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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용서하라 (골 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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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3:13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혐의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도 믿는 사람 가운데서 혐의 있는 일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럴 때에 피차에 용납해서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분을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마음에 품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증오하는 증오심도 역시 그렇습니다. 분한 생각과 증오심을 마음에 품게 되면 이것을 원한 혹은 혐의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원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배신했거나 악의에 의해 상처를 입는 경우입니다. 이로 인해 명예상, 재산상에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다른 원한이 있습니다. 오해에 의해서 원한을 품을 수 있습니다. 공연히 오해하여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잘못은 자기에게 있지만 과도한 욕망 때문에 남을 멸시, 천대, 천시하며 원망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종류의 원한이든 이 원한은 신앙생활에 큰 위협이 됩니다. 현재에 대하여 혐의가 있으면 제일 먼저 기도생활이 말라버립니다.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에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형제에 대하여 혐의가 있을 때에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사라지고 맙니다. 신앙생활의 특색은 기쁜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기쁨과 화평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떠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떠나가는 증거입니다. 결국 원한을 제거하지 못하면 자신의 영혼에도 매우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면 육신의 건강에도 해롭습니다. 미국의 어떤 농장에 가보니 소젖을 짜는 방 안에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사실인즉 목장 하는 분들의 말이, 소들이 이 즐거운 음악 소리를 들으면 젖을 더 많이 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애기 젖을 먹일 때 화를 내면 그 젖에서 독이 들어가 어린 아이는 설사를 하고 만다고 합니다. 보통 화병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원한을 품는 중에 생기는 병입니다. 이런 병이 심하면 심장병도 생기고 심지어 뇌일혈이나 심장마비가 되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무슨 일이나 조심해야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혐의, 이런 원한을 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해소하고 없애고 극복하도록 힘을 써야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1.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원수를 위해 “아버지시여 저들은 알지 못하여 죄짓사오니 저회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 와서 질문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까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일곱 번까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일곱 번 뿐 아니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또 마태복음 18장에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임금에게 탕감을 받는 큰 은혜를 입었으나 그 사람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를 용서하지 않음으로 자기에게 왕이 허락한 긍휼을 다시 빼앗겼다는 비유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주님의 용서의 법칙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형제의 모든 악의, 모든 원한을 묻어버리고 형제의 죄를 사해 주어야 우리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와 초월적 통치의 능력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전환시켜 선으로 바꿔 새 인격자가 되게끔 섭리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창세기 50장의 내용은 이런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 있습니다. 요셉을 팔아 넘겼던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찾아와 자기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장사를 다 치른 후에 요셉이 자기들에게 원수를 갚지나 않을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울었다고 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시려 하였나이다”즉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어 역사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더욱 이 사실을 밝혀줍니다.

3. 이때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장성할 수 있는 기회인 줄 말아 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수도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갚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입니다. 서반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은 악마적이요 선을 선으로 갚는 일은 인간적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신적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속담은 바로 오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들이 맡은 핍박을 받았지만 조금이라도 원한을 품은 혼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친히 “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입니다. 우리 한국의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 타락된 인간성을 빗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원한의 죄는 먼 사람끼리 맺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까운 사람끼리 더 잘 맺게 됩니다. 원한은 사랑의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또한 평화를 깨뜨려 버립니다. 내가 은혜를 받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이 원한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도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향나무가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수를 뿌리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낱낱이 다 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무슨 일이든지 혐의를 품은 것이 있으면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놓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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