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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근1, 가사 (수 1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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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우리에게 ‘경계를 하게’하기 위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 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 산에 아래 레바논 골자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 죽였으며(수 11:16-17)”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 원주민을 다 진멸하고 그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삼을 것을 명령하셨다.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 각처에 거하는 족속들을 쳐서 물리쳤다. 그러나 이 전쟁은 완전한 명령수행은 되지 못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꼐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 11:21-23)”
위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을 남겨 두었다고 했다. 오늘은 여호수아의 이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아낙 사람들을 남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추적하고자 한다. 오늘 강해 제목은 禍根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도 중요하게 여기면 그 사람은 상당히 신앙생활에서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고 그들이 사소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사소하게 여기시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여기 여호수아가 지나가면서 이야기하듯 “다 진멸했습니다. 그저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조금 남았습니다. 대수롭지 않습니다”하였다. 아낙 자손이 여기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평화를 유지하는데 저들이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시지 않는다. 자, 다음의 말씀을 보자.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삿 16:1)”
가사는 블레셋의 여러 도시 중의 하나이다. 삼손이 그곳에서 이방 여인 들릴라를 만난다. 그래서 아무도 대적하지 못했던 삼손은 마침내 잡혀서 머리를 깎이고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유서깊은 땅이다. 이 가사를 만일 여호수아가 당대에 한마디 “저 성을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던들 이 후대에 와서 삼손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요, 또 그마저 비참하게 몰락하는 불행한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남겨 놓을 때는 사소한 문제로 남겨 놓았는데 그것이 자라서 결국 이스라엘을 떨게하고 이스라엘의 가장 강한 일꾼을 삼키는 자리에까지 성장한다는데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남겨놓은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어느덧 크게 장성하여 이제는 아무리 강한 자를 대표자로 올려보내도, 삼손이라 할지라도 당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 내가 오늘 처치하지 못한 죄의 뿌리들이 싹이 트고 자라서 큰 힘을 갖기 시작하자 이제는 아무 것으로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는 가장 큰 적군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가사라는 지명은 “강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가장 강한 자를 보내놓고도 실패를 하고야 마는 장소가 될만큼 가사는 강한 곳이되었다. 여호수아 시대에 단 한마디 “저곳을 무찌르자”라고 했다면 무너뜨릴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영웅이 달려가서도 함락시킬 수 없는 곳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안함으로 나중에 어떠한 보복을 당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분은 긴장하여야 한다. 여기 여호수아의 보고서와 같이 그 땅은 평안했다.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약간의 적군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힘을 내어 방해할만한 세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멈추고 적군을 진멸하는 소탕전을 놔두고 평화를 공포했던 것이다. 그리고 몇십년이 지나자 이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던 초창기에 우리의 자녀를 바치는 열심을 내지 않아도 예수 믿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만은 예수를 열심히 믿는 쪽으로 훈련시키고 항복시키기보다는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자식들은 세상의 축복을 얻도록 하는 쪽으로 타협해서 내 보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일생을 주 앞에 바친다는 것이요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가정에 가사가 남고 가드가 남고 아스돗이 남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다음 시간을 통하여 가드와 아스돗을 살펴 보겠지만 그들이 남겨둔 불씨가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불러 오는지 설명하기가 끔찍할 정도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우리 속에서 뽑아 내지못한 세상을 향한 그 유혹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와 내 가정의 축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나를 사용해 주십시오’라는 헌신의 결단이다. 축복을 주시면 감사하고, 어려움 중에서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말하며 사는 것이다.
계백장군이 황산벌 싸움에 나가면서 남겨둔 처자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까봐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간 사실을 상기해 보자. 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군인도 사명이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영적 군사야말로 그가 하는 일을 위하여 만일 하나님이 그의 가정의 불행을 감수하라고 하신다면 해야 한다.
우리 신자들의 가장 큰 병, 우리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사가 어디며, 가드가 어디고, 아스돗이 어디냐 하면 바로 이 지점이다. 나를 채우고 남는 것으로 내놓으려고 하니까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신앙이 내가 내 놓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디를 내놓으라고 하시는가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거기에 성장이 있다. “모두 멸절하라!” 발본색원해야 한다. 내 안에 가진 신앙의 원리 중에, 방법 중에, 목표 중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방법은 맞는가를 매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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