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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와 국가 (시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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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면서부터 불가피적으로 국가의 일원입니다. 동시에 이 인간의 본성은 불가항력적으로 종교적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와 국가는 숙명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근본적인 명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입장으로도 국가의 입장으로도 그리고 종교의 입장에서도 피차 문제 삼지 않을 수 없고 해결 짓지 아니하면 안 될 문제입니다. 역사상 국가 흥망의 배후에는 어느 때나 종교가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때로는 양자가 협조에 의하여 국가 흥융의 정신적 토대를 이룩하며 유혈의 참극을 빚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결탁하여 부패하고 타락하며 멸망을 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조국의 역사를 더듬어 봐도 삼국시대가 있어서 불교가, 이조시대에 유교가 그 흥망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처럼 신생 대한의 민주건국에, 기독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라, 고려는 불교가 망치고, 이조는 유교가 망쳤다는 것은 이 시대의 민성이며 이 소리를 곧 천성으로 받을 때에만 문제의 대답이 올 줄 압니다. 민족국가 천년의 역사를 결정짓는 거대한 역사적 관두에 서서 올바른 원리를 파악하고 역사적 반성을 통하여 참된 애국의 정신을 규명하고 기독교 국가에 대한 사명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국가관의 기초 국가의 구성요소는 주권과 국민과 국토입니다. 기독교인은 누구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습니다. 즉 국가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초월하여 계시면서도 역사와 인간 속에 일하시는 계시의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역사나 자연이나 인간의 생성 발전 완성의 배후에는 한 주재자가 계십니다. 국가의 구성요소가 되는 주권의 개념은 섭리자(심판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며 국토의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개념은 구속자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의 배후에 도덕적인 통치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지배하고 계십니다. 숙명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명이라는 입장에서 이해합니다. 기독교 국가관은 곧 대주재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구속자 하나님이란 신관 위에 서는 것입니다. (1) 주권의 소재 국가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의 나라란 말을 썼습니다. 전자는 공간적 개념, 후자는 하나님의 주권, 왕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란 주기도는 하나님의 뜻의 통치를 기원하고 확신하는 기독교 국가관의 근본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의 조문보다 헌법을 제정하게 하신 하나님께 주권이 있다고 기독자는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칼빈주의의 중심사상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라 하는 주님의 기도의 정신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참 충성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어떠한 권력 구조도 우상의 자리에서 충성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2) 국민(혈연)의 의미 단군의 피를 받은 배달민족이라는 혈연의식은 불행하게도 동족이 상전하는 이 시대엔 아쉬운 의식이기는 하지만 국민과 혈연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는 그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 피조자 인간이 아들딸이 되는 창조원리에 혈연의 근원을 둡니다.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지었다는 인격의 존엄성에 겨레와 혈연의 생명적 유대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평가에다 인간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국민은 인간 중심의 입장에서 각자가 절대적 주권자로 자신을 자기 중심화하거나 민족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전체라는 만물의 노예 됨이 없이 신 중심의 입장에서 그는 목자요, 백성은 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혈연은 전 인류 공동체에서 단절된 민족사상의 편애(에로스사랑)가 아니라 세계 인류 속에 한국인이라는 보편에서 유기적인 생명공동체로 혈연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국토의 의미 삼천리금수강산은 우리 조국 땅입니다. 이 강산 배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강산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기업입니다. 외국에 다녀온 분들은 우리 국토가 아름답고 물이 좋다는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강대국들의 패권주의에 의하여 아름다운 강토가 양분되었습니다. 한민족으로 태어나서 민족의 영봉인 백두산을 가보지 못하며 빼어난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도 못가 보는 형편입니다. 