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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년마다 바치는 십일조 (신 2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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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제 3년과 제 6년에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주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과 기도를 함께 외웠습니다. “내가 성물을 내 진에서 내어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태어 주지 아니하였고……”라고 암송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임할 것을 기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신앙고백 중에 첫째 절과 그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은 신 6:20-24과 수 24:2-13입니다. 이 세 귀절은 모두 이스라엘의 역사인 족장 시대로부터 여호수아 인솔하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때까지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그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공동체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초기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의식을 통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상기하였으며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에 순종할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제 3년에 십일조를 내는 것은 전에 그 율법이 이미 나왔습니다(14:28-29). 두 번째 십일조는 다른 두 해 동안 절기 축제에서 특별비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3년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접대하는데 잘 쓰여지도록 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목전에서 행해졌고 백성들의 정직함을 크게 신뢰하였으며 그들은 율법에 따라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에게”십일조 예물을 주어 먹게 하였기 때문에(122절) 저들이 “주 여호와 앞에”나타낸 후 바로 다음 절기에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였으며 저들의 의무에 충실하였다는 사실을 경건히 맹세로써 해야만 했었습니다. 중앙 성소의 제사장들에게 바쳐지던 십일조가 3년에 한 번씩은 사회봉사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예배자는 십일조에 해당하는 헌물을 중앙 성소에 바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가 계명을 이행하였다는 것을 중앙 성소에 찾아와 고백의 형태로 제사장에게 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고백의 내용은 애곡하는 날에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십일조를 떼어 놓지도 않았으며 또 죽은 자를 위해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애곡하는 날에 성물을 먹지 않았다는 말은 죽은 자를 통곡하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제의적인 관습을 말합니다. 부정한 사람이 십일조를 떼어 놓아도 그 성물은 부정한 것이 되며 또 죽은 자의 양식을 위해 관에 곡식을 넣어 두는 것도 부정한 일입니다. 제 3년에 드리는 십일조는 제사장 대신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거룩해야 하며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14절) 시행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그 소유물이 쓰여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물 중에서 당신의 정당한 몫을 받으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벌입니다. 이것은 어겨서는 안될 계명이었고 잊어버려서 행치 못하였다는 변명으로 넘길 수 있는 계명이 아니었습니다. 이 십일조는 호리 만픔이라도 속된 일상적 일에 유용되어서는 아니되었으니, 하물며 나쁜 용도에는 더구나 안되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두 해의 십일조와 관계있는 말입니다. 제 3년의 말에 이 엄숙한 고백을 하도록 규정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토록 정결히 보호하실 것을 요청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저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다루게 하게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가 헤아림을 받게 될 때 흠 없는 얼굴로 하나님을 대하기 위하여 늘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저들의 정직함을 주장하는 이 고백은 낮은 음성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자화자찬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언급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은 그의 영광을 위해 큰소리로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15절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라는 기원을 제사장이 말합니다. 이 기도는 구체적인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엄숙한 기도입니다. 그 이유는 각 개인은 공동의 평화와 번영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 속에 공적정신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각기 자기들의 이스라엘인 그 국토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교회를 축복해 주십사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우리가 가르침 받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한 처소에 계신 자로써 우러러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거룩함이 그의 처소가 되며 그의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서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은혜스러운 감찰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민족들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아무리 크고 존귀한 집단이라 하여도 그들을 하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비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그가 우리에게 주신 땅”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열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비록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당신의 복을 내리시지 않으신다면 땅에서 그 소산을 내지 못하며 또 낸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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