀신 들렸던 사람은 정상인이 되었다. 이렇게 해 서 사탄의 지배 하에 있던 한 인간이 이제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인간으 로 변했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 사람에게 임한 것이다. 예수의 본무가 바 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룩하시는 일이다. 사탄 때문에 무질서해졌고, 주인 이 바뀐 상태에 있을 때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고 오셨고, 자신에 의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신 것이다. 귀신을 제어하고, 명령하고, 복종케 하는 능력의 소지자는 사람 이상의 존재요, 사탄 이상의 존재일 수 밖에 없다.

 < 26절 >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하나님이신 예수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지 못한 귀신들은 백기를 들고 패잔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디 근성이 짓궂은 약령 들은 패주하면서도 더러운 흔적을 나긴 것이다.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 키는 해꼬지를 하고,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면서 떠나갔다. 자기의 본성 을 드러낸 것이다.

 < 27절 > 본문에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귀신들이 나가면서 발작을 일으켰던 그 사람 이 곧 제정신이 돌아와 정상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를 주시한던 회당 안의 군중은 경악과 황홀한 심정을 저마다 털어 놓았을 것이다. 그들이 목격한 사건은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일찌기 듣지도 보 지도 못한 사건이었다. 예외 없이 '다' ([하판테스] ) 놀랐다. 특 히 두 가지 면에서 놀라운 것이었다. 하나는 '권세 있는 새 교훈'을 예수 가 주셨기 때문이었다. 권위가 있고 당당하여 압도될 수밖에 없는 교훈을 주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악령에게 명을 내리고 악령은 그 명령에 복종하 더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가 악령을 정복하고 승리하여 그만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몰고 오셨고 또 실현하 신 분이시다.

 < 28절 > 가버나움 회당 사건을 계기로 해서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 지더라. 온 갈릴리 사방에 [에이스 홀렌 텐 페리코론 테스 갈릴라이아스] 는 "갈릴리 주변에 온통 다" throughout the surrounding region of Galilee (NRSV) 라는 뜻이다. 즉 '갈릴리 호수를 중심한 둘레의 여러 지방 에 속속들이'라는 말일 것이다.

 3. <1:29-31> 열병을 고치신 권능 1:28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일어난 예수의 교훈과 축귀 사건의 후문이 번개 처럼 사방에 퍼졌다는 것을 보고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그 당일에 됐다는 말은 아닐지 모른다. 29절에 나오는 사건은 그 앞의 축귀 사건 직후에, 즉 안식일 낮에 생긴 일처럼 느껴지지고, 그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은 아 주 짧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예수의 축귀 사건의 소문이 그렇게 온 지방에 퍼지는데는 적어도 몇일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 것으로 묘사한 것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당에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 시고 나서 예수와 네 제자는 시몬의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여기의 열병은 원어로 [퓌 레쑤사]인데 "불"(火, [퓌르])이란 어근에서 온 동사이다.

 즉 불과 같이 몸이 뜨거워지는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말로 열병 이라면 장티프스나 발진티프스 같은 전염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경상도 사 투리로는 "옘병"이라는 것이다. "옘병할 자식"이란 말은 "죽어라, 이자식 아"라는 욕설과 맞먹는 것으로, 옛날에는 그 병에 걸리면 살아 남기가 어 려웠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결국 베드로의 장모는 죽을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형편에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예수는 베드로의 장모가 앓아 누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집으로 갔 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라는 말이 예수 일행의 도착 이후에 나온 사건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30). 그 다급 한 사정을 보고 받은 예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 셨다. 그랬더니 열병이 떠나버렸다. 열병을 않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 골(皮骨)이 상접(相接)하여 꼼짝 못하고 눕게 된다. 그런 사람을 힘으로 일으켜 세운다 해도 정상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열병은 열이 떨어지면 낫게 되는데, 회복이 되려면 한 달은 걸린다.

