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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성도들 (출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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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1-3절까지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기와 떡이 먹고 싶다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엘림을 떠나 신광야에 이르렀는데 여기에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고기 가마 옆에서 고기를 마음대로 먹고 떡도 배불리 먹었는데 여기 광야에 나와 보니 고기도 떡도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애굽에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을 때에 여호와의 손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여기서 우리를 굶어 죽게 하는구나” 하는 것이 그들의 원망의 요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이제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의 원망은 홍해를 건너기 직전에 하였고, 두 번째 원망은 라마에서의 원망이었으며, 여기 신광야에 와서 고기와 떡을 먹을 수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 세 번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여러 번 하나님의 전능하신 이적과 특별하신 보호를 받고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무슨 불편한 일이 있으면 곧 또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지도 아니하고 그저 불만하고 불평하기를 잘 합니다.

2. 모세의 교훈과 하나님의 사랑 (1) 모세는 7절에서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원망하느냐”고 했고, 8절에서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종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너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는 중인데 그런 까닭으로 너희가 우리를 원망하는 것은 곧 여호와를 원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너희가 해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라”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많은 백성들이 어떻게 고기를 먹으며 떡으로 배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거나 될 수 없는 일을 된다고 하지는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고 공수표를 떼지 아니하십니다.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시더니, 아들을 낳게 하여 주었습니다. 여기 이 광야에서 고기를 먹고 떡으로 배부르리라고 하였으니 이것도 이렇게 하여 주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은 특별히 용서하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도 능력로 다 잊어버리고 번번히 불평하고 원망하였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거나 형벌을 가하지 아니하시고 여러 번 용서하시고 또 그들의 소원까지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스라엘과 같이 사랑하여 주십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만나를 잘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100년 정도의 수명이면 다 죽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잘 죽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를 높이다가 죽은 사람이 가장 귀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은 오늘이 이어져서 일생이 되고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오늘은 매우 귀합니다. 특히 오늘이 내 구원과 관계된다면, 또한 죽음과 관계된다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만이 내 날입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우리에게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할 날도 오늘이요, 반성할 날도 오늘이요, 미래를 준비할 날도 오늘 뿐입니다. 육을 위해서 만나를 거두는 것도 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거두는 것도 오늘이 아니겠습니까 지상에는 수없이 만나가 내려져 있습니다. 기회는 오늘입니다. 그것도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아침 햇빛이 녹아버린다지 않습니까 오늘이 성패의 관점입니다.

4. 오늘 십자가를 잘 지십시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의무를 다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 내 책임, 내 의무, 내 충심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에도 오늘 해야 할 일입니다(눅 9:23). 오늘을 등한시 하는 자를 주님은 결코 제자를 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오늘 자기몫의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게을리하는 자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큰 십자가가 있습니다. 교회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개인적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고통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의 이름으로 질 때 주님이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5. 오늘 주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잠 8:34절) 크리스챤은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이교도와 같이 무덤을 꾸이며 교혼을 따르는 무리가 아닙니다. 다시 오실 주(재림 주)를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 고대하는 소망의 백성입니다. 팔짱을 끼고 멍청히 기다리는 바보스런 “망부석”이 아닙니다. 한 가지라도 더 칭찬받고 사랑받으려 인정을 더 받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피곤하도록 일하는 “분주형”이요 “충실형”입니다. 왜 살며, 무엇 때문에 일하는가의 목적이 뚜렷한 백성이 크리스챤입니다.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고요히 그리고 거룩히 말씀을 되새김에 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오늘 오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오늘을 200번이나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주를 맞이하기 위해 충실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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