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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연이 주는 교훈 (롬 0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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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름다우니 창조하신 자연계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진실로 인생은 자연물과 호흡을 같이 하며 운명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교훈을 제공해 줍니다. 자고로 많은 학자, 성인, 위인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즐기고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물로서 교훈을 받고 교훈을 주기도 했습니다. 진실로 자연은 인생을 가르치는 일대 교과서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우리 주님께서 공부하신 서적은 자연과 인생과 구약성서” 라고 하였고 워즈워드는 말하기를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은 네게 모든 신비로운 진리를 가르쳐 주리라”고 했습니다.

1. 자연은 하나님을 가르쳐 줍니다 (1)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만물을 통해 절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어떤 학자는 “성서와 자연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선물이라” 고 하였으며 뿌렛트는 “만유에 원인이 있으니 그 큰 원인은 조물주라” 고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으나 그 성업에 나타난다”고 했으며, 로마의 철학자 시세로는 “하늘과 별을 보면 이를 지배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명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궁창과, 이 넓은 지구를 푸른 채색 옷으로 입히셨습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삼라만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해 줍니다. 이 삼라만상은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기록해 놓은 훌륭한 문자요, 문장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저 하늘의 해와 달과 크고 작은 무수한 별들이며 별 중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적도반경이 약 6,375만Km이며 극반경이 약6,356만Km 인데 그 표면에 6대주 5대양이 있고 거기 무수한 동식물과, 광물이 실려 있으며 50억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으니 참으로 광대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구보다 더 큰 별들이 있으니 천왕성은 70배, 해왕성은 90배, 토성은 700배, 목성은 1,300배, 태양은 133만배나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룽펠로우는 “자연은 하나님의 계시요 예술은 사람의 묵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널은 우주 간에 하루살이 같은 인생은 이 하나님의 전능 앞에서 함구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절대 의지합니다. 그의 권고를 기다려 안심 합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여호와는 그 이름 그대로 영원 자존자이십니다(출 3:14). 다윗은 “하늘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고 고백했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케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을 회복하심으로 다시 인간을 통해 영광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6:20에서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고, 고전 10:31 에서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에게 있어서 자연은 감춰진 비밀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을 보아도 외계의 미만 보았지 내적인 미를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산은 높으며 물은 맑고 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다는 식으로 말할 뿐이지 하나님의 영광이 스며있는 그 뜻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공에 빛나는 태양과 무명초 한 포기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임을 압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4) 하나님의 지혜, 진실,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라만상 중에서 무질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우주설계와 목적이 들어있습니다. 돌이나 풀 한 포기라도 하나님의 설계에 위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유자라고 불리 우는 우리 인간 육체의 구조를 보시기 바랍니다. 몇백 억만의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근육만도 200가지 이상의 재료로 되어있으며 180종 이상의 활용법이 있습니다. 뉴우튼이 발견한 만유인력과 법칙을 위시해서 전기법칙, 원자법칙 등 과학이 발견해 낸 법칙들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우주를 설계한 방법은 불가칙량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옛말에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색은 고금동”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거짓되어 변화무쌍하나 만물은 유구불변 진실합니다. 만물은 창세 때 지음 받은 이래 오늘까지 그대로 전해 왔습니다. 산천초목, 비금주수, 일월성신 모두 하나님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진실무망 합니다. 공중의 나는 새도, 들의 백합화도 이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지하고 안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줍니다. 담 밑에 피어난 무명의 꽃 한송이도 가끔 우리에게 감탄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심원한 사상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 들에 피는 백합화 한 송이를 보고도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리의 참새도 우리에게 설교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자연의 설교를 듣고 재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인생을 가치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2. 자연은 성도의 생활에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의식생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연을 통해서 우리들의 의식주를 보장하셨습니다. (2) 평화로운 생활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연은 평화롭습니다. 부드럽습니다. 산에 들어가 보면 헤아릴 수 없는 울창한 수림과 푸르고 아름다운 화초와 크고 작은 암석들을 보게 됩니다. 식물, 광물들이 서로 섞여 살고 있으나, 거기에는 시기, 교만, 고집, 독재, 불평, 불만, 모략, 중상, 시비, 증오, 싸움, 살벌이 없고 불안과 공포도 없고 오직 평화뿐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시요(눅 2:14) 성령의 열매도 평화이며 (갈 5:22) 구원받은 성도의 생활 역시 평화입니다(롬 5:1).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이 평화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3) 본분을 지켜야겠습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그대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같이 우리에게도 본분이 있으니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전 12:13). 우리는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고 교인과 교역자는 교회에 대한 각자의 본분대로 그 지위를 지키며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4) 육체의 무사함을 보여줍니다. 자연물 중 동식물은 영구히 살지 못하고 제한된 생명을 가지고 살다가 죽습니다. 이로써 자연물인 인생의 육체가 무상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생하도록 창조되었으나(창 1:27), 육체는 흙으로 되었음으로(창 2:7) 토기같이 파괴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벧전 1:24). “육체의 생명은 아침의 안개와 같다” (약 1:4).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자연물과 같이 언제 사라지려는지 알지 못하는 것인즉 무상한 육체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영원히 있을 영혼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육체가 무성하다고 하여 만족하지 말고, 성결하게 성령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육체가 무상한 만큼 사는 날 동안 일을 힘써 하고 유감없이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5) 자연은 성도의 부활을 보여줍니다. 곤충류는 동면하다가 양춘이 돌아올 때 갱신합니다. 그래서 땅 위에는 생명으로 꽉 찹니다. 유충이 변하여 모기, 파리, 잠자리가 되고 굼뱅이가 변하여 매미가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의 육체는 죽으나 의의 태양 되시는(말 4:2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은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빌 3:20-21). “색은 것으로 심고 색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으리라” (고전 15:42-44). 우리는 본분을 잘 지키다가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주를 위하여 살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영광의 부활에 참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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