 그런데 예수는 그녀를 일으켰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저자의 의 도는 베드로의 장모가 완전히 정상(正常)을 되찾고 손님 대접까지 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이 사건에서 예수는 죽음에 임 박한 병자를 살려 내신 것이다. 병은 하나님의 이상(理想) 세계에 침입자 로서 하나님의 통치 세계를 건설하러 오신 예수는 그것들을 정복하는 능력 을 가지신 분이시다. 죽을 병도 거뜬히 물리치고 사람을 건져 하나님의 통치 속에 두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 당시 유대 인의 전통을 따른다면 병을 고치는 노동()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전통을 따른다면 그 여자는 안식일이 다 가기 전에 생명이 끊어질 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여자의 가치, 그리고 늙은이의 가치가 거의 무시되는 때였는데, 예수는 그러한 차별을 다 철폐하시고 치 유의 은총을 주셨다. 하나님의 통치 세계에는 병이 용납되지 않을 뿐 아 니라, 성의 차별이나 연령의 차이 등의 모든 부조리가 용납될 수 없다.

예수는 여기서도 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체로서의 자격을 명쾌하게 나타낸 셈이다.

 4. <1:32-34> 온갖 병을 고치시는 권능의 소유자 저물어 해 질 때에. 마가는 바로 위의 사건(1:29-31)과 다음 사건을 같은 날에 생긴 일로 배열하였다. 즉 회당에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다음 에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는 일련(一聯)의 사건들이 일어난 다음에 도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에 기적을 본 사 람들과 들은 사람들은 동네방네 말을 전했고, 집집마다 있는 병자들 자신 은 물론 그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어서 예수에게로 가서 병을 고쳐야 하 겠다는 강렬한 충동을 다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에 젖어 안식일 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로서는 안식일이 다 지나기까지는 감히 행동에 옮기지를 못했다. 해가 떨어지는 순간부터가 새 날이니까 군중은 해 지기만을 고대 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만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다급한 삶을 사는 인간들이었다.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당연한 흐름이다. 예수가 이미 귀신을 쫓아냈고 열병을 고쳤으니 무슨 병인들 못고치랴 하는 신념을 가지고 갖 가지 병자가 모였는데, 제 발로 걸어서 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본문에는 데려왔다([에페론] )라고 하여 성한 사람들이 앓는 사람을 데리고 온 것으로 묘사했다. 미완료 직설법 동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 속해서 자꾸만 병자들을 데려오는 상황을 그린 것 같다. 어서 같이 가서 병 나음을 얻고 다 같이 건강한 삶을 가지자는 생각에서 병자란 병자는 다 같이 서로 부축하며 나온 아름답고 희망에 찬 분위기를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반 병자와 귀신들린 자,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환자를 구분했다 (32). 사방에서 병자들이 몰려 오고 떠들석하니까 가버나움 동네의 멀쩡 한 사람들까지도 다 덩달아 군중을 이루어 예수가 거하시는 집으로 밀려들 었던 것이다(33). 훌륭한 구경거리가 생겼으니까.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니. 병의 종류가 가지가지였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병자가 여러 사람씩 있었다. 병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 었다. 무슨 병이든지를 막론하고 많이 고쳐 주셨다. 소경도 여러 사람, 앉은뱅이도 여러 사람, 나환자도 여러 사람, 곰배팔이도 여러 사람, 이렇 게 닥치는 대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셨다.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도 많 이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 냈는데 그 귀신의 숫자가 많았다 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귀신 하나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귀신 이 떼거리로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1:24; 5:9). 예수는 귀신들을 많 이 쫓아 내어 사람들에게 정상 생활을 주셨다. 마태복음에는 이 사건에서 예수가 모든 병자를 '다' 고치신 것으로(마4:23-24) 묘사되어 있다. 거기 에는 예수가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분이라는 신학적 해석을 가하면 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단원에서 마가는 예수의 권세를 엄청나게 확대하여 모든 병과 모든 악귀를 제어하실 수 있는 분으로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방 해하거나 불복하는 그 무엇도 다 굴복시키고 군림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고 있다.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27절에서처 럼 귀신에게 함구령을 내리셨다. 귀신들은 영물들이고 따라서 사람은 알 지 못하는 것까지 아는 지식이 있어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사업에 반항하고 방해하는 자들이어서 무슨 수로든지 예수의 신국 운동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들의 더러운 입으 로 예수에 대한 악선전, 허황한 선전, 불리한 선전을 하려고 할 것은 불을 보듯이 확실하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 렇다고 귀신들이 원수의 말에 고분고분 순종했을 리는 없다. 무서워서 잠 시는 입을 봉하고 있지만, 본색을 또 드러내어 곧 악을 도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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