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43)

첨부 1


1912년 4월 14일 밤에 new found land 남방의 북대서양 해상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영국 최고의 여객선 4만 6천톤급 타이타닉호는 삼천 명의 사망자와 함께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판단의 잘못으로 야기된 사건이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이런 비극과는 달리 순간적인 판단을 현명하게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강도입니다. 그가 비록 죄인이었으나 예수님께 회개하여 주님에게 구원함을 입은 것입니다. 이 죄인은 그의 일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며 간절히 간원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에 대해서 낙원, 천국, 천당, 지옥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에 대하여 우리들은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는 흔히 낙원, 천당은 선한 사람이 가는 곳이고, 지옥은 악인이가는 곳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그토록 사랑하사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고 돌아서는 죄인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을 온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즉 실족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우리에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산과 들을 두루 다니고 찾은 다음에 벗과 이웃으로 더불어 잔치를 베푼다고 비유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이 오늘 이 회개하는 죄인에게 주신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1. 죄를 회개하지 않은 자가 가는 곳은 지옥입니다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가는 곳입니까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한 자가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한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것입니다. 막25장에 예수님을 영접치 아니했기 때문에 바깥 어두운 지옥에 던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합당치 않은 열매를 맺는 일도 성령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끼가 나무뿌리의 옆에 놓였으니 합당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곳은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거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뻔하였다”(마 26:24)고 하였습니다. 행 1:25에 “가룟 유다는 일을 버리고 제 갈 곳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갈 곳이라는 곳은 지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지옥으로 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 욕구대로 자기만을 생각하며 자기의향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성령을 거스려 육체를 따라 살았기에 지옥으로 직행하였던 것입니다. 이 가룟 유다의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행으로 가는 것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한문으로 넷 사(四) 밑에 아니 비(非)자가 있습니다. 즉 네 가지 그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첫째, 귀로 듣지 못할 것을 듣는 것이요. 둘째, 눈으로 못 볼 것을 보는 것이요. 세째,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는 것이요. 네째, 발로 아니 갈 곳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강도는 이 네 가지 죄를 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낙원이 허락된 것입니다.

2. 죄를 회개하는 자가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회개하는 자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주어진 일생을 범죄 생활로 더럽혀 오던 절망적인 범지자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때 주님은 그에게 사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백번, 천번 범죄하였다고 하더라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를 약속해주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형제의 죄를 몇번이나 용서해 주리이까”고 묻던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신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신 주님은 오늘 이렇게 죄 값으로 죽어가던 한편의 강도에게 영원한 사죄를 선언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이처럼 사죄의 선언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회개가 없는 곳에 기독교의 복음은 상관이 없습니다. 죄는 인간을 지옥으로 인도해 갑니다. 죄를 범한 자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죄를 품고 사는 자의 가슴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천국은 바로 회개한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3. 강도의 간구를 기억하십시다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는 내세를 간구한 것입니다. 중심에서 꿇어오르는 기도였습니다. 이 간구의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독일의 황제 가이젤 시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를린 시외에 한 가난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 가정에는 10세, 8세, 6세, 4세 되는 네 남매가 있었습니다. 가난하였지만 신앙은 독실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루는 식사할 끼니가 없었습니다. 자식들은 빵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계속 간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말을 알아듣기도 하고, 하기도 하는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기도하는 시간에 이 새가 빠져나간 것입니다. 빵이 없어서 울던 아이들이 사랑하던 새까지 잃어버리고 실망이 더욱 컸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또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세시간쯤 지난후 조금있으니까 날아간 새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다이아몬드를 물고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가족이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가만히 보니 가이젤 황제의 인감도장이 찍힌 다이아몬드 반지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사유를 고하니 목사님은 그것을 가지고 궁중에 가서 전했습니다. 황제는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테이블 위에 놓인 반지를 새가 난데없이 들어와서 그것을 물고 가서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황제는 그 신자에게 돈으로 3천석을 추수하는 토지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간구의 힘은 신기합니다. 우리는 강도와 같이 간구하여야 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강도일지라도 다 용서해 주시어 낙원에 있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간구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소망은 이것뿐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다 주님의 낙원에 함께 가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