더욱이 북한 공산집단들은 금강산에 댐을 건설하여 그 훌륭한 많은 경관을 물속에 잠글 뿐만 아니라 물 공격으로 서울 일대를 초토화하려 한다니 이 얼마나 아픈 일입니까 따라서 이 양극단의 민족 분단을 극복하고 국토통일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지상과제입니다. 이 민족에게 있어서 국토회복은 낙원회복의 첫 단계 입니다. 이 위대한 민족적 과업의 수행을 위해 모든 교회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역사적 고찰 (1) 이원론적 입장 기독교와 국가를 이질적인 두 개의 세계로 보는 긴 흐름이 있습니다. 영원과 시간, 천상과 지상, 영과 육, 하나님과 악마, 메시야와 가이사의 것으로 교회와 국가는 대립된 두 세계처럼 분리된 영역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에서 보면 이러한 두 개의 역사가 기술됩니다. 국가는 가인이 후계자, 지배자의 피 흘리는 역사며, 교회는 아벨의 소수 진리를 위한 순교자의 역사로 봅니다. 역사는 두 기관, 즉 국가와 교회의 투쟁사인데 결국엔 후자가 승리하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이원론적 입장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1) 기독교를 거룩한 기관으로 높이 평가하고, 국가를 속된 기관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경우 국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의 타락이라고 일률적으로 생각됩니다. 기독교가 사회와 담치고 중세기 수도원과 산으로 도피해 들어간 것이 전형적 유형입니다. 2) 교회는 교회요, 국가는 국가라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가져습니다. 이런 입장은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기독교 신앙을 파생시키거나 그 반대로 신앙을 떠난 현실에의 굴복과 영향을 합리화하는 타락한 교회를 파생시킵니다. ① 교회는 국가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국가가 신앙을 억압하고 국가의 통치자가 우상적 대상으로 군림하려 하는 경우입니다. 교회의 성직 임명을 관장하며 보다 심한 경우에는 군국주의, 민족지상주의가 국가를 종교화하여 국가나 사당에 참배를 강요합니다. 이 경우 교회는 순교 박해의 암흑시대에 봉착하여 국가와 정면 대립 항거하게 되는데 이 대립 투쟁은 오늘날 역사까지 반복되어 습니다. ② 국가는 교회에 예속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국가에 대한 교회의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사상입니다. 신앙의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직접적인 일치 내지 일치 가능성을 믿는 일입니다. 구약의 제정일치의 신정시대라든가 카톨릭 전성시대의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이신 성로마제국의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 성문 밖 눈 위에서 맨발로 3일을 애걸하여 사면을 받은 이러한 것은 일견 교회의 승리인 것 같으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 왕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현세적 대망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실은 교권을 타락시키는 첩경이 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정신은 기독교가 국가를, 교권이 정권을 장악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중세기 교회의 견해와는 구별이 되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2) 개신교의 국가관 칼빈은 국가란 일반적 은총의 집단이며 교회는 특별은총의 집단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영역의 구분이나 질적 상위나 교회나 국가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 돌입하여 왔다는 복음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기독교는 국가 속에 내재화하여 구체적인 생활의 형태를 취하여여 합니다. 이것이 곧 수육(受肉)의 원리입니다. 우리 신앙 자체가 그리스도계서 우리 속에 수육한 사실과 다름없이 기독교는 국가 속에 수육하고 국가 속에서 십자가를 봅니다. 우리는 민족국가 1,000년의 역사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국가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이 나라를 세워갈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 인권 등의 민주주의 기본 이념은 기독교 정신인 인격의 존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존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과 같이 지으셨다는 창조의 원리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가 수호되고 정의가 실행되며 법과 질서 그리고 윤리와 도의가 수행되는 정신적 초석을 국가에 놓아야 합니다. 국가가 위기의 역사에 처하여 있는 때일수록 교회는 우주의 정신으로 애국의 길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의 교차(cross)되는 곳에 십자가(Cross)의 종교는 세워집니다. 교회와 국가가 만나는 장소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십자가가 세워집니다. 오늘의 역사 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국가 속에 수육하고 그 속에서 십자가를 집니다. 우리 교회는 조국의 역사 속에서 예언자와 제사장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전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전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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